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이야기를 해야겠다. 나의 지난 20대는 그리 발랄하지 않았다. 꽃다운 스무 살에 여드름이 꽃피웠다. 꿀피부가 판 치는 대한민국에서 성인 여드름으로 꽤 오래 고생했다. 비비크림만 발라도 광이 나는 스무 살을 경험해 본 적이 없다. 한의원, 클리닉, 피부과 등 안 가본 곳이 없었다. 화장실에서 거울과 마주하는 것도 힘들었다. 한 발짝 너머에서 친구들의 매끈한 피부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러나 일을 하면서 내가 여러 가지 형용사와 동사로 만들어진 문장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예쁘다'를 제외하고 나를 표현할 수 있는 단어는 많았다. 예쁘지 않아도 나의 가치를 인정받을 길은 많았다. 그때부터 여드름을 나의 일부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누군가 피부 이야기를 할 때면 나는 여드름으로 고생한 과거를 늘어놓았다. 나는 천식이나 비염과 같은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일 뿐이었다. 여드름이 있어서 화장품을 선택할 때 까다롭고, 피부 관리에 누구보다 정성을 들인다는 사실만 말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나는 나로서 거울을 바라볼 수 없었다. 그렇게 나는 곰보자국을 안고 핀란드로 왔다.
핀란드 친구들은 좀처럼 타인에 대해 판단하려 하지 않았다. 타인에게 '예쁘다' '귀엽다'라는 칭찬도 쉽게 하지 않았다. 물론 그들도 속으로는 자신만의 판단을 내릴 테지만, 적어도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타인의 외모를 추앙하거나 깎아내리는 법이 없었다. 애초에 외모는 인사치레 또는 대화의 주제가 될 수가 없었다. 그들의 관심사에서 외모는 마치 배제된 것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핀란드에 오자 곰보자국은 그 어떤 기능도 할 수 없었다. 영광의 상처 또는 훈장 등 정신 승리를 위한 딱지를 달 필요도 없었다. 미국 영화에서 볼 법한 이상적인 화법이 필요 없었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넌 언제나 아름다운 사람이야'라는 가식적인 위안은 없었다. 각각 개성이 있는 인간일 뿐이었다.
어느 날은 과 친구들과 핀란드의 추위와 먹는 음식의 상관관계를 이야기하였다. 나는 이곳이 추워서 초콜릿처럼 단 음식이나 지방이 잔뜩 낀 고기를 자주 먹고 싶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대뜸 핀란드 친구가 자신의 배를 를 어루만지며 이렇게 말했다.
추운 겨울을 이겨내려면 지방이 있어야 돼. 그래서 나는 뱃살이 필요해.
그녀가 소위 말하는 날씬한 여자였다면 나는 그녀의 말을 농담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녀가 우리나라에 살았더라면 다이어트 압박에 시달렸을지도 모른다. 외모 때문이 아니라 건강을 위해서 살을 빼라는, 오지랖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그녀는 뱃살이 있는 자신을 긍정하면서 포장하지는 않았다. 나에게는 '나는 나일 뿐이야. 뱃살 많은 나도 나야.'라고 들렸다. 오히려 그녀가 이 말을 하는 찰나에 그녀의 겉모습을 판단하고, 그녀의 말을 신선하게 받아들이는 내 모습이 우습게 느껴졌다. 나는 그녀에게서 대체 무슨 대답을 기대했던 것일까.
많은 사람들은 핀란드와 함께 북유럽 디자인을 떠올린다. 디자인 강국이니 패션도 발달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만난 핀란드인들은 생각보다 외모와 치장에 관심이 없었다. 유난히 화장을 한 여자들은 물론, 시내 중심부에서 명품백을 든 이도 쉽게 볼 수 없었다. 물론 겨울이면 영하 20도까지(헬싱키 한정) 떨어지고 시종일 눈이 오기 때문에 멋을 부리기 힘들다.
타인을 겉모습으로 판단하기를 유보하는 듯한 태도는 공통점이었다. 자신을 평가할 때는 솔직한 편이었다. 지나치게 하얗다면 하얀대로, 주근깨가 있으면 주근깨가 있는 대로, 자신을 소개하였다. 그에 대한 가치 판단은 잘 보이지 않았다. 외모뿐만 아니다. 학교에서 수업을 할 때 특정한 학생을 지목해서 칭찬하는 법이 없었다. 탁월한 학생이 눈에 띄어도 교수님들은 탁월함과 평범함 사이의 경계를 일부러 지우려고 했다.
언제나 다이어트에 시달리는 여성들, 1등이 되지 못해 자책하는 이들이 떠올랐다. 우리는 언제쯤 뱃살을 너그럽게 바라볼 수 있을까? '나는 뚱뚱하지만 아름다워'가 아니라 '나는 뚱뚱해 그게 나야'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러나'를 말하지 않고 나를 수긍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