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풀어 오른 카스텔라처럼, 사람이 풍경이 되어

정현종의 '사람이 풍경으로 피어나'

by 나노

사람이 풍경으로 피어나


정현종


사람이

풍경으로 피어날 때가 있다

앉아 있거나

차를 마시거나

잡담으로 시간에 이스트를 넣거나

그 어떤 때거나


사람이 풍경으로 피어날 때가 있다

그게 저 혼자 피는 풍경인지

내가 그리는 풍경인지

그건 잘 모르겠지만


사람이 풍경일 때처럼

행복한 때는 없다


출처: <섬>, 정현종, 문학판, 2018.


만일 '풍경'이 주인공이려면?

풍경화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풍경화는 자연이나 도시의 경관을 그린 것이라.

사람이, 오직 사람만으로 풍경화를 그린다면, 이것은 풍경화라 해야 하는지, 인물화라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시인이 말하는 '사람이 풍경으로 피어나는 순간'을 알 것 같다. 대형 커피숍에서 따순 차 한잔 들고서 보는 사람 그림. 온몸으로 퍼지는 따뜻한 기운과 눈앞에 펼쳐진 사람들이 미소를 피어나게 한다.

다들 앞사람의 이야기에 한껏 몰입해서 대화하고 초집중해서 듣는 광경이 아름답다. 그 혼란한 소음과 정신없는 동선들이 왜 흐뭇한지는 명쾌하게 설명할 수 없지만, 뜨끈한 국밥 같은 그 찰나가 좋다.

벌떡벌떡 튀어 오르는 물고기의 자맥질 같기도 하고, 와글와글 소란스러움으로 자신을 규명하는 성토 대회 같기도 하다. 조용히 그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흐뭇하다. 변태(?)는 아니다. 억지로 집중해서 들으면 옆자리의 담소가 들리기도 하지만, 그걸 굳이 듣고 싶지는 않다. 누군가의 사적인 이야기가 궁금한 것이 아니다. 그 '강렬한 생의 에너지'가 좋은 것이다.


시간에 이스트를 넣은 것처럼 같은 50분의 부피가 그렇게나 다르다. 업무 할 때 50분은 딱딱하고 평평하다면, 좋은 사람을 만나 나누는 담소 50분은 폭신폭신하고 두둥실한 카스텔라처럼 보드랍다. 누군가 행복한 순간을 증폭시키는 이스트를 뿌린 것이 틀림없다.


사람이 풍경으로 피어나 꽃이 되는 순간들.

각자 다르겠지만, 점심 급식을 먹고 교실로 돌아와 삼삼오오 모여, 조잘조잘거리는 여고생의 수다삼매가 제일 아름다웠다. 나에게는...

그때의 나도 이미 풍경으로 부풀어 올랐기에 가능했을 것이고, 심사가 편했기에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다. 속이 시끄러웠다면 소란스럽다 했겠지.

그 짧은 행복을 모두 만끽했으면.

이걸 사랑이라 해야 할까?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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