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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독성 Jan 25. 2023

환장의 세계

줄어들 생각을 하지 않는 이 줄 끝에 행복이 있을까. 사람들이 많지 않던 때에 여기부터 왔어야 했다며 연신 투덜거리는 입을 동동거리며 퉁퉁 부어 불쌍한 다리 위에 1시간은 족히 얹혀있어야 할 것 같다.


드디어 다음이 우리 차례다. 그때 멀리서 빠르게 들어오는 외국인 가족, 줄을 서지 않는 매직패스.

에라이,  더러운 자본주의 세상.

2시간은 족히 아이들과 웃으며 우리는 할 수 있다며 희망을 품고 기다렸건만, 기다림 없는 매직패스에서 쓰라린 좌절을 맛보았다.

1분도 더 기다리기가 싫어졌다.
빨리 이 커다란 열기구를 마지막으로 이곳을 벗어나고 싶다.

핸드폰 화면이 검게 변하며 배터리의 빨간 불빛을 마주하는 순간, 초조한 마음은 추락만을 기다리는 자이로드롭 꼭대기 위에 매달려있다.







15년 만에 찾은 꿈과 환상의 나라, 롯데월드.

생일날 놀이동산에 가싶다던 대학 동기의 소원을 들어주러 여자 5명이서 함께 했던 경험의 그곳.

높이 올라가는 건 무섭고 내려가는 건 더 무서운 바이킹 앞 가방순이가 이번에는 아들의 소원을 들어주러 이곳을 다시 찾았다.


웬만해선 돌아다니지 않는 프로 집콕러 5인 가족은 셋째가 어리다는 핑계, 코로나 핑계, 날씨 핑계 등등 김건모 저리 가라 할 정도의 갖은 핑계라는 핑계는 다 갖다 붙여 놀이공원 행을 미루고 또 미뤘다.
친구들의 자랑을 한껏 듣고 오는 초등학교 1학년 첫째가 방학 때 꼭 하고 싶은 것은 롯데월드를 가는 것이다. 그래, 지금이 우리가 놀이동산을 가야 할 때이다.

아침 일찍 셋째를 출근시키고, 4인 가족은 손에 손을 잡고 들뜬 마음을 흔들었다.

어디가 어디인지도 몰라 두리번거리며 입장한 그곳은 생각보다 신나는 곳이었다.

꼬마기차, 회전컵, 판타지드림, 회전목마 등등 120cm 아동들에게 딱 맞는 코스는 가방순이에게도 최상의 만족을 안겨주었다.



누군가 말했지. 롯데월드는 퍼레이드라고. 시간도 찰떡 같이 퍼레이드 타임이다. 밥도 든든히 먹었겠다, 애들보다 더 신났다는 신랑의 헛웃음에 눈도 깜짝하지 않고 신나게 춤추는 무용수들과 간만의 흥잔치를 벌였다.



두 팔 벌려 환영하는 마스코트에 정신 못 차리는 중



멀어지는 퍼레이드 행렬이 아쉽다. 왜 이런 환상의 세계를 15년 만에 온 것일까. 아쉽지만 마지막으로 천장을 유유히 헤엄치는 저 열기구를 타고 환상의 세계를 한눈에 담아보기로 한다.


드디어 열기구에 올라섰다. 하늘 끝까지 올라간듯한 착각을 일으키는 거대한 열기구 위에서 내려다본 장난감 인형마을은 아기자기하고 예쁘다. 긴 줄 서기에 지쳤던 모습은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지고 없었다. 무섭다며 호들갑 떠는 엄마가 재미있다고 더 놀리는 아이들의 웃음에 '이러려고 우리가 이곳에 왔구나. 잘 왔구나.' 흐뭇했다.


드디어 착륙. 마치 달콤한 꿈에서 깨어난 듯이 한 가지 걱정이 번뜩 떠올랐다. 이제 얼른 차를 타고 이 거대하고 정신없는 세계에서 빠져나가야 한다. 이제 더는 시간이 없다.







아침에는 20%, 차에서 충전하니 40%,

마지막 놀이기구 줄을 섰을 때 10%.

드디어 2%.

빨리 차로 가서 충전기를 꽂으면 그래도 전원은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바쁜 마음에 빨리, 빨리의 대명사 한국인이 되었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이럴 때는 빨리 가는 일이 없다. 공사다망한 세 남자는 남의 속도 모르고 오락실도 구경해야 하고, 오락실 뽑기도 한번 해야 한다. 다행히 뽑기는 항상 꽝이다.


