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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롬 Nov 24. 2024

프롤로그. 상담을 기록하는 이유

누구도 모를 마음, 자책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길




몸은 기억한다.

-베셀 반 데어 콜크 -




콜크의 명성에 걸맞게 책의 제목은 분명하고 간결하다.

트라우마가 무엇인지 짧은 한 문장에 담아냈다.

부재는 트라우마가 남긴 흔적이다.


더도 덜도 말고,

'몸은 기억한다'는 말은

참 정직한 말이다.

참 분명한 말이다.

참 아픈 말이다.

그리고, 위로의 말이다.


긴장하지 않은 척, 무섭지 않은 척... 어려서부터 많은 '척'을 해 왔다.


습관적으로 밝은 척을 하며 살아와서 어느 순간 진짜 내 감정이 헷갈릴 때가 있다.

그래서, '몸은 기억한다'는 말은 정직한 말이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숨겨놓은 나의 마음을 몸은 잊지 않고 있었다.


긴장이 될 때 맥박이 빨라지거나

우울해질 때 몸에 힘이 빠지는 것은

분명한 증거이다.


이미 오래전에 일어난 일인데 '굳이 왜?'라는 질문을 스스로 할 때조차

나는 몸이 기억하고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내가 이해하고 있다는 것은 그것으로 끝내도 된다는 압박과도 같았다.

'그만 좀 해'라고 나를 탓하고 있었다.

벌써 언제 적 일인데 아직도 그래!

트라우마는 벗어나기 힘든 수치심의 굴레를 남기고

자책과 무력감을 가져온다.


이제 잊지 못하고 털어내지 못하는 게 내 탓 같고,

모두 내가 부족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 같기 때문이다..



트라우마의 어원은 라틴어의 '큰 상처'라는 말에서 유래되었다.

언어의 한계라는 것은 이런 것이다.

실상 트라우마는 작은 것, 일상적으로 반복되는 것에서도 '발달트라우마'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나조차 큰 상처에 비해서 '이 정도는 누구나 경험하는 일이지'라고 생각해 왔었다.


발달트라우마라는 사건 트라우마보다 더 간과하기 쉬운 함정이 있다.




만성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이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거나,

그런 환경에서 살아왔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깨닫게 되는 일은 흔히 볼 수 있다.

-트라우마는 어떻게 삶 파고드는가. 폴 콘티 지음. 정지호 옮김. 심심-



발달트라우마, 만성트라우마는 학자마다 다르게 사용하지만

그 원인을 일상적으로 반복된 환경 노출되었다는 것을 공통된 요인으로 보고 있다.


발달트라우마는 사건트라우마처럼 뚜렷한 하나의 사건이 없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특별한 일이 있지 않아도 불안하고, 우울감이 느껴지고 공허함을 느끼는 일상이 반복된다. 

분명한 원인이이유를 알 수 없을 때 더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이런 일상이 반복된다. 어느 날은 화창했다가 어느 날은 별일 없이도 우울해진다. 현대 의학은 성인 정신질환의 원인을 발달트라우마에서 찾기도 한다.


지금 보면 참 이상한 일이지만..

처음 상담을 공부할 때는 나에게 문제가 있는 줄 몰랐다.

반복적인 관계의 어려움으로 외롭고 쓸쓸했지만

삶의 기본값으로 퉁치고 있었다. 

한번 살아보는 인생이기에 기준점이 없었다.


이후 상담 공부를 시작하고도 한참 후에야

트라우마 치료를 할 수 있었다.

인지행동치료와 다른 차원의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도 한참 후에 알게 되었다.


이 글들은 발달트라우마를 치료하는 내담자로서의 경험을 담은 것이다.

이제 성인이 되었고 이제 기억조차 나지 않는 많은 일들이지만

나조차 모를 이유로 현재의 삶을 방해하고 있는 고통의 근원을 찾아가 보려고 한다.


원인을 분석하지 말고

나를 이해해 주는 말로 시작하려고 한다.


지금껏 자책과 무력감, 수치심으로

얼룩진 내 마음을 천천히 닦아 보려고 한다.




오프라윈프리의 "당신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요?"



무엇을 잘 못한 거지?라는 질문에서

나에게 무슨 일이 있었지?라는 질문으로

바꾸는 것은

하루아침에 되진 않았다.


여전히 불쑥불쑥 올라오는 수치심은

자책과 무력감으로 나를 한순간에 쑤셔 넣어버리지만

숨을 내 쉬며 지금 여기를 더 자각하려고 한다.


나처럼

트라우마가 어떻게 삶을 파고들었는지

모른 채

긴 시간 고통 속에서 괴로워했던 누군가가 있다면

그 아픔에 깊은 위로를 보내며 상담과정을 함께 나누고 싶다.


우연히 오는 불행이 있다면,

우연히 오는 행운도 있다.

이제 세상에 있던 그 행운들을 맞이하려 한다.

우울에 굴레에서만 살다 가기엔 너무 억울하니까~~




그래서, 이 글들은 최대한 괜찮은 척 하고 있는 나와 나와 같을 사람들을 위해 쓰는 것이다.

발달트라우마를 가진 사람이 괜찮은 척 사는 것은 대단한 것이다.

바람 한 점, 따사로운 햇볕.. 그 무엇도

자신만의 트리거(촉발요인)*를 안고 살기 때문이다.

남들은 이해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괜찮은 척 할 수 밖에 없다.

구구절절 무엇을 설명할 수 있겠나.


괜찮은 척 하느라 수고 했고,

그것이 자연스럽게 몸에 베어 이제 내 것이 되었다 해도

문을 열며 다운 되고

문을 닫으며 공허해지고

걸으며 쓸쓸해지고

멈추며 외로워진 그 많은 순간들을 살고 있는

나를 위한 위로의 글이다.


누구도 알 수 없을 것 같은 그 외로움에 건네는 말이다.

내가 함께 있다고...

늘 함께 있다고...

 

 


*트리거(Trigger)는 총의 방아쇠를 뜻하는 사격 용어이다. 어느 특정한 동작에 반응해 자동으로 필요한 동작을 실행하는 것을 뜻한다.-위키백과

트리거는 사격 용어이지만 과거 트라우마 경험을 재 경험하게 되는 자극으로 심리학에서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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