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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nfonia Aug 10. 2022

나는 헬싱키의 접시닦이(2)

그릇, 컵, 그리고 물과 기름과의 싸움, 주방장과의 신경전은 덤

전 타임의 접시닦이와 교대하는 시간은 대략 오후 4시 또는 5시쯤이었다. 오후 5시부터 시작하기로 했다면 적어도 5시 정각 10분 전에는 도착해야 한다. 한 번 5분 전에 도착해서 옷을 갈아입고 5시 조금 넘어서 부엌에 부랴부랴 입장했다가 주방장에게 크게 혼났다. 시간당 임금이 높은 핀란드에선 1분도 소중하다.


도착하면 전 타임 접시닦이가 미처 해치우지 못한 설거지를 끝내야 한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약 1시간에서 2시간이다. 저녁 시간 전까지 밀린 설거지를 해놔야 그 이후 무섭게 쌓이는 접시와 잔을 감당할 수 있다. 밀린 설거지를 치우고 나면 주문이 들어오는 시간이다. 주방장들이 한창 음식을 만들 땐 접시닦이는 항시 대기 상태이다. 갑자기 기름이 떨어지거나 샐러드에 들어갈 채소가 없다면 주방장은 접시닦이를 부른다. 재빨리 냉장고가 있는 창고로 가야 한다. 창고에는 총 두 개의 거대한 냉장고가 있다. 고기를 위한 것과 채소만 있는 것. 고기도 부위 별로 있다. 채소는 주로 샐러드에 들어가는 것이다. 처음엔 한국에서 잘 먹지 않는 샐러드 채소를 구분하지 못해서 애를 먹었다. 만약에 창고에 찾고자 하는 재료나 도구가 없다면 건너편에 있는 대형 마트에서 사 와야 한다.


그해 여름 사진. 레스토랑에서 찍은 사진이 거의 없었다. 난 접시를 닦기에 바빴으므로…그러하다.


저녁시간이 되기 전에 또 해야 할 일이 있다. 창고에 있는 세탁기에 직원들이 벗어놓은 앞치마와 주방장의 작업복, 행주 등 빨래 더미를 넣는 것이다. 외국에 오면 아이가 된다. 전부 핀어로 쓰여있으므로 세탁기를 작동시키는 법을 사장으로부터 직접 배웠다. 빨랫감과 세제를 넣고 미리 돌려놓는다. 한 시간쯤 이후에 아무리 바빠도 잊지 않고 창고에 다시 와야 한다. 빨랫감을 드라이어에 넣어야 하기 때문이다. 다시 한 시간이 지나면 드라이어에서 마른빨래를 꺼내 접어 놓는다.


저녁시간 이후부터는 물과 기름과의 싸움이다. 주방에는 엄청난 수압을 가진 호스가 하나 있다. 옆에는 세척기가 있다. 손잡이 바를 위로 올리면 멈추고 밑으로 꾹 눌러 내리면 작동한다. 세척 시간은 약 2-3분 정도이다. 세척하는 시간 동안 웨이트리스들이 잔뜩 가져온 그릇에서 음식물을 버린다. 기름진 메뉴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호스로 대강 그릇을 헹구고 칸이 구획된 큰 선반에 최대한 많이, 그러나 겹쳐지지 않도록 넣는다. 그릇보다 중요한 건 커틀러리이다. 커틀러리는 평평한 선반에 다 모아놓고 뜨거운 물에 강력한 수압으로 1차 세척을 반드시 해야 한다. 레스토랑의 청결도와 첫인상을 결정하는 요인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세척기에서 막 세척이 끝난 그릇들은 세척기 옆에 있는 큰 트레이로 옮겨 건조한다.


이제 발 밑에 잔들이 채이기 시작할 것이다. 와인잔, 맥주잔, 물잔 등 약 30개가 한 선반에 들어있다. 플라스틱이나 스테인리스 컵이 대중적인 우리나라와 달리 핀란드에선 어딜 가도 유리잔을 쓴다. 그러므로 깨질 위험이 커서 지나치게 쌓이기 전에 세척기로 옮겨야 한다. 유리로 된 크고 작은 잔의 무게가 합쳐져 무거운 선반을 영차 들어서 세척기에 옮기고 세척기에서 건조 트레이로 옮기고...스쿼트와 팔 운동을 따로 할 필요 없다. 이 과정에서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빨간 립스틱이다. 나의 과 친구이자 같은 레스토랑 알바 동료였던 웨이트리스 알렉스는 항상 미리 노티(Notification)를 주었다. 풔킹 레드립(fu**ing red lips)이 있다며, 그 컵들만 따로 모아 주곤 했다.


