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이냐 여성이냐 그 무엇도 아니냐, 고민하지 말고 들어가
핀란드에 막 도착했을 무렵, 학교에서 입학 등록을 마치고 화장실에 갔다. 급했던 터라 서둘러 들어갔다. 볼 일을 보고 나오는 순간 키 큰 남자와 마주쳤다. 놀라서 화장실을 급히 빠져나와 표지판을 다시 확인했다. 제대로 보니 화장실 표지판에는 남녀가 함께 서있었다. 핀란드뿐이 아니다. 노르웨이의 학교, 도서관, 레스토랑 등 여러 건물에 공용 화장실은 매우 흔하다. 특히 건물이나 공간이 비좁은 경우엔, 여성, 남성 그리고 장애인 모두가 이용할 수 있는 화장실이 있다.
누군가가 핀란드에서 가장 편리한 시설을 물을 때, 나는 화장실이라고 대답한다. 혹은 가장 좋아하는 공간이 무엇이냐고 물어도 화장실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만큼 핀란드의 화장실은 효율적이며 성별을 불문하고 불쾌함 없이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여자 화장실 앞에 길게 늘어선 줄을 핀란드에선 본 적이 없다. 성별과 관계없이 빈 공간이 있으면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생리대를 버릴 수 있는 휴지통은 버릴 때 안에 내용이 보이지 않도록 만들어졌다. 물론 최근 우리나라에도 생리대 전용 휴지통이 따로 잘 만들어진 화장실이 생겼지만 백화점이나 좋은 건물에 가야 볼 수 있다.
또한 손을 씻으며 사람과 마주하고 싶지 않다면 칸막이 안 작은 세면대에서 손을 간단히 씻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남성용 변기가 따로 없다. 모두 같은 변기를 이용한다. 이로써 남녀 공간이 굳이 나뉘어야 할 이유가 사라진다. 볼 일을 보는 방식이 성별에 따라 달라야 한다는 관념을 지워버렸다.
생각지 못한 편리함이 한 가지 더 있다. 화장실을 이용할 때, 여성/남성 두 가지로 구분된 성별 표지판 앞에서 고민할 필요가 없다. 생물학적 성별과 자신이 정체화 하는 성별이 같은 시스젠더(Cisgender)에게 여성과 남성으로 구분된 화장실은 자연스러울 수 있다. 그러나 생물학적 성과 자신의 성 정체성이 다르거나 한 가지로만 규정하기 힘든 경우에 두 가지 선택지는 좁다. 또한 두 가지 성별로 자신을 규정하기 원치 않는 경우도 있다. 공용 화장실에서 사람들은 생물학적 성과 성 정체성에 관계없이 같은 공간과 변기를 이용한다.
더불어 장애인과 함께 이용할 수 있도록 설계된 화장실은 여성, 남성, 장애인, 비장애인, 시스젠더, 트랜스젠더 등 여러 스펙트럼의 사람을 수용한다.
어떤 성별이든 어느 방식으로 볼 일을 보든 어떤 신체적 조건을 가지고 있든 모두에게 평등한 환경이 주어진다. 그러므로 화장실을 이용할 때 자신을 신체, 성별, 성 정체성에 따라 분류할 필요가 없다.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은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공간이 가장 이데올로기적인 장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프랑스, 독일, 영미권의 화장실을 비교했다. 예를 들어 독일 화장실의 변기엔 구멍이 조금 앞에 위치해있고 물이 없다. 지독한 냄새가 나는 그것을 아주 똑바로 관찰하고 분명하게 볼 수 있다. 반면에 영미권의 화장실에는 물이 가득하다. 스위치를 내려야 물과 함께 당신의 그것도 쉽게 내려간다. 실용적이다. 지독한 '그것'마저도 분석적으로 마주하고 싶은 자, 쉽고 간단하게 떠내려 보내고 싶은 자. 두 나라 사이의 관념을 화장실 변기에서 마주할 수 있다.
핀란드 화장실에서 내가 마주한 이데올로기는 안전과 평등이었다. 우리나라에도 공용 화장실은 종종 있다. 하지만 그곳에서 효율과 편리함까지 생각할 수 없다. 공용화장실을 떠올리면 몰카와 2016년 강남역 화장실 살인사건이 떠오른다. 여성이 집 밖 화장실을 이용할 때 편리함보다 안전이 우선순위가 되었다. 여성이 처한 현실에 따라 화장실은 아주 편리할 수도 위험할 수도 있는 공간이 된다. 볼 일을 볼 때, 화장실 표지판을 바라볼 때도 현실은 우리에게 말을 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