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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틴아빠 Sep 06. 2022

정신과 의사2

(ft. 직업병)

정신과 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어떨 것 같은가?




의대생이었던 시절 어느 과의 의사가 되고 싶다가 아니라 어떤 의사가 되고 싶은지에 대한 고민이 더 컸던 것 같다. 호기로운 마음을 가진 20대 초중반의 나는 의사로서의 사명감을 갖는 게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런 마음과는 다르게 의대 내에서 성적은 그냥 그런 평범한 수준이었지만 말이다. 

한 학기에 30학점이 넘는 수업을 꾸역꾸역 들어가며 수많은 시험을 치러 대학교 5학년(본과 3학년)이 되자, 각 과별로 돌며 이론이 아닌 실제 의료행위를 목격하고 선배 의사 선생님들이 환자들에게 의료 행위하는 것을 간접 경험하며 배우는 실습(폴리클 혹은 PK라고 한다)을 하였다. 1년 동안 조별로 나누어 교수님들 회진 도실 때도 뒤에서 졸졸 따라다니고, 실무적인 수업을 듣고 각자 논문이나 케이스 등을 발표하기도 하는 등의 경험을 하는 게 주 업무였다. 이를 통해 이론으로만 배웠던 각 과의 실체(?)를 조금이나마 피부로 와닿게 느낄 수 있었고 전문의로 살아갈 때의 미래의 내 모습도 자연스럽게 상상하곤 하였다. 


대학병원에서의 정신과 안정병동에는 꽤나 급성이고 증상이 심한 환자분들이 많이 입원해 있다고 들어 사실 걱정도 되고 어린 마음에 한편으로는 무서운 마음도 들기도 했다. 막상 실습을 돌며 느꼈던 것은, 병원이라 칙칙한 분위기는 어쩔 수 없었지만 오히려 타과 병동보다도 무언가 더욱 활기차고 정돈된 느낌이었고 환자들도 밝은 분위기의 웃음을 띠며 우리를 편히 맞이해 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망상을 주 증상으로 입원해 있던 환자가 나에게 꽂혀 해프닝이 있어 약간 당황스러운 일이 발생했다. 당시 주치의였던 선배에게 말씀드리며 흐지부지 어떻게 잘 넘겼지만 정신과라는 특별하면서도 특이하다고 느껴졌던 과에 대한 호기심의 꽃이 언제 폈냐는 듯 시들었던 좋지만은 않은 기억이었다. 


그 기억만으로 끝이 났다면 지금 나는 다른 전공을 공부한 타과 전문의가 되었겠지만, 본과 4학년 때 의사국가고시를 준비하며 정신과라는 학문이 얼마나 다채롭고 흥미로운 지 깨닫게 되었다. 20대의 나를 아는 사람이라면 내가 학문에 재미를 느꼈다는 것 자체가 웃음 포인트라고 여길 것이다. 그런데 정말 재밌었다. 수업시간 때 교수님이 정신과 약물을 쓰는 것은 예술이라고 볼 수 있다고 표현하셨는데, 정말 공부를 하면 할수록 증상과 진단에 따른 약물의 세밀한 컨트롤로 뇌의 신경전달 물질과 수용체 결합을 미세하게 조절할 수 있다는  사실이 꽤나 흥미롭게 다가왔던 것 같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의사가 되었고, 인턴 생활을 거치며, 레지던트 트레이닝을 받은 후 정신과 의사가 되어 있었다.






5평 남짓한 공간에 동네 작은 독서실처럼 양쪽 벽면에 각자의 책상과 의자가 나열되어 있었고 그 중간에는 동그란 베이지 색의 3~4인용 정도 크기의 탁자가 놓여 있었다. 누군가 그 테이블을 지나가려면 앞으로 의자를 당겨 앉아야만 툭 치고 가지 않을 수 있었던 그 좁은 공간에 나를 포함한 8명의 의국원들이 각자의 역할을 맡고 있었고, 그때의 나는 그곳에서 가장 하등하고 아는 것 없는 무지렁이 정신건강의학과 레지던트 1년차 일 뿐이었다. 각자의 책상 위 책장에는 각종 정신과 교과서와 서적, 논문 등이 제 스타일대로 꽂혀있었고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숨이 막히기도 했다. 


"여기 선생님하고 같이 계신 분들이 죄다 정신과 의사란 걸 명심하세요. 다들 겉으로는 그냥 있는 것 같죠? 선생님들 행동 다 하나하나 보고 분석하고 있어요. 그게 절로 그렇게 돼요. 그니까 평소에 잘하셔야 해요."


정신건강의학과 의국에 처음 발을 내딛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같이 고생하던 동기와 함께 두 달째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병원 안에서 자고 먹고 할 때 당시 옆 병원에서 파견 오셨던 2년 차 선생님께 들은 말이다. 

우리를 위해서 해주신 말씀이겠지만,

'진짜 정신과 선배들은 다 그렇게 일일이 우리의 행동을 감시하고 파악하고 있을까? 좀 소름인데..?' 

라는 생각을 했다. 심지어 그 선생님께서는 진짜 사람의 행동 분석을 잘하시는 분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더 무서웠다. 






꽤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 되돌이켜 보니 그 시절 그 선배의 말은 우리를 겁주려고 장난치신 게 아닐까 싶다. 내 주변에 있는 정신과 의사들은 실제로 그렇게 일상생활에서까지 에너지를 쏟는 사람은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분석도 에너지가 필요하고 공감도 마찬가지다. 이를 어려서부터 잘하는 축에 꼽히는 사람도 있겠지만, 보통 공감은 정신화(mentalization)라는 과정 속에서 피어나고 이는 충분히 훈련으로 기를 수 있는 역량이다. 전공의 수련과정에는 이런 부분도 포함된다. 이런 수련은 사람의 인생을 엿보고 그들의 삶의 고됨에 공감하고 온전히 올바른 길로 돕기 위해서는 평생 해야 하는 사명감이다. 절대 가볍거나 쉬운 길이 아니기에, 더욱 조심해야 하고 경건한 마음가짐으로 해야 하는 과정인 것이다. 이를 위해 오늘 하루를 되돌아보며 마음챙김으로 마무리하고 자야겠다.


다들 주변에 정신과 의사가 있더라도 괜한 오해는 하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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