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계절학기
다음날, 아내에게서 답장이 왔다.
많이 괴롭고 하루에 열두 번도 넘게 맘이 변할 줄 알아. 나는 옆에서 지켜보며 조언만 하는데도 이렇게 힘든데, 그걸 직접 견디며 공부해야 사람은 오죽하겠어.
가장이라는 무게가 너무 무겁지? 벗어나고 싶을 때도 있고. 우리가 옳은 선택을 한 건지 알 수 없으니 더 괴로운 거 같아. 하지만 앞날을 누가 알겠어. 알려주는 사람이라도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다만 우리가 선택한 길이니 비굴한 생각은 하지 말자. 우리 나이쯤 되면 다들 이렇게 불안해하지 않을까? 그러니 서로 이해하고 위로하자. 그래도 우리는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까 언젠가 결실을 보게 될 거라 믿어. 올여름 지나고 나서 다시 찬찬히 생각해 보자. 세상이 변하면 우리도 변하면서 살아야 하지 않겠어. 그래도 혼자가 아니라, 함께라서 다행이야. 나중에 우리 애들 커서 다 출가하면 할 얘기 많겠다. (크크)
--- 2017년 5월 24일 ---
지난 4월부터 H대학교에서 "빅데이터 & R프로그램” 특강을 시작했다. 주중 3일, 프로그램 문법과 데이터 분석 기초를 가르쳤다. 수강생은 대학생과 직장인이 섞여 있었고, 학교 담당자는 "요즘 R프로그램 수요가 많아요. 잘 부탁드려요."라며 거듭 당부했다.
낯선 캠퍼스, 오전 강의를 마치고 점심은 학생식당에서 혼밥으로 먹었다. 오후 강의 전까지는 강의동 바로 아래에 마련된 야외 공연장 계단에 앉아 따스한 햇살을 온몸으로 맞았다. 오월 대학 캠퍼스, 오가는 학생들의 모습이 너무도 싱그러웠다.
한 달쯤 지나 첫 강의료가 입금되었다. 대학원에서 배운 기술로 번 첫 돈이었다. 나 자신이 대견했고, 마치 횡재라도 한 기분이 들었다. 스물여덟 첫 월급 때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그때 산 빨간 내복 선물이 떠올랐다. 종합시험 합격도 기념할 겸, 그간 소홀했던 가족을 챙기고픈 마음이 들었다.
집 근처 새로 생긴 M 뷔페를 예약했다. 나는 콤비 정장을 꺼내 입었고, 아내와 두 아들도 한껏 멋을 냈다. 대형 유리 벽면, 붉은 계열의 격자형 대리석 바닥, 은은한 조명 등으로 꾸며진 세련된 뷔페 공간의 한가운데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두 아들은 푸드 파이터처럼 접시를 비워댔다. 물끄러미 바라보니 옛 추억이 스쳐갔다.
'손바닥 위에서 얼르고 장난치던 꼬마 아이였는데 이제 건장한 청년이 되었구나. 내년이면 큰아이가 고3이라니, 세월 참 빠르다.'
식사를 마치고 주변 상점가를 거닐었다. 달빛에 누에고치처럼 물든 새털구름 무리가 남쪽으로 흘러갔다. 오랜만의 '4인 가족 완전체', 근사하고 행복한 저녁이었다.
종합시험 부담도 끝났고, 코스웍도 마쳤으니 이제 논문에 집중할 수 있었다. 메타(Meta) 분석 논문을 먼저 마무리하고 싶었지만, 지도교수님은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불안했지만 별도리가 없었다.
CAC(Coronary Artery Calcification, 관동맥석회치) 연구도 한동안 표류하던 중, 스타틴(Statin) 복용과 CAC 사이의 매개분석(Mediation Analysis)을 해보기로 하면서 돌파구가 열렸다. 격주로 Y대 의대에 가서 소 교수님과 협의하며 내용을 다듬었다. 6월 말에는 투고 저널과 저자 배분까지 논의했다. 뜻밖의 진척이었다. 처음 손발을 맞춰 보는 공동연구이기도 해서, 애초에 논문까지 어려울 거라는 지레짐작을 했었다. 나중이던 것이 먼저 되고, 집 나간 아들이 효자가 되어 돌아온 격이었다. 세상일이란, 정말 모를 일 투성이었다.
