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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nfonia Jul 15. 2022

스웨덴 사람들은 진짜 밥을 안 줄까?

초대했다고 대접해주진 않는다.  나도 겪어본 북유럽의 초대 문화.

위 지도에서 Almost Always에 해당하는 국가, 주로 남유럽 친구들이랑 친하게 지냈다. 밥심이 곧 우정이었다.


최근에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전 세계 인터넷 커뮤니티를 달군 주제가 있다. 바로 스웨덴의 접객 문화이다. 이 주제는 외국의 대형 커뮤니티인 레딧의 한 글에서 출발했다. 스웨덴 친구네 놀러 가도 그 가족들이 저녁을 먹을 땐 방에서 기다려야 한다는 충격적인 에피소드였다. 이 주제를 놓고 트위터에서도 논쟁이 일었다. 현재 이 논쟁은 'Sweden Gate(스웨덴 게이트 - 나무 위키: https://namu.wiki/w/%EC%8A%A4%EC%9B%A8%EB%8D%B4%EA%B2%8C%EC%9D%B4%ED%8A%B8)' 라는 이름까지 붙어 다양한 밈(meme)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스웨덴 게이트를 놓고 20년 전의 일이다 또는 현재 스웨덴을 반영하지 않은 사실이며 문화의 한 부분을 일반화할 수 없다는 반박글도 나왔다. 여기에 나는 '글쎄올시다'라고 댓글을 달고 싶었다. 나도 비슷한 경험을 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가까이 지내던 핀란드인 친구가 있었다. 우리는 약속을 분명히 늦은 오후, 저녁을 같이 먹는 것으로 잡았다. 물가가 비싼 핀란드에선 하루 종일 바깥에서 외식을 할 수 없다. 그래서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하는 경우가 있다. 우리는 약속대로 밖에서 커피만 마시고 저녁을 먹기 위해 집으로 향했다.


그때 나는 이미 핀란드에서 3년 차였으므로 저녁을 먹으러 간다 하여 대단한 상차림을 기대하지 않았다. 마트에서 같이 요리할 재료를 사겠거니 싶었다.


"너 저녁 먹을 거만 사"


마트에서 친구가 대뜸 이렇게 말했다. 본인은 이미 많이 먹어서 배부르단다. 그녀가 왜 저녁을 먹자고 한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 먹을 거만 사라고 했지만 콩 한쪽도 나눠먹는 한국인인 나로선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내가 먹을 샐러드와 같이 먹을 만한 음식도 샀다. 나 혼자 먹기 민망하여 눈치를 보다가 적정한 시간이 되었을 때 저녁을 먹지 않겠냐고 물었다.


"그래 넌 네가 산 샐러드 먹어, 난 내가 점심에 만들어놓은 파스타가 많아서 그거 먹으려고"


알고 보니 그녀가 배부르게 먹었다던 파스타는 아직 남아 있었다. 그럼에도 나보고 내 저녁을 따로 사라고 말한 것이었다. 결국 나는 내 샐러드를 먹었고 그녀는 본인이 만들어놓은 파스타를 먹었다. 그리고 그녀가 대접한 것은 김이 다 빠진 콜라였다. 1.5리터짜리 콜라에는 약 한 잔 정도의 양이 남아있었다. 그때 난 이렇게 말했다.


"근데 이 상황 되게 웃기지 않아? 저녁을 같이 먹기로 했는데 각자 따로 먹는 게 말이야. 한국에선 무지 이상한 일이야"


내가 시니컬하게 말하자 그녀가 핀란드에서도 항상 이렇진 않다고 대답을 했다. 차라리 핀란드에선 일반적인 일이라고 말을 했으면 문화 차이로 이해하려고 했을 것이다. 나는 그녀의 항변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만약 파스타 양이 충분치 않았다 해도 나였다면, 아니 한국인이었다면 같이 나눠먹지 않겠냐고 묻지 않았을까? 아니, 집에 파스타가 있다는 이야기 정도는 해주지 않았을까? 


