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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nfonia Feb 18. 2022

나의 최애 공간, 핀란드의 공용화장실

남성이냐 여성이냐 그 무엇도 아니냐, 고민하지 말고 들어가

핀란드에 막 도착했을 무렵, 학교에서 입학 등록을 마치고 화장실에 갔다. 급했던 터라 서둘러 들어갔다. 볼 일을 보고 나오는 순간 키 큰 남자와 마주쳤다. 놀라서 화장실을 급히 빠져나와 표지판을 다시 확인했다. 제대로 보니 화장실 표지판에는 남녀가 함께 서있었다. 핀란드뿐이 아니다. 노르웨이의 학교, 도서관, 레스토랑 등 여러 건물에 공용 화장실은 매우 흔하다. 특히 건물이나 공간이 비좁은 경우, 여성, 남성 그리고 장애인 모두가 이용할 수 있는 화장실이 있다. 


핀란드 알토대학교 도서관 1층에 있는 화장실. 남녀 따로 구분이 없다.


누군가가 핀란드에서 가장 편리한 시설을 물을 때, 나는 화장실이라고 대답한다. 혹은 가장 좋아하는 공간이 무엇이냐고 물어도 화장실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만큼 핀란드의 화장실은 효율적이며 성별을 불문하고 불쾌함 없이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여자 화장실 앞에 길게 늘어선 줄을 핀란드에선 본 적이 없다. 성별과 관계없이 빈 공간이 있으면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생리대를 버릴 수 있는 휴지통은 버릴 때 안에 내용이 보이지 않도록 만들어졌다. 물론 최근 우리나라에도 생리대 전용 휴지통이 따로 잘 만들어진 화장실이 생겼지만 백화점이나 좋은 건물에 가야 볼 수 있다.


또한 손을 씻으며 사람과 마하고 싶지 않다면 칸막이 안 작은 세면대에서 손을 간단히 씻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남성용 변기가 따로 없다. 모두 같은 변기를 이용한다.  이로써 남녀 공간이 굳이 나뉘어야 할 이유가 사라진다. 볼 일을 보는 방식이 성별에 따라 달라야 한다는 관념을 지워버렸다.


생각지 못한 편리함이 한 가지 더 있다. 화장실을 이용할 때, 여성/남성 두 가지로 구분된 성별 표지판 앞에서 고민할 필요가 없다. 생물학적 성별과 자신이 정체화 하는 성별이 같은 시스젠더(Cisgender)에게 여성과 남성으로 구분된 화장실은 자연스러울 수 있다. 그러나 생물학적 성과 자신의 성 정체성이 다르거나 한 가지로만 규정하기 힘든 경우에 두 가지 선택지는 좁다. 또한 두 가지 성별로 자신을 규정하기 원치 않는 경우도 있다.  공용 화장실에서 사람들은 생물학적 성과 성 정체성에 관계없이 같은 공간과 변기를 이용한다.


더불어 장애인과 함께 이용할 수 있도록 설계된 화장실은 여성, 남성, 장애인, 비장애인, 시스젠더, 트랜스젠더 등 여러 스펙트럼의 사람을 수용한다.

어떤 성별이든 어느 방식으로 볼 일을 보든 어떤 신체적 조건을 가지고 있든 모두에게 평등한 환경이 주어진다. 그러므로 화장실을 이용할 때 자신을 신체, 성별, 성 정체성에 따라 분류할 필요가 없다.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은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공간이 가장 이데올로기적인 장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프랑스, 독일, 영미권의 화장실을 비교했다. 예를 들어 독일 화장실의 변기엔 구멍이 조금 앞에 위치해있고 물이 없다. 지독한 냄새가 나는 그것을 아주 똑바로 관찰하고 분명하게 볼 수 있다. 반면에 영미권의 화장실에는 물이 가득하다. 스위치를 내려야 물과 함께 당신의 그것도 쉽게 내려간다. 실용적이다. 지독한 '그것'마저도 분석적으로 마주하고 싶은 자, 쉽고 간단하게 떠내려 보내고 싶은 자. 두 나라 사이의 관념을 화장실 변기에서 마주할 수 있다.


핀란드 화장실에서 내가 마주한 이데올로기는 안전과 평등이었다. 우리나라에도 공용 화장실은 종종 있다. 하지만 그곳에서 효율과 편리함까지 생각할 수 없다. 공용화장실을 떠올리면 몰카와 2016년 강남역 화장실 살인사건이 떠오른다. 여성이 집 밖 화장실을 이용할 때 편리함보다 안전이 우선순위가 되었다. 여성이 처한 현실에 따라 화장실은 아주 편리할 수도 위험할 수도 있는 공간이 된다. 볼 일을 볼 때, 화장실 표지판을 바라볼 때도 현실은 우리에게 말을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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