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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사자 Oct 07. 2021

내일 나의 직업은?-3

제2화 6시 칼퇴, 음악방송 에디터인데요.

2011년 내 나이 스물 셋 독립 영화를 찍으려면 돈이 필요했다. 그래서 여러 구인광고 사이트를 두드리던 중 CJ E&M 계약직을 모집한다는 글을 보게 되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입사지원을 하였고, 갑자기 면접을 보러 오라는 말에 집에서 나름 제일 정장스럽고 깔끔해 보이는 옷을 입고 면접을 보러 갔다.

내 옆에는 2명의 면접을 보러 온 언니들이 있었다. 어릴 적부터 M.net을 즐겨봤던 나는 면접을 봤다는 기회만으로도 신기했다. 그렇게 몇 가지 질문을 받고 3명 중에 나만 합격했다.

두근거리는 첫 출근, 내가 들어간 팀은 CJ E&M M.net 온라인사업부 콘텐츠 운영팀이다. 이제 막 홈페이지를 개편한다고 다들 분주했었다. 그렇게 나도 얼떨결에 사수가 주는 첫 임무를 마치고 사명감으로 일했다.

나는 절대로 사무직은 못할 줄 알았지만, 숨어있던 천직을 발견한 거 같았다. 선배들이 가기 싫다는 외근도 나간다고 나섰고, 다들 하기 싫다고 서로 떠 밀었던 이벤트 담당자를 내가 먼저 한다고 달라고 했다. 어느 날 한 선배가 “예전에 영화 좀 찍었다고 하던데 글 좀 볼 수 있을까?”라고 물어봤었다. 부끄럽지만 시나리오 몇 편을 가져다 드렸더니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며 이번에 추석 개편으로 글 쓰는 데 글 좀 써 달라고 했다. 사명감을 가지고 쓰고 또 썼다. 그렇게 나는 엠넷닷컴의 막내 에디터였다.

그동안 자잘한 알바만 하다가 제대로 공채로 입사한 건 아니지만 회사 생활을 하니 그동안 불안정했던 삶보다 이렇게 안정적인 느낌을 받는 것도 제법 나쁘지 않았다. 물론 회사를 다니면서도 나는 계속 영화가 그리웠었다. 영화를 등진 건 아니었지만 잠시 영화를 위해서 계약직으로 지낼 맘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같은 계약직 언니가 그랬다. “영현 님은 왜 매번 열심히 해요? 그렇다고 돈 더 주는 것도 아닌데,”

순간 당황스러웠다. 열심히 한다고 또 뭐라하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18살때부터 영화일을 하던 나는 매 순간 한 장면을 찍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습관이 베어 있었을까? 아님 나도 모르게 즐기면서 일을 했었을까? 사수들은 어느 순간 일 잘하는 내가 들어와서 제법 예뻐해 주셨다.

어느 날 문득 사수가 말하기를 “이번에 신입 공채 뽑던 데 영현 님도 지원해봐요.” 순간 흔들렸다. 정말 공채 지원하면 나도 이런 대기업에 들어올 수 있을까? 한편으로는 영화에 대한 배반 같기도 했었다. 내 꿈은 영화감독인데, 싶었다.

그러던 콘텐츠 운영팀의 막내 에디터로 살아온 9개월째 회사에서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이번에 팀장님이 다른 회사로 가신다는 소문이었다.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좋은 회사를 두고 왜 나가지? 싶었다. 그 소문은 사실이었다.

어느 날 인사 담당자가 연락이 왔다. “영현 님 퇴근하시고 전화하셔서 미안한대요. 그래도 내일 아침에 듣는 것보다는 지금 전해드리는 게 좋을 거 같아서요. 영현 님 다음 달까지만 나오셔야 할 거 같아요.“

갑자기 무슨 말이냐며 내가 뭐 잘못했나 싶었다.

인사 담당자 말로는 이번에 상무가 바뀌면서 자기가 데리고 온 분들은 심어 놓고 인원수 맞추고자 계약직도 몇몇 자른다고 했다. 그중 내가 포함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내 사수들은 윗선에서 절대로 나는 자르면 안 된다고 몇 번이고 말했다.

나는 그 소식을 전해 듣고도 묵묵히 일만 했다. ‘그래 내가 이렇게 열심히 하면, 알아주실 거야. 사수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 내가 다 하고 있잖아.’ 그렇게 별 진전이 없이 퇴사일만 다가오는 것 같아 숨이 막혔다.

그러더니 어느 날 엘리베이터 앞에서 상무님을 만나게 되었다. 인사를 하고 침묵속에서 갑자기 스쳐 지나간 생각, “상무님 안녕하세요. 저는 콘텐츠 운영팀의 송영현이라고 합니다. 상무님과 면담을 나누고자 합니다.”

분명 그 사람은 내 얼굴을 처음 봤거나 모를 텐데 당황하는 기색이 없이 “그래 언제로?”

“네 편하신 시간때에 맞추겠습니다.”

상무는 스케줄표에 일정을 채워 넣으며 말했다. “그래 내일 그럼 2시 자네 이름이 뭔가?”

그렇게 나는 다음날 2시에 상무님 방에 찾아갔다. 내가 그동안 회사에서 했던 일들을 다 프린트해갔고, 내가 지금 하고 있는 프로젝트 내가 왜 이 회사에 남아야 하는 일들을 정리해서 보여드렸다. 상무 님과의 잠깐의 미팅이 결과적으로 별 소용없이 돌아왔지만 사수들은 내 용기에 박수를 쳐줬다. 나는 그만큼 절박했던 거 같다.

내가 이 회사를 다니고 싶었던 이유는 안정적이라서가 아니라 내가 일을 즐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새로운 무언가를 찾았었고, 영화 감독을 꿈꿨던 내가 잠깐 흔들릴 만큼 그렇게 아쉽게 퇴사를 했다. 상무님이 무척이나 미웠지만, 내 진가를 못 본 탓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회사를 나왔다. 그렇게 한 달 정도 백수로 살던 중 인사 담당자가 내 이력도 아깝고 일 잘한다는 소문을 듣고 다른 부서에 자리가 생겼는데, 면접이라도 볼 것을 권유했다. 여기서는 2년만 버티면 바로 무조건 정직원 시켜준다고 했다.

그동안 내가 일했던 파트와 전혀 다른 파트였고, 생전 처음 해보는 홈페이지 디자인을 나보고 해달라고 했다. 디자인을 배워본 적도 없는 내게 디자인을 하란다.

그렇게 한 달을 다니고 나는 내 발로 퇴사했다. 그때의 나는 안정적임을 추구했던 게 아니라 일하는 그 공간 사수들의 따뜻함, 내가 일하면서 느끼는 성취감, 내가 느껴보지 못했던 새로운 것들에 대한 만족감이었던 거 같다.

그렇게 나는 CJ와는 작별인사를 했다. 결국 내 발로 나와 실업급여도 구경 못한 채.

직장 다니던 풋풋한 시절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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