풔킹 레드립도 스쿼트 동작을 반복해서 들어 올려야 하는 무거운 잔들도 모두 괜찮다. 내가 이 아르바이트에서 가장 싫어했던 부분은 접시를 닦아야 할 때가 아니었다. 레스토랑이 쉬는 날 접시닦이가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 오븐을 청소하고 오븐 안에 있는 기다란 구성품을 모두 꺼내 찌든 기름때를 닦아내는 일이었다. 일주일 동안 찌든 기름때와 고기가 타붙은 것들을 박박 긁어내야 한다. 그전에 마스크를 쓴다. 인체에 다소 해롭지만 기름때를 걷어낼 때 효과적인 약품을 뿌려야 하기 때문이다. 사장은 이 약품을 뿌릴 때 반드시 장갑을 끼고 마스크를 쓰고 고개를 돌리라고 했다. 안전에 철저한 핀란드인다운 지시라고 생각했다.


고개까지 돌려가며 약품을 뿌리고 나선 철수세미 같은 것으로 기름때를 긁어낸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소리를 2시간 동안 참아야 한다. 은박지가 바사삭 거리는 소리도 싫어하는 내 귀에 철과 철의 만남이라니! 한 번 때를 긁어내고 나서 뜨거운 물을 뿌려준다. 그리고 또 약품을 뿌리고 때를 벗기다 보면 철의 본래 모습이 보인다. 오븐 안도 똑같이 수세미로 닦아줘야 한다. 오븐 안은 약품을 뿌리지 않고 뜨거운 물로만 닦는다. 뜨거운 물을 붓고 열심히 닦고 물과 기름 찌꺼기를 내보내고... 또 닦고. 육체노동은 반복 또 반복이다.


유일하게 남은 작업 현장 사진. 잔뜩 쌓여있는 철판 모두 닦아야 한다.
시꺼먼 기름때를 벗겨내는 작업


내가 가장 싫어하는 소리까지 견디며 기름때를 벗기는 것까지, 그래 이 또한 참을 수 있었다. 내가 레스토랑 일을 그만둔 결정적인 이유는 기름도 소리도 뜨거운 물도 반복적인 육체노동도 아니었다.


어느 날 모처럼 아침 시간을 담당하게 되었다. 개점 시간을 앞두고 주방장은 여러 재료를 손질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레스토랑에 들어가자마자 잔뜩 쌓인 고기 상자와 궤짝이 보였다. 주방장은 새로 배달 온 고기 궤짝들을 냉장고에 모두 넣고, 냉장고에 기존에 있던 고기를 모두 빼와서 주방으로 가져다 달라고 하였다. 마트 카트에 잔뜩 쌓인 고기는 거의 쌀 한 가마니가 넘는 무게였다. 그 외 각종 채소와 또 다른 부위의 고기가 가득한 상자가 몇 개 더 쌓여있었다. 일단 카트부터 옮기기로 결심하였다.


냉장고가 있는 창고까지 가는데 턱이 두 개가 있었다. 그 작은 두 턱을 넘는 것조차 버거웠다. 용을 쓰고 한 턱을 간신히 넘고 창고 문을 열고 마지막 턱을 넘을 찰나였다. 주방장이 그 사이를 지나가려고 하더이다. 그녀는 바로 내 뒤에서 내가 용쓰는 현장을 보고도 가만히 있었다. 한 사람의 손만 더해서 카트를 밀었다면 몇 초만에 턱을 넘을 수도 있었다. 그녀가 뒤에서 나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는 상황이 압박적이었다. 나는 도와달라는 말도 못 하고 있는 힘을 다 써서 카트를 끌었다. 짝짝짝. 턱은 넘었다. 턱을 넘자마자 그녀는 열린 문과 카트의 사이를 비집고 지나갔다. 사람이 황당하면 말도 안 나오는 법. 도와달라는 말 대신 카트를 용쓰고 당기다가 카트의 끄트머리로 내 발등을 찍었다. 당시엔 발등이 아픈 줄도 몰랐다. 우직하게 그녀가 요청한 고기와 각종 채소를 옮기는 일을 모두 마쳤다. 그 다음날 나는 근육통으로 고생을 했다.


일하고 다음날. 이렇게 꼼짝없이 누워지냈다. 너저분한 책상은 당연한 현상.


