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틴아빠 Sep 18. 2022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짬타이거,
마틴이(1)

무적의 태풍부대.

군생활 동안 총 세 번의 부대를 경험하였는데, 그 처음은 6군단 28사단 의무근무대였다. 

당시 사단 장병들의 정신건강의 책임지던 군의관으로서 일하며 우리 부대 내 지휘관, 장교 및 부사관 그리고 의무병들과 좋은 추억이 많았지만 그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단 하나를 꼽는다면 단연 마틴이를 만난 날이다.


짬타이거라고 들어본 적이 있는가?

군대를 다녀온 분들이라면 너무나도 익숙한 단어. 군대에서는 급식으로 먹는 음식 중 남은 잔반을 '짬'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그 짬을 먹는 길냥이들을 짬타이거(a.k.a 짬타)라고 부른다. 


우리 부대 짬타는 공식적으로는 회색 한 마리, 흰검 섞인 두 마리 해서 총 세 마리가 있었고, 그들의 관계는 어미 하나와 자식 둘이었다. 아마 가정을 버리고 간 다시는 보이지 않는 아빠 고양이가 검은색이었으리라. 

의무대 응급실 입구에 항상 널브러져 누워서 냐옹 거리며 누워있으면 동물 애호가였던 동료 군의관들이 건강하게 키우기 위해 매일 같이 사료를 바치기도 하고, 착한 병사들은 PX에서 짜지 않은 소시지 등 이것저것 사와 제공하며 근사한 대접을 마다하지 않았다. 우리 짬타들은 그래서인지 길냥이 답지 않게 사냥은 거의 하지 않고 군복 입은 사람들이 지나가면 꼬리를 바짝 세우고 애교 부리며 졸졸 쫓아다니며 밥 달라, 물 달라하며 밀당도 하고 때로는 상전 노릇을 하는 게 일상이었다. 


항상 위기는 가장 부유하고 너무 나태해질 때 온다 했던가. 

우리 부대에도 어느새 검은 그림자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두둥..

갑자기 어떤 덩치 큰, 정말 무섭게 생긴 소위 '떼껄룩'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처음엔 한 마리였지만, 가끔 자기 친구도 데려오는 듯했다. 여기가 맛집이라고 소문이 났던 탓일까. 우리가 루틴 하게 주던 사료를 부대 짬타들이 먹지 못하고 그 녀석들이 차지하고 있던 걸 본 순간, 그때가 위기였음을 알았어야 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냥 한 번 지나가는 애들이겠지, 쟤네들도 길냥인데..' 하는 안일한 생각에 심각하게 생각하진 않았다. 


어느 날, 어미 짬타의 배가 불룩해지기 시작했다. 

요새 며칠 잘 안 보인다 싶었는데 발정기에 다른 곳으로 마실을 떠난 후 애를 배 온 것 같았다.

부대 장병들은 기특한 마음에 더 맛있는 걸 많이 먹이고 심지어 출산하기 전에는 병사들이 박스와 함께 따뜻한 담요들도 덮어두며 힘들게 출산하는 어미를 위해 축하의 준비를 마쳤다. 며칠을 고생하며 그 작은 몸에서 태어난 아기 고양이가 총 8마리였었나. 그쯤 되었다. 너무 보고 싶었지만, 사람 손을 타는 아기 고양이는 야생에서 자란 어미가 버릴 수도 있다는 말에 쳐다보지도 못하고 멀리서 조마조마한 마음을 가지며 고생한 어미를 위해 간식만 조금씩 근처에 두고 오곤 하였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출산 후 3-4주 정도 흘렀을 때, '떼껄룩'이 다시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사라졌다. 

다음 날 부대 내 어딘가 배수로에서 그 시체가 발견되었다. 다들 충격에 빠져있을 때 나름 짬타 전문가였던 부사관 왈, 길냥이들은 세력 다툼을 할 때 가장 취약한 새끼를 물어서 죽인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어떡해..' 탄식이 흘러나왔다. 

나머지 새끼들도 그렇게 죽임을 당하는 건 시간문제였다. 물론 약육강식의 야생이라지만, 그래도 우리 짬탄데... 이렇게 예쁜 애기들이 한순간에 죽는 건 너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시점이 마침 내가 부대 이동을 하기 직전 시기였고, 나는 큰 결심을 하게 된다.

'그래 한 마리를 입양하자.' 


신기하게도 그렇게 결심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부대 바로 앞에 거주하던 엘리베이터도 없던 숙소에서 4층까지 올라가는데 길냥이 한 마리가 간택해달라고 졸졸 쫓아오더니 결국 내 침대까지 차지하는 일이 있었다. 아무 준비도 안되어있고 키우는 방법도 몰랐기에 급하게 같이 살던 동료 군의관이 편의점으로 뛰어갔다와 츄르만 먹이고 다시 돌려보냈는데 그게 마음이 걸렸었던 터였다. 


나는 원래 고양이를 무서워했기에 태어나서 한 번도 고양이를 키워본 적이 없었고, 사실 짬타들을 만나기 전까지 고양이들을 제대로 만져본 적도 없었다. 신기하게도 짬타들과 정이 많이 들어서 그런지 그때는 그렇게 생각한 결심과 동시에 인터넷에서 고양이 습식사료와 집, 놀잇감, 화장실 등등 필요한 용품을 검색 후 주문하기 시작했다. 일사천리로 진행된 입양 계획은 그렇게 부대를 옮기기까지 길지 않은 시간 내에 이루어졌고 '마틴이'라는 이름을 가진 애기 고양이를 입양해오게 된다.


발톱이 날카로운 애기 마틴이.


입양 첫날.

집안에서 키우기 위해 첫 목욕을 개시하였고, 혹시 아픈 곳은 없나 싶어 동물병원에 데려가 각종 검사를 마쳤다. 수의사 친구에게 물어보고 동물약국에서 필요한 예방주사를 산 후 처음으로 직접 맞히기도 하였다. 


그러던 중, 매우 슬픈 소식이 들려왔다.

마틴이의 형제들이었던 꼬물이들이 대부분이 '떼껄룩'에게 희생당했다는 것이었다. 일단 눈에 보이던 건 한두 마리뿐이라고 했다. 마음이 너무 아팠지만 한편으론, 마틴이에게는 참 다행이었다..



적응 중인 마틴이. 요가하며 몸단장하는 모습이 인형 같다.


그렇게 마틴이는 새로운 곳에서 잘 적응하며 우리 식구가 되었다.

워낙 어려서 불린 사료나 습식사료도 잘 먹지 못해 당시 여자 친구였던 현재의 아내와 함께 분유를 산 후 주사기로 급여를 해주기도 하고, 배변훈련을 하기 위해 모래 위에서 손가락으로 파는 시늉을 하며 시범을 보인 후 마틴이에게 따라 하게끔 하기도 했다. 참 어설펐는데, 신기하게도 본능인지, 천재인지(팔불출 아님) 마틴이는 곧잘 따라 하곤 하였다.


애교 부리며 본인 집을 오르고 있는 마틴이.


손바닥보다 작던 마틴이는 지금 벌써 역변한 채로 글을 쓰고 있는 나를 저 멀리서 지긋이 바라보고 있다.

그의 현재 모습은 2편에서 다루기로 하겠다..


이전 09화 정신과 의사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