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탄핵한다."
2017년 3월 10일 오전 11시, 헌법재판소의 역사적인 선고가 있었다.
온 나라는 탄핵의 여진으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그리고 3월 22일, 나는 회사에서 정식으로 퇴직처리 되었다.
퇴직 한 달 전인 2월 중순 경, Y 전무로부터 연락이 왔다.
"실장님, 이제 복귀하셔야죠.
마침 미국 본사에서도 헬스케어 AI를 밀고 있습니다.
그동안 공부하신 것도 있고, 제가 보기엔 찰떡궁합 자리입니다.
좋은 기회이니 돌아오셔서 함께 일해요."
Y는 대학 동문으로 나름 친분이 있던 터였다. 그는 복귀 후 내가 맡을 자리뿐만 아니라 무급휴직 기간 연장 가능 여부를 마치 자신의 일인 것처럼 알아봐 주었다. 무척 바쁠 텐데 고마웠다.
"네, 전무님. 생각 잘 정리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최종 선택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인사팀에서는 기간 연장이 어렵다고 최종 안내했다. 곧 풀타임 박사과정을 위해 받았던 2년의 무급휴직이 끝난다.
회사로 돌아가느냐 아니면 끝까지 박사과정을 이어가느냐.
이미 정해진 수순이고 마음 또한 기울어 있었지만, 막상 회사로부터 공식 통보를 받자 몸이 반응했다. 미열이 시작되고, 며칠 동안 열병에 시달렸다. 포기해야 할 것에 대한 미련, 보이지 않는 미래를 향한 불안, 선택의 망설임이 뒤섞였다.
그때 문득 예전 서해 바다에서의 기억이 떠올랐다.
얕은 수심이라 방심했는지 튜브에 몸을 맡기고 있다가 깜빡 잠이 들었고, 그대로 해안 절벽을 따라 먼바다로 떠밀려 간 적이 있었다. 순간 너무 놀라 당황하다가 튜브를 놓쳤다. 어찌해 볼 겨를도 없이 미끄러지듯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그런데 발이 닿지 않았다. 검푸른 바다빛, 죽음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지척을 분간하지 못하는 무중력의 공간에 나는 갇혀 버렸다.
'이렇게 허무하게 죽을 순 없어.'
온 힘을 다해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한참을 바다와 씨름했다. 마침내 발가락 끝에 부드러운 진흙의 이물감이 느껴졌다. 허우적거리며 해변으로 당도한 나는 그대로 한참을 주저앉았다. 팔다리는 오한이 난 것 마냥 연신 떨렸고, 온몸엔 닭살 투성이었다. 죽음에 너무 가까웠던 탓일까. 도저히 그 자리에 더 이상 머무를 수가 없었다. 곧바로 짐을 싸 집으로 돌아갔다.
Y 전무의 전화를 받는 순간, 그때의 악몽이 되살아났다. 박사과정 2년이 지났건만... 여전히 나는 바다 한가운데에서 허우적대고 있었다.
복잡한 마음에 홀로 교정을 걷다가 소 교수님과 마주쳤다.
"명훈 씨, 저녁 했어요? 같이 갑시다."
연구실 학생들과 함께 학교 근처의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갔다. 교수님은 늘 이곳만 찾는다고 했다. 그날 나는 모처럼 근사한 요리를 먹었다.
식사 후 연구실에 초대받았다. 책상 하나, 책꽂이 두 개, 공기청정기 하나뿐인 휑한 공간. 연구실 통창 너머로는 웃으며 지나는 학생들의 모습이 보였다. 잠시간의 침묵 끝에 교수님이 말씀하셨다.
"명훈 씨, 회사 복귀를 고민한다고 들었습니다.
솔직한 현실은 이렇습니다.
명훈 씨는 나이가 있어서 현실적으로.... 교수 임용이 쉽지 않을 겁니다.
상식적으로 학과 주임이 자기 나이보다 많은 교수를 뽑겠습니까?
아직 복귀할 길이 열려 있다면, 회사로 돌아가세요."
얼굴이 후끈 달아올랐다. 지도교수가 아닌, 굳이 내 인생을 걱정해 줄 이유가 없는 분의 말씀이었기에 더욱 가슴이 아렸다. 코스웍 기간 중 나는 소 교수님이 강의하시는 데이터마이닝과 소프트웨어공학 수업을 들었고, 모두 A+을 받았다. 나이 든 학생이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을 보니 안타까우셨을까? 굳이 안 하셔도 될 말씀을 어렵게 꺼낸 것임이 분명했다. 소 교수님은 정년이 5년밖에 남지 않은 시니어교수님이셨다.
며칠 뒤, 지도교수님께도 상담을 드렸다.
“지금 회사 복귀라니? 가당치도 않은 얘기지.
사람은 말이야. 적당히 똑똑한 게 문제야. 그러니 적당히 만족하며 사는 거야.
AI나 빅데이터 전문가를 학교에서 구하려고 해 봐. 실제론 없어, 그게 현실이야.
오래 안 붙들고 있을 테니 얼른 논문 써서 그걸로 밥벌이해."
또다시 얼굴이 달아올랐다. 사십 중반, 일생일대의 자신의 인생 문제 하나도 제대로 결정하지 못해서 여기저기서 핀잔을 듣는 꼴이라니.
경청(傾聽).
한 달간 나는 귀 기울여 듣고 또 들었다. 조언은 조언일 뿐, 결국은 선택은 내 몫이다.
"그래. 여기서 멈출 순 없어.
지금 멈추면 이도저도 안 되는 거야.
적어도 매듭 하나라도 지어 놓아야 해. 그래야 다음을 기약할 수 있는 거야."
문득 영화 <델마와 루이스, 1991>의 마지막 장면이 떠올랐다.
"그냥 계속 가자."
"정말?"
"Yeah"
한동안 바다에 빠져 허우적대던 내 마음,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그랜드캐니언이 내려다 보이는 허공 위로 부웅 떠올랐다. 그리고 기적처럼 만나(Manna)가 내려왔다.
첫 번째는 K대 컴퓨터공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선배의 제안으로 1년짜리 국책 AI 프로젝트, 월 백만 원.
두 번째는 서울 H대학교에서 R프로그램 특강으로 매달 한 번, 3일 코스, 시간 대비 보수는 쏠쏠했다.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이 두 개의 만나는 끊어진 연구조교 수당을 대신해 주었고, 나는 1년을 버틸 힘을 다시 얻었다.
“다희야, 좀 더 해볼게.
여기서 그만두면 이도저도 안될 거 같아."
아내는 말없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이미 내 뜻을 짐직하고 있었으리라.
3월 21일, Y 전무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무님, 회사 복귀가 어려울 듯합니다.
논문이 아직 작성 중이고, 지금 돌아가면 이도 저도 안 될 듯합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다음날, 인사팀으로부터 메일이 왔다.
[Confidential] 퇴사처리:
이명훈 실장님, 3월 22일 자로 퇴직처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관련 퇴사 절차 및 퇴직금 수령은 첨부된 안내 절차를 따르시기 바랍니다.
그날, 학생도 직장인도 아닌... 내 신분은 완전히 정리되었다. 힘들면 돌아가려고 강가 풀숲에 몰래 메어 두었던 나룻배를 태워 버렸다. 이젠 만에 하나라는 핑곗거리조차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