내가 도와달라고 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일까? 도와달라고 말을 해야만 도와주는 핀란드인의 성향인가? 아니면 그저 그녀의 성향인가? 이것은 인종차별인가? 그냥 나를 싫어하는걸까? 문화가 다른 나라에 오면 어디까지가 부당한 대우인지 알기 힘들다. 어디까지가 문화라는 범주 안에서 이해를 해도 되는 것인지, 개인의 비합리적인 행태를 그들의 집단적인 문화로 퉁 쳐버려도 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녀는 원래 나와 근무시간이 겹치지 않는 주방장이었다. 그러나 주로 내가 근무했던 시간에 함께 일했던 주방장이 일을 그만두며 그녀가 그 시간을 대신하게 되었다. 그전의 주방장들은 나에게 모두 친절한 편이었다.


그녀와 일을 했을 때 나의 모습을 돌이켜보았다. 주문이 밀려서 바쁜 와중에 그녀는 나에게 어떤 재료를 창고에서 가져달라고 부탁했다. 재료의 이름은 핀란드어였다. 나는 못 알아들었다. 내가 그 재료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오일이었다. 해바라기씨 오일과 같은 것이었다. 그녀는 이를 악물고 영어로 “그 노란색 오일 그거 있잖아”라고 소리쳤다. 그뿐이랴. 외국인인 나는 쓰레기를 버리러 가는 일부터 마트에 가서 재료를 사는 일까지 재빠르게 해내기엔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았다. 그녀에게 나란 접시닦이는 세탁기를 돌릴 줄도 모르고 해바라기씨 오일을 알아듣지 못하고 샐러드의 각종 채소를 구분하지도 못하며 마트에서 재빨리 재료를 사오지도 못하는 바보 멍텅구리였다.


인종차별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점심시간부터 부처와 같은 마음으로 도를 닦기로 했다. 핀란드어로만 이야기하는 그들 사이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밥을 먹었다. 회식 아닌 회식 자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가끔 일이 끝나면 바로 옆에 있는 바에 가서 술을 마셨다. 나는 과 친구인 알렉스나 아이나가 있을 때만 술을 마시러 가곤 했다. 그날은 두 명 다 없었지만 그나마 내가 편하게 생각하는 러시아인 웨이터 안똔이 있었다. 심지어 주방장 그녀가 먼저 끝나고 술을 마시러 가느냐고 물었고 나는 바로 안똔에게 똑같이 물어봤다. 안똔도 간다고 하길래 오케이. 그러나 안똔이 바에 간다는 의미는 그날 레스토랑에 이어 바에서 일을 한다는 것이었다.(바와 레스토랑 모두 같은 주인이 하는 곳이었다) 안똔은 바에서 일하기 여념이 없었고 나는 핀란드어로만 대화하는 주방장 두 명 옆에서 정면만 바라보며 혼술을 했다. 그 이후 6개월 짜리 계약이 끝났고 계약 연장 제안을 받았지만 거절하였다.


내가 한국에서 주방장과 같은 처지였다면 어땠을까? 나 역시 한국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외국인 아르바이트생을 답답하게 생각했을게다. 일이 끝났는데 굳이 영어를 말하면서까지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한 마음으로 이해하기로 했다. 그녀가 핀란드인이라서 또는 어떠한 차별을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같이 일하는 사이에서 바보 멍텅구리는 최악이지. 당연히 싫을 수도 있지. 그런데도 하나 의문은 있었다. 내가 무거운 카트와 씨름할 때 도와주는 편이 더 쉽지 않았을까? 그럼 더 빨리 지나갔을 수도 있잖아?


레스토랑 일을 그만두고 나서도 접시닦이의 삶을 가끔 떠올렸다. 핀란드의 긴 여름마다 각종 펍과 레스토랑에 쌓여있는 잔들을 볼 때마다, 레스토랑에 길게 늘어진 줄을 볼 때마다, 또 다른 접시닦이의 삶을 상상했다. 한국에서 부르주아처럼 살았더라면, 아니 핀란드에서 알토대학교의 울타리 안에서 고고하게 영어로만 대화해도 아무렇지도 않은 교수들과 핀란드인 학우들하고만 교류를 했더라면, 알지 못했을 삶을 생각했다. 단 6개월 동안 헬싱키의 접시닦이로 살았지만 그 궤적은 6개월 보다 오래 남았다. 뜨거운 물로 닦아내도 철 수세미로 박박 긁어도 뗄 수 없었던 기름때처럼 나의 삶 한 부분에 지독하게 남았다. 한국에 와서 블루칼라에서 화이트칼라 직업군으로, 외국인에서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면서도 흔적만 남은 기름때를 생각한다. 물과 기름과 사투를 벌이던 뜨거웠던 여름의 열기를 잊지 않으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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