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한 지 어느덧 1년 반.
2019년 12월 말, 매서운 겨울바람이 스며들던 어느 저녁. 나는 강남 방면으로 향했다. 송년 모임에 들르기 전, 새로 계약한 사무실을 잠시 둘러볼 생각이었다.
강남역을 나와 선릉 방면으로 테헤란로를 따라 걸었다. 언덕 부근에 다다르자 베이지색 외관의 20층 빌딩이 시야에 들어왔다. 대부분의 층에 불이 환히 켜져 있었다. 나는 아래층부터 하나씩 층수를 세다가, 17층에서 멈추었다. 며칠 전 현장 PM이 전화로 알려주었다.
"이번 주면 인테리어 공사가 마무리되고, 다음 주 월요일이면 입주 가능하십니다. “
건물 창밖으로 새어 나오는 불빛을 바라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래, 이제 우리도 강남 시대를 여는 거야."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텅 빈 정적이 감돌았다. 작업 인부들은 이미 퇴근했고, 사무실 전체의 불은 꺼져 있었다. 페인트와 접착제, 바닥재의 냄새가 뒤섞인, 이제 막 태어나려는 공간의 매캐한 향기가 코끝을 스쳤다.
벽면의 스위치를 찾아 불을 켰다. 빛이 드리워지며 성형 중인 공간이 드러났다. 비닐을 벗기지 않은 사무 집기, 대회의실 유리의 보호 필름, 다 쓴 페인트통과 사다리, 엉킨 전기 코드, 대형 진공청소기 등. 어수선한 그 안에는 '새로운 시작'의 설렘이 베어 들고 있었다.
빈 의자를 당겨 창가 앞에 앉았다. 꼬리를 문 차량 행렬의 불빛, 마치 도심 위의 거대한 보석 십자가처럼 반짝였다. 곧 우리가 이사 갈 새로운 보금자리, 지금은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창밖에 펼쳐진 강남의 퇴근길 풍경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 짧은 순간, 창업 이후 지난 1년 반의 시간이 필름처럼 스쳐갔다.
‘아, 그땐 그랬구나.”
장면 #1: 회사의 탄생
빌린 돈으로 자본금을 채우고, 학교 도서관 구석에서 회사 이름을 지었다.
"We make things intelligent using maching learning."
조그만 AI 스타트업은 그렇게 세상에 태어났다. 도메인을 사고, 외주를 맡겨 홈페이지를 만들었다. 포털 검색창에서 회사 이름을 입력하며, 검색 결과를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장면 #2: 초기 멤버와 첫 투자
이전 직장 동료와 지인들을 모았다. 다섯 명의 초기 멤버로 출발했다. 운 좋게도 창업 직후, 중견기업 E사로부터 투자를 받았다. 일 년은 버틸 수 있는 금액이었다. 급여와 기본 운영자금이 확보되자 숨통이 트였다.
E사 대회실 한편에서 처음으로 상견례를 가졌던 날,
우리 다섯 명은 마치 "넓은 바다 위, 멋쩍게 떠 있는 작은 섬" 같았다.
장면 #3: 첫 사업 수주
한 선배의 소개 전화 한 통이 인연이 되었다. 다짜고짜 모 AI 기업 대표를 직접 찾아가 말했다. "신생 스타트업이라 실적이 없으니 이름만 빌려주십시오."라며 사정했다.
온 힘을 다해 제안했고, 기적처럼 규모 있는 공공 AI 사업을 수주했다. 그건 회사의 첫 실적이자, 믿고 따라준 직원들에게는 "생존의 밥줄"이었다. 이후 우리는 더 이상 누구의 이름도 빌리지 않았다. 우리 이름과 브랜드로 제안하고 경쟁했다.
장면 #4: 박사학위와 첫 저서
2019년 2월. 박사과정 5년 만에 학위를 받았다. 졸업식 날, 양가 부모님과 아내가 함께 와주셨다. 나는 부모님께 큰절을 드렸고, 아내를 포옹하며 말했다. “고마워."
아내는 환하게 웃으며 부모님들께 말했다.