이미 학교를 다니면서 한국과는 다른 무언가를 느끼긴 했다. 조모임 과제가 많았던 때, 조모임을 같이 한 친구들과 과제 발표를 앞두고 있었다. 우리는 발표를 준비하기 위해 조금 이른 시간에 모였다. 나는 배고플 것 같아서 같이 나눠 먹을 귤 한 뭉텅이와 바나나 한 송이를 사 갔다.  


 이미 바나나  개를 먹었기 때문에 남은 바나나를 하나씩  떼어서 친구들에게 나눠주고 있었다. 나눠주는데 갑자기  핀란드인 친구가 마치 눈앞에 강림한 천사를 보듯 손을 모으고 나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한테 주는 거야?"


"응, 이거 다 같이 나눠 먹으려고 사 온 거야"


그녀의 눈망울이 다시 커졌다.


"한국에선 콩 한쪽도 나눠 먹는다고 그래"


갑자기 나도 젠 체를 하고 싶어졌다. 한국 문화의 미덕을 설교를 하듯 말하고 싶었다. 사실 속 마음에서 말하고 싶은 바는 '우린 너네와 달라'였다.


물론 나도 그들에게 김이 빠진 콜라만 대접 받은 것은 아니다. 우리과 핀란드인 친구가 주최한 파티엔 꽤 다양한 핑거푸드가 한가득 있었다. 물가가 비싸서 BYOB(Bring Your Own Beer)가 기본 룰인 핀란드에서 먹을게 풍족한 파티는 처음이었다. 또한 노르웨이에서 교환학생을 했을 당시엔 같은 조모임을 하는 친구가 집으로 초대해 직접 구운 빵을 대접했다.


또한 그들도 가까운 사이에선 한국과 마찬가지로 푸짐하게 대접한다. 핀란드인 남자친구를 만난 친구들은 크리스마스 때마다 남자친구네 집에 가서 배가 터지게 먹었다고 했다. 다만  정도의 사이가 아닌데 초대받았다고 기대는 금물이다. 음식을 나눠 먹는 행위가 한국에선 기본값이라면 핀란드에선 특별한 전제 조건이 필요한 것으로 보였다.


한글학교에서 자원봉사로 일할 때였다. 매주 토요일마다 12살짜리 한국인 핀란드 이민자 2세 아이들을 만났다. 당시 나의 논문 연구 주제인 이민자 아이들의 정체성에 대해 묻고자 다양한 워크샵을 진행했다. 사실 그렇게 물을 필요가 없었다. 이미 점심시간에 두 국가 간 정체성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그날따라 아이들이 집에서 가져온 도시락을 먹고 있는 모습을 멀뚱히 바라보고 있었다. 아이들은 일 년 이상 매주 만난 사이지만 여전히 데면데면하여 점심시간은 조용했다. (이 또한 신기했다. 어떻게 그렇게 친하지 않을 수가 있는가?) 그 또래 한국 아이들이 흔히 하는 '한입만'이 오고 가는 모습도 볼 수 없었다. 그때 정적을 깨고 한 아이가 말했다.


"선생님, 김밥 하나 먹을래요?"


그 아이는 그 반에서 유일하게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라 아버지의 직업을 따라 핀란드에 온 지 1년도 되지 않은 친구였다. 책상에서 반쯤 나온 그 친구는 김밥 하나를 들고 있었다. 이미 김밥을 쥔 손은 나의 얼굴을 향하고 있었다. 콩 한쪽도 나눠 먹는 민족이라는 자부심은 꽤 내세울 만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핀란드에서 4년을 지냈다는 말을 할 때마다 사람들이 나에게 항상 하는 질문이 있다. 그렇게 좋은 곳에서 왜 돌아왔냐고. 항상 나는 그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추워서요. 너무 춥고 외로워서요."


물리적인 추위는 옷을 여러 개 겹쳐 있는 법을 터득하며 이겨낼 수 있었다. 그러나 내 마음 속 추위는 해가 갈수록 심해졌다. 나중엔 장금이 같은 요리 실력을 발휘하여 펄펄 끓는 육개장을 만들어 먹었지만 항상 춥고 배고팠다. 따뜻한 밥 한 끼라도 푸짐하게 얻어먹은 추억이 있다면 내가 핀란드에 붙어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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