그때 교무과에서 긴급 메일이 왔다. MIS(Management Information Systems) 과목 여름 계절학기 강사를 구한다는 내용이었다. 교수로서 강단에 설 기회였다. 늘 꿈꾸던 자리, 바로 수락 메일을 보냈다.
나는 코스웍을 마쳤고 종합시험도 합격하였기에, 시간강사 신분 자격으로 강의를 맡을 수 있었다. 다만 강의 준비할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하루 벌어 하루를 사는 대학 강사가 되어야 했다. 매일 밤늦게까지 다음날 강의를 준비했고, 강의를 마치면 곧바로 다음날 강의자료를 준비해서 업로드했다.
배정받은 강의실은 계단식 구조였다. 교수는 강단 아래, 학생들은 위로 올라갈수록 높아지는 계단식 책상에 앉아 있었다. 강단에서 마이크를 차고 출석을 모두 부르고 고개를 들었을 때, 책상을 따라 쭉 늘어 선 38명의 학생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제 정말 강단에 섰구나."
꿈꾸던 순간이었다.
수업은 전, 후반으로 나눠 3시간씩 진행했다. 온몸이 땀범벅이 된 채 연구실로 돌아오면 방전된 배터리처럼 쓰러졌다. 잠시 눈을 붙이고 나서야 다음날 강의자료를 준비했다.
중간고사 다음날, 그날도 무척 더웠다. 강의실 스크린에 히사이시 조의 <Summer>를 틀어놓고, 반대편 강의실 스크린엔 채점한 성적을 히스토그램 차트로 보여주자 학생들이 웅성거렸다.
사실 MIS 강의를 흔쾌히 수락한 건 이유가 있었다. 코스웍과 종합시험에서 이미 여러 번 반복 학습했고, 실제 IT 현장에서 경험했던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나보다 이 과목을 잘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라는 자만심도 있었다.
4주, 총 16회 강의를 정신없이 달렸다. 부족함을 돌아보거나 아쉬워할 겨를도 없었지만 깨달음이 하나 남았다. 프레젠테이션은 단거리 경주라면 대학 강의는 마라톤이었다. 짧고 강렬한 임팩트가 아니라 이십 대 초반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춰 긴 호흡으로 달려야 했다. 프레젠테이션이라면 근 20년의 사회생활로 이골이 날 정도로 단련되어 있었지만, 대학강의는 사뭇 달랐다.
때로 학생들의 표정이 굳어지며 ‘이 교수, 뭐지?‘라는 어색한 공기가 흐를 때도 있었다. 강단 위 교수는 3시간짜리 연극의 주인공 역할을 하면서, 총 16부작(한 학기 4개월) 시리즈의 감독 역할을 함께 겸해야 했다.
그제야 몸으로 알게 되었다. 안다는 것과 가르친다는 것은 엄연히 다르며, 잘 가르치는 방법이 따로 있다는 것을. 그리고 잘 가르치기 위해서는 별도의 노력이 요구되며, 이 분야에 재능을 타고난 사람이 있다는 것을.
기말고사 후 성적 처리를 마쳤다. 성적 정정 기간에 학생들이 하나둘 찾아왔다. 그중 한 여학생이 쭈뼛거리며 어렵게 말문을 열었다.
"교수님, 로스쿨 진학해야 하는데... 이번 성적이 B+라 A가 필요한데요. 혹시 가능할까요?"
이전 시험과 제출한 과제 등을 다시 살펴보았지만 성적 정정을 해 줄 수가 없었다. 안따까웠다. 돌아서는 학생 뒷모습을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스무 살 청춘도 많이 버겁구나."
꿈꾸던 대학 강단에 섰지만, 꿈과 현실은 달랐다.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강의를 잘하는 사람인가?
나는 강의를 직업으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인가?
혹시 그저 책 읽고 연구만을 좋아하는 그런 사람은 아닌가?
그리고, 궁금했다. 내 수업을 한 달간 들은 38명 학생들이 어떤 객관적(?) 평가와 독설을 선물할지?
연일 이어지는 폭염 속, 한여름 지독히들 울어대는 매미를 친구 삼아 한 달간 강의를 끝냈다. 통장엔 강의비라는 이름으로 297만 원이 입금 되었다. 시간강사가 한 학기에 네 과목을 담당하면 대략 이 정도의 금액을 받을 수 있다.
가족과 서울 근교로 1박 2일 짧은 휴가를 다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