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서 만난 사람 2

따뜻하게 의지가 되었던 신부님과 수녀님

by 엉클써니

나의 세례명은 에스더이다.


어딘가 낯선 곳을 방문하게 되면

의례 그곳에서 가까운 성당을 찾게 된다.


교무실에서 교무보조 사무원으로 근무하시는

동네 주민분이 계셨다.

우리는 그녀를 여사님이라고 불렀다.

(물론 학교 복도와 화장실을 청소해주시는 할머니도 여사님이었고,

학교급식소에서 급식조리원으로 근무하시는 학부모님들도

통칭, 다 여사님으로 불렀다.)

발령받고 며칠이 지나서, 교무실 여사님에게 동네 성당의 위치를 물어보았다.

여사님은 미국인 신부님이 계신다는 말씀도 해주셨다.

그날 퇴근 이후에 나는 성당을 찾았다.

십자가의 길을 걷고 난 후,

사제관의 현관문을 똑똑 두드렸다.

마침 신부님이 안에 계시는 모양이었다.

키가 매우 큰, 연세가 무척 많아 보이시는 신부님이

문을 열어주셨다.





교동 성당


신부님은 낯선 방문자를 기꺼이 맞아주셨다.

처음 만난 날인데 신부님과 참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로베르토 라파엘로 펠리니(한국 이름 방인이) 신부님은

1960년 미국 메리놀 외방선교회의 최초 파견 사제로 한국에 오셨다고 한다.

청주교구에서 사목 하시다가 은퇴하신 후에

2004년부터 교동 성당(공소)에 머무시면서

성당을 돌보고 계신다고 하셨다.


한국에서 오랫동안 지내셔서 그런지

영어로 대화하는 것보다 한국말이 더 편하다고 하셨다.

작은 비닐하우스에서 본인이 드실 채소를 직접 재배하셨으며,

오렌지 같은 과일을 좋아하셨던 기억이 난다.


신부님은 연세가 많으셨는데,

매주 주일미사를 직접 집전하시는 것이 상당히 놀라웠다.

주말에 업무 때문에 집에 못 가고 관사에 남게 되는 경우,

나는 주일미사에 참석하기도 하였다.

고령의 신자들이 주를 이루는 섬마을 성당에서

신부님은 신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씀을 강조하셨다.

"우리의 외적 인간은 낡아지지만,

내적 인간은 나날이 새로워지고 있습니다.(코린트 후서 4:16)"


내가 발령받았던 첫 해에는 성당에 수녀님은 안 계셨다.

이후, 은퇴하신 수녀님 세 분이 자발적으로 섬김의 봉사를

원하셔서 교동에 들어오셨다.

학교 바로 앞에 있던 집 한 채에 세를 얻어서

수녀님 세 분이 기거하셨다.

나는 가끔, 주일에 좀 일찍 교동에 들어오는 날에는

집에서 이것저것 반찬이나 과일 등을 싸가지고 와서

수녀님들과 나누어 먹고 담소를 나누곤 했었다.

물론 수녀님들은 내가 나눈 것의 몇 배의 선물을

바리바리 싸서 건네주시곤 했었다.

직접 만드신 빵이나 식초, 또는 지역 성도분들에게 받은

먹거리들을 나누어주셨다.


아무리 내가 원해서 간 섬마을 학교라 해도

타지의 낯선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것은

그리 낭만적이지만은 않았다.

그 점에 있어서는 학교 교사인 나나,

성도들을 섬기는 신부님, 수녀님들이나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즐거운 날에도,

마음이 답답하거나 화가 나는 날에도

성당에 앉아서 기도를 했다.

그리고 신부님, 수녀님들과 얘기를 나누었다.

신부님, 수녀님들이 곁에 있다고 생각만 해도

왠지 힘이 났다.

그들에게 진 마음속 사랑의 빚은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크다.


교동을 떠나고도 몇 번 그분들을 찾아뵈었다.

항상 단정하게 그 자리에 계시는 것이 너무나 감사했다.

하지만 코로나 19의 확산으로

그분들의 연세를 생각하니 함부로 방문을 하는 것이

조심스러워서 한동안 뵙지 못했다.


이 글을 쓰다 보니 연락드리고 한번 방문해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맛있는 홍시를 사서 찾아뵈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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