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도 교무실로 불려 갔다.
"야, 너 왜 이렇게 떠들어? 너 때문에 선생님이 얼마나 힘든 줄 아니? 손 대. 몇 대 맞을래?"
초등학생 때부터 항상 장난을 많이 치는 개구쟁이로 선생님들께 찍힌 나는 나름대로 선을 넘지는 않았기 때문에 귀엽게 봐주시는 때도 많았지만 골칫덩어리로 보는 선생님도 있었다.
내 장난은 중학교 때부터 더욱 심해져 수업시간이 7교시가 있던 날이면 7번 혼나는 날, 8교시가 있던 날이면 8번 혼나는 날이었다. 앞뒤, 옆 가리지 않고 사방에 있는 친구들과 웃고 떠드는 게 재밌던 터라 열강 중이시던 선생님의 노력을 무시한 채 키득키득거리거나 그 당시엔 핸드폰이 없어 쪽지로 시답잖은 비밀대화를 주고받느라 혼나기도 하였고, 억울하게도 친구의 쪽지를 전달해주다가 딱 걸리기도 하였다.
요주의 인물이었기에 다 같이 떠들어도 괜히 나만 더 걸릴 때도 많았고, 같이 떠든 애들 데리고 나오라는 말씀에도 나름 의리를 지킨답시고 혼자 떠들었다고 의기양양하게 말한 뒤 엎드려뻗쳐 자세로 빠따를 맞곤 하였다. 덕분에 벌칙인 청소당번에는 항상 들어있어 교실 청소는 기가 막히게 잘했다.
중학교 2학년 1학기를 마친 후 국제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며, 한국에서처럼 웃고 떠드는 분위기가 아니었던 교실 분위기에서 잘 적응하지 못하고 눈치 없이 시끄럽게 했다가 외국인 선생님들께 수없이 잔소리를 듣곤 하였다. '차라리 때려줬으면.. 그냥 한 대 맞고 끝나는 게 낫지' 싶을 정도로 무시하는 발언과 문제아라고 여기는 선생님들의 눈빛들이 그 당시엔 꽤나 원망스럽고 외롭기까지 했다. 물론 지금 생각해보면, 한 대 쥐어박고 싶으셨을 텐데 그걸 참았던 그분들도 참 대단하다고 느낀다.
고등학교 때에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크지 않은 규모였기에 그렇겠지만 학원에서조차 '아~ 쟤, 시끄럽고 장난 많이 치는 애'라고 여겨져서 매달 월말 테스트의 결과에 따라 가끔 반을 이동했을 때에도 이미 좋지만은 않은 쪽으로 유명했던 나를 알고 있는 아이들이 많았다.
의대 입학 후 예과 1학년 1학기 때에도 동기 형님들이 나랑 친구가 너무 시끄럽게 해서 수업에 방해된다고 따로 불러서 한마디 하기도 하였다. 교양수업을 배우는 예과 수업이었던 터라 좀 당황스러웠지만, 비싼 등록금을 내고 듣는 수업을 나로 인해 피해가 끼치면 안 된다는 생각에 그다음부터 땡땡이를 치고 당구를 치러 가곤 했다.
그렇다. 나는 산만하고 시끄러운 아이였다. 그렇게 외향적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우연히 하게 된 MBTI 검사에서 당당하게 I가 나왔다. E 같은 I. 참 황당했다.
학창 시절부터 놀기도 좋아하고 친구들하고 있을 때는 나름 분위기도 잘 띄우고 재밌게 노는 편이었지만, 사실 혼자 있을 때가 더 편하고 마음이 놓인다. 나는 고독과 사색을 즐기는 말 많은 사람이었다. 좀 어이없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내 기질은 자극추구형이라 충동성이 강하고 모험을 즐기는 편이지만 성격은 그것과는 달랐던 것이다. 정신건강의학을 공부하며 각종 진단에 내가 어디에 조금 속해있을지 가늠해보는 재미도 있는데(나름 직업병인 것 같다), 나는 어렸을 때 ADHD가 맞았다. 약간의 논란은 있지만 아직까지는 ADHD가 12세 이전의 소아 때부터 시작되어야지만 진단이 가능한데, 성인이 되며 저절로 낫는 비율(관해율)은 50~60% 정도이다. 연구 결과가 그런 것이지 사실 열아홉 살에서 성인이 되는 스무 살이 되는 순간에 갑자기 반 이상의 사람들이 확 변하는 건 아니고, 조금씩 내적, 외적 성향과 환경에 따라 작동 모델이 적응하며 좋아지는 부분이 있으리라 여겨진다.
나 또한 20대 중반까지는 ADHD 진단 기준에 거의 합당한 수준까지 이어지다가 나이가 들고 머리가 점점 무거워지며 엉덩이 또한 같이 무거워져 산만함은 줄고 한 가지에 오랫동안 집중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사람은 각자가 위치한 환경에 따라, 보고 듣고 느끼는 감정에 따라, 그리고 지혜와 경험으로서 쌓여 형성되는 가치관에 따라 변하고 또 변한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나 스스로를 너무 얽매고, MBTI를 맹신하여 16가지 유형의 하나로서 가둬두며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는 각자가 유니크하고 그 유니크함이 또 다른 유니크함으로 변하며 살아간다.
나도 이제 오랜 친구인 ADHD와 헤어지고 있음에 홀가분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