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 수 없이

창업

by 명연재

봄날의 단잠도 잠시였다.

흩날리는 민들레 홀씨를 잡으러,

나는 다시 떠나야 했다.


어렵게 들어간 회사였다.

나라고 왜 머물고 싶지 않았겠는가.

하지만 오월의 봄바람은 함께 있고픈 민들레 홀씨 송이를 품어주지 않았다.


입사 한 달쯤 되었을 때,

나는 직감했다.

‘이곳에는 내가 뿌리내릴 토양이 없구나.'


3년 넘게 최저시급에 가까운 대학원 연구조교 생활을 버티다가, 이제 겨우 한 달 치 정상적인(?) 월급을 갖다 준 처지였다. 아내에게 너무 미안했지만 더는 숨길 수가 없었다.


한참을 말없이 듣던 아내는 표효(咆哮)했다.

"그딴 회사라면 당장 그만둬!"


내 마음을 알아주니 고마웠다. 하지만 현실은 "다시 백수". 앞으로 기나긴 구직 과정을 어떻게 견뎌야 할지. 다시 취직해서 먹고 살 생각을 하니 막막하기만 했다.


스무 해 동안 직장생활을 했다. 대기업, 외국계, 중견기업 등을 경험했다. 못 볼 꼴, 안 볼 꼴, 산전수전 겪으며 여태껏 버텼다. 게다가 나는 성격도 둥글둥글해서 사막 한가운데서도 생존할 놈이라는 농담을 듣곤 했다. 그래서 더 이겨보려 했다.


그러나 결국 퇴사했다. 석 달도 채우지 못하고.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은 이랬다. 회사는 공동대표체제로 운영되고 있었고, 두 대표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내 채용을 두고도 이견이 잦았고, 여진이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내가 눈치(?) 없이 입사한 것이었다. 40여 명 남짓한 스타트업, 내 자리는 처음부터 불안정했다. 큰 조직이라면 덥고 지나갈 일도 작은 조직에선 여과 없이 그대로 드러났다.


대표의 시선은 매번 못마땅했고,

미팅 자리에서 임원들은 사사건건 견제했다.

스톡옵션 약속은 흐지부지되었고,

직원들은 이런 분위기에 노골적으로 동조했다.


나는 "입사 첫날부터 해고 1순위"였다.

여기서 억지로 바위틈에 뿌리를 내린다 해도 어떤 열매를 맺을 수 있을까?


노력이나 인내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결국 내 마음은 자연스레 정해졌다. 이럴 거면 왜 나를 채용했는지? 따져 묻고 싶었지만 굳이 떠날 회사에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기로 했다.


사직서에 서명한 뒤, 회사 건물 뒤편 공터로 향했다. 삼삼오오 모여 담배를 피우며 한담을 나누던 직원들은 나를 힐끗 보더니 자리를 떴다. 고개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강남의 빌딩 숲 사이, 조각난 푸른 하늘 위로 흰 구름이 흘러갔다.


근처 편의점에 들러 에쎄 한 갑을 샀다. 박사과정 시작하면서 3년 넘게 끊었던 담배였다. 이런 순간,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싫었다. 내 몸뚱이라도 내 맘대로 망치고 싶었다. 불을 붙이며 중얼거렸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폐는 3년 만에 다시 찾아온 금단의 연기 맛에 미쳐 날뛰었다. 쓰읍. 스펀지가 물을 머금듯 폐는 연기를 빨아들였다.


그때였다.

B 대표가 건물 밖으로 걸어 나왔다. 처음엔 퇴사하니까 미안해서 위로라도 하러 나온 줄 알았다. 그는 연거푸 담배 세 개비를 피웠다. 그러다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오늘 저녁 시간 되면, 소주 한잔 할까?"

별다른 일정도 없던 터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밤,

얼마나 마셨는지, 어떻게 집으로 돌아왔는지 기억이 없다. 눈을 떴을 땐 이미 오후 1시였다. 이 얘기, 저 얘기, 온갖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대화도, 술자리의 결말도 모두 희미했다. 다만 한 마디만은 또렷했다.

"우리, 같이 사업 한 번 해 볼까?"


두 눈이 마주쳤을 때, 술김이었을까 아니면 홧김이었을까.

나는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까지껏, 그러죠. 뭐."


다음날 아침.

아내는 출근했고, 두 아들은 학교에 갔다. 텅 빈 거실, 쏟아지는 햇살이 싫어 커튼을 닫았다. 잠옷 바람으로 소파에 앉아 멍하니 TV를 바라보았다. 판문점에서 남북정상회담이 생중계되고 있었다. 하지만 내 눈과 귀엔 그저 의미 없는 소음에 지나지 않았다.


사업하자고 큰소리는 쳤지만, 정작 수중엔 돈 한 푼이 없었다. 백수 신세에 은행 대출은 언감생심이고, 결국 가족에게 손을 벌려야 했다. 아마 그들도 알았을 것이다. 이 돈은 '빌려주는 돈'이 아니라, '버리는 돈'이라는 걸. 그래야 마음 편하다는 걸.


밑바닥.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실낱같은 불빛마저 꺼져 버렸던 그때,

나는 실오라기라도 잡아야 했다.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뭐라도 해야 했다.

말이 되고 안 되고는 나중 문제였다.

어쩔 수 없이 창업을 해보기로 했다.


p.s.

그 와중에도 주말이면 도서관에 갔다.

논문 수정은 계속됐다.

5월 말, CAC 논문을 다시 투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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