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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독성 Jan 19. 2023

힙하지가 않아.


32살 혼자 살기 딱 좋은 나이에 30살 여동생이 결혼했다.



맘대로 하고 싶어도 할 수도 없는 게 결혼. 언제부터인가 명절 때마다 듣던 언제 시집갈 거냐는 어른들의 고정 인사말을 백만 번 들을 각오를 한다. 당사자는 괜찮은데 동생이 먼저 결혼한다며 측은한 오지랖을 펼칠 어르신들의 뻔한 스토리가 안 봐도 비디오다. 그래도 없어 보이는 것보단 있어 보이는 노처녀가 덜 불쌍해 보일 거라며 머리부터 발끝까지 발악을 해본다.


대충 입고 나가면 무엇보다 엄마의 잔소리 폭탄으로 결혼식장은 전쟁터가 될 것이 뻔하다. 일단 옷부터 사본다. 패션에 관심이 1도 없는 패션 테러리스트는 결혼식에 입을 옷을 사러 가다 눈에 들어온 재킷부터 덜컥 사버렸다. 도저히 다른 옷과는 매치가 안 되는 재킷 때문에 디자이너의 의도에 따라 세트로 나온 딱 붙는 아이보리색 원피스까지 사버렸다. 하체가 튼실한 나에게 딱 붙는 H라인 원피스라니, 옷에 몸을 최대한 끼워 맞추려 며칠 저녁도 굶었다.


대망의 결혼식날, 엄마와 함께 미용실에 들러 머리와 메이크업에 힘을 싣고 식장으로 갔다. 숨도 못 쉬는 원피스에 몸을 구겨 넣고 손님들을 기다렸다.

지방에서 손님들과 함께 버스를 타고 오신 아빠는 도착하자마자 밥부터 찾으셨다.

엄마는 아빠의 밥 타령에 정신이 없다. 갑자기 결혼식을 보지 말란다. 아빠 때문에 짜증 나서 나온 말은 아닌 것 같다.

동생 먼저 시집가는 걸 보면 시집을 못 간다나 어쩐다나.

그렇다면 왜 난 여기 이렇게 있는 것인가.

결혼,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 아닌가.









난 이 결혼식에 일을 하러 거였다. 짜증 낼 틈도 없이 여기저기서 자꾸 부른다.

내 얼굴을 아는 모든 이들이 너는 언제 시집을 가냐는 정확한 예측 멘트로 인사를 한다. 때가 되면 다 간다며 영혼 없이 대충 얼버무리기도 하고, 남자가 없어서 가고 싶어도 못 간다 불쌍한 척도 해보고, 혼자 살 거라며 당당하게 선언도 해본다.

인사와 함께 따라오는 말. 누가 왔다. 나가봐라. 누구 어디 있니. 저것 좀 갖다 줘라. 누구 좀 불러라. 이건 누구 주는 거니.


결국 결혼식은 보지 못했다. 어이가 없다. 그래도 다행이다. 아직 결혼 안 한 나보다 훨씬 더 급한 동병상련 외갓집 장손 사촌 오빠가 있다. 서로 네가 먼저 가라며 핑퐁을 날린다. 누가 너네랑 결혼해 달라고 사정이라도 하니.

참 가관이다.


그렇게 보지도 못한 결혼식은 끝이 났고, 신혼여행 가던 동생의 전화가 왔다. 결혼사진은 어디 있냐며 묻는다. 아까 차에 분명히 실어놓았는데, 결혼사진이 없단다.

남의 결혼식 사진을 누가 가져간 거지? 주차장으로 하이힐을 신고 냅다 뛰었다. 엉뚱한 차에 사진을 실어났다. 분명 차 문이 열리던데, 그 차 맞는 거 같았는데.

! 발레파킹.


거하게 사고 한건을 치고, 나는 왜 여기 왔는가를 재차 되뇌었다. 너는 이제까지 뭐 하고 동생이 먼저 결혼하냐며 누군가 뒤에서 자꾸 메롱메롱 놀리는 것 같다. 계속 뭔가가 꼬이는 느낌이다.

겨우겨우 주차장 CCTV를 뒤져서 액자의 행방을 찾아냈다. 하얀색 승용차 똑같은 차종, 비슷해서 그랬다 변명도 해본다. 찾아서 다행이라는 안도와 함께 하이힐에 올라탄 다리가 터질 것 같다.


사고 한건 크게 치고 축의금과 식장 계산까지 마무리를 한 후, 동생 먼저 결혼시킨 불쌍한 언니의 임무는 끝이 났다. 사촌 오빠 차에 올라타서는 누가 있어야 연애를 하던 결혼을 하던 할 텐데, 오랜만에  빼고 광 낸 김에 콧바람이나 쐬러 나가볼까. 그런 생각도 잠시, 내가 연애를 못했냐 내가 어때서. 언제 결혼 하든 뭔 상관이냐 혼자 살면 어때. 더 열심히 즐길 거다!

청개구리 같은 야심 찬 다짐을 하며 풀메이크업 속눈썹을 시원하게 떼내고, 힐을 신어 퉁퉁 부은 발을 세차게 주물렀다.


며칠 뒤, 생전 처음 보는 부부의 축복을 빌며, 포도 한 상자와 액자를 맞교환했다.

제가 결혼식날 좋은 추억 안겨드렸죠. 두 분도 행복하게 잘 지내시죠?



Photo by pixabay




요즘 그렇게 비혼이 힙하다던데, 엄마 덕분에 힙한 삶에서 멀어진 건가 잠시 생각해 본다. 진짜 동생의 결혼식을 안 봐서 그런가, 결혼식 일주일 뒤 숨도 못 쉬게 딱 붙는 그 아이보리 원피스를 입고 지금의 신랑을 만났다.

의도치 않게 시대에 역행하는 애 셋 아줌마가 되었다. 어차피 내 삶은 내가 결정하는 것. 결혼의 유무는 결코 인생의 잣대가 되지 않는다.

힙한 삶과는 멀어졌지만 지금이 행복한 건,

나의 의지대로 살고 있는 삶이 주는 만족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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