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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은 Oct 18. 2021

수상한 계절

손바닥문학상 수상소식을 전해 들은 다음날 나는 대학원 면접을 봤다. 소설가가 되기 위한 중간단계 삼아 지원한, 문예창작 관련 전공 대학원이었다. 그 면접을 빼고는 내 일상에 별다른 일은 없었다. 나는 평소대로 책을 읽고 자전거를 타고 턱걸이를 했다. 상을 받는 일은 여전히 부끄럽고 부담스러웠다. 나는 그런 나의 감정을 가만히 지켜보기로 했다. 어쨌든 심사위원 분들께서 글만 보고 내린 결과였으니까. 독자로서 들을 믿는 만큼 스스로에 대한 미덥지 못한 마음은 조금 미뤄두기로 했다.


수상소식을 들은 날로부터 꼭 일주일이 되는 날, 담당기자님께 공모결과와 시상식에 관한 세부 사항이 담긴 안내 메일을 받았다. 수상결과를 전하는 과정에서의 착오는 역시나 없었다. 나는 정말로 상을 받게 되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시상식이 코로나19 방역으로 취소가 되었다는 점이었다. 낯선 사람과의 자리와 그 자리에 대상 수상자로 나서서 겪게 될 일이 지레 걱정되던 차였다. 잡지사 사옥 구경을 하지 못한 점은 아쉬웠지만 언젠가 다른 기회가 오지 않을까 막연히 생각했다.


며칠 뒤, 메일의 안내에 따라 상금과 상패를 받기 위한 개인 정보와 수상소감을 담당 기자님께 보내드렸다. 게으름 때문인지 그럴듯한 수상소감을 쓰기 위한 신중함 때문인지, 그도 아니면 상을 받는 일에 대한 여전한 부담 때문인지 수상소감 쓰기를 미루고 미루다 약속한 날짜에 겨우 맞춰 보내드렸다. 다른 수상자 분들께서는 진작에 보내셨다는데 나만 소식이 없어 따로 확인전화를 받기도 했다.


그로부터 이틀 뒤에는 몇몇 고쳐 쓴 문장과 잡지에 같이 실릴 삽화를 확인하고 수상소감에 넣을 사진을 보내드렸다. 얼굴을 보이기가 괜히 부담스러워 담당기자님께 양해를 얻고 사진을 보내지 말까 잠깐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필명으로 쓴 글이라 사진까지 없으면 이 지면과 나의 일상은 조금도 엮일 일 없이 완전히 분리될 수 있었다. 이 글이 내가 쓴 글임을 증명해야 할 상황이 나에게 생기기나 할까. 그럴 일이 없다면 굳이 내 얼굴을 같이 실을 까닭이 없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 문득, 어쩌면 매체에 내 글이 실리는 일이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살면서 한 번 있을 일이라면 사진이 같이 올라가도 괜찮지 않을까. 나는 메신저 프로필로 썼던 사진 가운데 적당한 사진을 하나 골라 담당기자님께 보내드렸다.


나흘 뒤, 인터넷에 먼저 나의 글이 올라왔다. 다짜고짜 글 모임 분께서 링크를 보내주셔서 알았다.  모임 분들께서는 내가 필명으로 글을 지 모르셨던 터라 잠깐 그 이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이야기에 괜히 어색하고 민망한 마음이 들었다.


보내주신 링크를 타고 들어가니 며칠 전 담당기자님께서 보여주신 삽화와 함께 내가 보낸 나의 글과 사진이 올라온 웹 페이지가 나왔다. 글 아래에는 벌써 반응과 댓글이 하나 달려있었다. 첫 독자였다. 귀한 시간을 내어 나의 글을 읽고 감상까지 남겨주신 첫 독자. 나는 이제 이 글에서만큼은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구나. 필명이나 심사위원 님들의 뒤에 숨는 일이 이제는 의미가  되었구나. 누군지 모를 이의 감상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글보다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그럴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잡지는 다시 일주일쯤 지나 발간되었다. 잡지사에서 챙겨 보내주시기도 했고, 나도 따로 몇 권을 사서 받아 보았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마지막 호였다. 계절이 깊어갔다. 수상한 계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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