"제가 우리 남편 박사 만들었어요."
주중에는 회사, 주말에는 연구실.
그렇게 이중생활을 이어가던 끝에 CAC 연구, 메타 분석, AI Vision 논문까지 세 편의 제1저자 논문을 게재했다.
올봄, 출판사의 제안으로 첫 저서를 출간했다. 내 이름 석자가 찍힌 첫 책. 인세는 1년에 100만 원 남짓이었지만, 그보다 더 큰 의미가 있었다. 칠흑 같은 나락의 터널에 주저앉아 어쩔 줄 모르던 한 사내가 세상밖으로 다시 일어서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장면 #5: 사람과 공간
E사는 우리에게 사무실 한켠 책상 네댓 개를 내주었다. 그것이 첫 사무실이었다. 2018년 7월, 직원 다섯 명으로 시작한 회사는 연말엔 21명, 다음 해엔 36명으로 불어났다. 한국뿐 아니라 인도, 네팔, 베트남 출신의 석박사 인재들도 합류했다. 사무실은 토막 영어와 웃음소리가 뒤섞인 글로벌 실험실 같았다. 이즈음 내 하루의 10%를 면접과 채용에 할애했다.
인원이 늘자, E사의 대외 세미나실을 개조했다. 칸막이를 세우고 책상과 의자, 각종 사무 집기를 들여 독립 사무실로 꾸몄다. 그곳이 우리의 두 번째 공간이었다. 얼마 뒤, 나에게도 E사의 임원실이 배정되었다.
장면 #6: 첫 흑자 전환, 그리고 별빛 아래
창업 2년 차, 매출 25억 원. 그리고 첫 흑자.
기적이었다.
우리는 경기 외곽의 독채 한옥 펜션을 빌려 송년회를 열었다. 바베큐를 굽고, 시상식을 열었다. 밤새도록 달과 별빛 아래 우리는 춤추고 노래 불렀다.
장면 #7: 가족
몇 해 동안 폐쇄병동에 드나드시던 아버지가 퇴원하셨다. 주간에는 데이케어센터에 다니시며 어머님과 함께 지내셨다. 시간이 날 때면 부모님 댁에 들려 아버지와 사우나를 갔다.
창업 자금으로 빌린 가족의 돈이 늘 마음에 걸렸다. 수입이 생기는 데로 그 빚부터 제일 먼저 갚았다.
사람들은 말했다.
"창업 2년 차에 강남 사무실이라니, 무모하네."
한편 일리 있는 말이었다. 높은 임대료와 관리비. 그 돈으로 R&D에 투자하라는 조언도 많았다.
하지만 나는 달리 생각했다.
“우리가 비록 낮은 자리에서 시작했지만, 제대로 도약하려면 더 높은 곳으로 가야 한다."
나는 그렇게 믿었고, 실행했다. 그리고 거듭 다짐했다.
"앞으로 2년 안에 인력은 두 배로, 매출은 세 자릿수로."
약속 시간이 되어 사무실을 나섰다. 건물 불이 꺼지자, 회사 명판이 은은히 빛났다.
송년 모임 자리에 한 지인이 물었다.
“요즘 사업한다며? 그 어려운 걸 어떻게 버티고 있니?”
나는 웃으며 소주잔을 비웠다.
“그냥... 운이 좋았지. 뭐, 감사할 뿐이야."
밖으로 나와 담배 한 개비를 물었다. 차가운 바람이 취기로 달아오른 얼굴을 식혀 주었다. 박사과정을 시작한 2015년부터 2019년 12월까지, 주저앉고 얼떨결에 창업하고 다시 일어서기까지 5년의 시간. 교수라는 꿈을 접었을 때, 나는 완전히 무너졌다. 왜냐하면 그간의 시간과 노력을 모두 부정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랬다. 정녕코 내 뜻대로 되는 게 없었다.
교수 대신 창업, 나는 다시 인생을 리셋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 나는 한 가지 분명한 사실도 함께 보았다.
지난 모진 계절을 견뎌내고 또 다른 리셋 앞에 선 나는,
“억세게 운 좋고 복(福) 많은 놈"이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