겨우 한번 나가면 다시 들어갈 수 없는 출입구로 나왔다. 아직도 주차장까지 가는 길에는 지뢰밭이 남아있다.

인형 뽑기. 그래, 한 번만 이라고는 하지만 한 번에 그 커다란 인형을 집게로 들어 올릴 자 누가 있는가. 뽑기 기계 주인의 철저한 계략에 빠져든 세 남자는 건져 올리다 구멍에 걸쳐진 희생양을 한번 더 들어 올리기로 한다.

집게에서 미끄러지던 그 아이의 눈빛을 마주쳤을 때 불운의 예고편은 시작됐다.


빨리 가자 빨리 가자했는데 , 결국 핸드폰이 꺼져버렸다.

이놈의 플러그 시대, 너무 싫다. 모든 것이 기계로 대체되는 이 세상에서 식당 키오스크를 겨우 섭렵했건만,
주차정산의 늪에 빠져버렸다.


사전 정산 기계에 필요한 입장권 영수증은 꺼져버린 카톡에서 잠자고 있었다. 종이 영수증은 쿨하게 받지 않는 이 시대에 출차 정산소에도 사람이 없다. 그 와중에 차에서 충전하는 배터리는 몇 분이 지나도 핸드폰을 켜줄 생각을 안 한다.

겨우 겨우 신랑의 썩어가는 얼굴을 받아내며 영수증 바코드를 정산소 화면에 갖다 댔다.


하하하. 한 번에 성공하면 이 글을 쓰지도 않았다.
몇 번을 들이밀어도 바코드를 밀어내는 밀당의 기계가 우리 앞에 있다.

한 번을 안 넘어오는 기계랑은 인연을 끊고 인터폰을 연결했더니 도와줄 직원을 보내준다고 한다.


하하하. 기계만 안 넘어오나 했더니 사람도 안 넘어온다.

한 발짝만 폴짝하면 나올 수 있는 사무실에 사람이 보인다.

드디어 나온다. 저기요. 근데 어디 가시는 건가요.

우리에게 오려던 그녀는 끝내 오지 않았다.


엎친데 덮치고 매치고 돌려 치는 이 신기한 환장의 세계는 우리를 그냥 보내주지 않았다.

그 와중에 주차 할인을 받지 않고 3만 원 주차비를 그냥 내겠다며 꺼내던 카드까지 없어졌다.


그냥 자이로드롭 꼭대기에서 이제 그만 내려주시면 안 될까요.


다시 인터폰을 해보니 우리를 도와주러 간 직원이 실수를 했다며 미안하다며 그제야 차단기를 올려줬다.








환장의 세계에서 탈출 하신걸 환영합니다.

자, 그럼 이제 집으로 가는 가시방석 출발합니다.


이제 신랑의 짜증을 온몸으로 받아내야 한다. 여기서 한마디만 더 하면 오늘 누구 한 명은 걸어가는 거다. 이 부정적인 가시방석을 엉뜨시트의 따뜻함 정도로 바꿔보자.



속으로 되뇌는 마음의 소리.

주차비 안 냈으니깐,
100프로 충전 안 하고 돌아다닌 나 자신 칭찬해.
신나게 사진, 동영상 찍은 나 자신 칭찬해.
배터리 없다고 하면 욕먹을까 봐 미리 얘기 안 한 나 자신 칭찬해.



분쟁이 있을 때 의외로 효과적인 방법은 화해의 제스처가 아닌 타오르는 감정을 소화해 낼 시간을 잠시나마 만들어 주는 것이다.

폭풍이 잠잠해지기만을 기다리는 잠깐의 딴생각. 그러나 부작용이 있다. 자꾸만 웃음이 나오려 한다. 미쳤나 보다.


오늘의 트러블 메이커는 계속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지만 눈치껏 입을 다물고 때를 기다리고 있다. 오래간만에 3단 콤보 세트를 껴안은 신랑은 회복이 좀 느렸다.


드디어 휴화산으로 변한 신랑의 얼굴에 속으로만 되뇌던 말을 시원하게 뱉으며, 화해의 제스처를 날렸다.


"미안해. 그래도 어쨌든 주차비 3천 원 아꼈잖아. 잘했지?"


듣기 싫은 소리가 따라 올 약간의 썩은 미소가 피어오르려는 찰나, 입으로 막아버렸다.


@photo by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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