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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마주한, 그때의 우리

변화를 마주한, 낭만적인 우리가 있었다

by 미리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호텔로 가는 길에 생각에 잠겼다. 8년 전, 북경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학교로 가는 길, 친구는 지도를 켜서 위치를 확인하고, 나는 멍하니 창밖의 노을을 바라봤다. 지금도, 친구는 잘 가고 있는지 지도 앱을 켜서 보고 있고, 나는 그때처럼 멍하니 창 밖을 보고 있다.


그때, 정적을 깨고 기사님이 말을 걸어오셨다. 오전에 국가 행사가 있어서 통행을 막아놨을 수도 있다고, 근처에 세워야 할 수도 있다고 하셨다. 한국인 인걸 알지만 당당히 중국어로 말하는 기사님, 그리고 그 말을 정확히 다 알아들은 우리. 결코 낯설지만은 않은 언어가 들리자, 우리는 그제야 이곳에 무사히 왔음을 알아차렸다.


다행히 통제는 풀려서 호텔로 곧장 도착했다. 짐을 풀고 잠시 휴식한 뒤, 길만 건너면 닿을 '왕푸징'으로 향했다. 한국의 '명동'과 같은 이곳은 교환학생 시절, 사치? 부리고 싶을 때 오던 곳이었다. 평일에 돈을 아끼고 아껴, 주말에 백화점에서 밥 먹고, 디저트까지 먹었던 그런 곳.




번화가 쪽으로 걸어갔다. 오늘의 계획은 백화점에서 점심을 먹으면서, 그다음을 생각하는 것이었다. 백화점 문을 여는 데, 굳게 닫혀있었다. 여기는 오늘 휴무인가 싶어서, 다른 백화점을 갔는 데 여기도 닫혀 있었다. 현지인들도 같이 의아해하는 상황에,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조금 더 걸어가서 관리인처럼 보이는 한 아저씨에게 이유를 물어보았다. 아저씨는 딱 한마디 하셨다. "有活动." 국가차원에서 어떤 행사가 있다는 뜻이었다. 백화점까지 통제하는 이곳은, 중국이었고, 크게 놀랍지는 않았다.



고민하다가 내일 일정을 오늘로 바꾸기로 했다. 다음날은 학교를 찾아가서 온종일 추억 여행을 할 예정이었다. 배도 고프고, 대안은 없어서 우선 지하철을 타러 갔다. 지하철 노선을 훑어보는 데, 한자도, 발음도 익숙한, 곳곳들이 낯설게 느껴졌다. 여기가 어디였는 지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지하철 타고 여기저기 놀러 다녔던 그때 그 시절이 더 이상 아니라는 사실을 저항 없이 깨달았다.


14호선 '北工大西门', 북경공업대학교에 도착했다. 한 때 지겹도록 지나다녔던 길을 다시 걷고 있다. 현실은 늘 오갔던 출구가 아닌, 맞은편 출구로 나가는 바람에 벌써부터 어긋났지만.


흐린 날씨에도 기대를 안고 학교로 향했다. 그런데, 우리는 예상과 다른 장면을 마주해야 했다. 입구가 한 칸 한 칸 막혀있었다. 큐알을 찍어야 입장 가능했다. 그 와중에 빗방울은 떨어졌다.



변하지 않은 건, 육교뿐인 그런 기분이었다. 등하굣길이었던 육교를 찬찬히 올라 맞은편 기숙사로 향했다. 기숙사는 그때 그 모습 그대로 있을까? 실망할까 봐 괜히 걱정이 더 앞섰다.




기숙사도 보안 시설이 설치돼 있었다. 외부인은 들어갈 수 없다고, 말하지 않아도 벽처럼 느껴졌다. 이곳도 혼란스러웠던 코로나 시기를 겪었을 것이고, 또 별안간 어떤 일이 있었을 수도 있고, 알 수 없는 세상은 그렇게 세월을 맞았다.



2017년 당시 기숙사 모습
2025년 현재 기숙사 모습



학교도, 기숙사도 우리에게 추억을 회고할 시간을 허락하지 않았다. 떨어지는 빗방울은 잠시라도 그 자리에 머물 여유조차 주지 않았다. 꼭 다시 먹고 싶었던 동북요리 음식점도, 훠궈집도 없었다. 골목을 채우던 시장도 없어졌고, 근처의 구멍가게였던 슈퍼는 작은 마트가 되었다.


눈 감고도 학교 주위 곳곳에 뭐가 있는지 골목골목 다 기억이 나는 데, 지금은 눈 뜨고 돌아다녀도 그 흔적을 찾을 수 없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계속 걸었다. '까르프'는 있겠지 싶어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하염없이 걸었다.


한 때 자주 드나들었던 까르프 마트, 이제 1분 정도면 도착하기 직전이었다. 그런데, 오른쪽 사선에 뭔가 새로운 건물이 보였다. 분명 텅 비어 있던 그 자리에 대형 백화점이 들어서 있었다.



눈앞의 백화점을 마주하고 우리는 알 수 있었다. 까르프 마트도 없어졌겠구나. 아주 오래 걸려 왔던 이곳은 우리에게, 이제 그만 포기하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시선을 왼쪽으로 돌렸는 데, 역시나 까르프는 있어야 할 곳에 없었다. 갈 곳을 잃은 우리는 백화점으로 들어가야 했다.


번화가가 될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니. 허탈한 마음과 허기진 배를 채우러 우선 식당가로 향했다. 학교 앞 훠궈집은 못 갔지만, 요즘 현지 맛집인 훠궈집에서 웨이팅 했다. 대기는 무려 80팀이었다.

헛웃음이 나왔지만, 다른 곳을 더 둘러볼 힘도 없고, 그냥 쉬면서 기다리기로 했다. 기다리면서 실망했던 오늘의 마음은 가라앉았다. 지금의 시간도 잘 보내야 했기에. 다행히 실제로 대기하는 사람은 적어서 그리 오래 기다리지는 않았다.



늦은 점심을 겨우 먹고, 백화점 구경을 했다. 시간을 보내고 나왔더니 밖은 어둑어둑했다. 여기까지 온 김에 길을 건너서 까르프 마트가 있던 곳을 그래도 가보았다. 그 자리에는 중국 대표 전자상거래 업체 중 하나인 '징동몰'이 있었다. 까르프도 시대의 변화를 피해 갈 수 없었나 보다.



내부를 잠깐 구경하고, 밖으로 나와 입구 계단에 잠시 앉아서 쉬어갔다. 바로 앞에 육교가 보였다.


처음 학교 기숙사에 도착했을 때가
떠오른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갈 때쯤 도착한 우리는 기숙사 방을 배정받고 방으로 향했다. 어둑한 분위기 탓인 지 방 상태는 우울하기 그지없었다. 짐을 풀 마음조차
잃었다. 공용 화장실에서 손을 씻는 데, 설상가상으로 녹슨 물이 나왔다. 샤워실도 암울했다. 우리는 거의 동시에 같은 말을 내뱉었다. "망했네 우리.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까?" 우리의 걱정은 밤새 짙어졌다.

방 안에 햇살이 들어왔다. 눈을 떴고, 떠보니 우리는 중국에 있다. 밝아서 그런 지 어제보다는 다행히 방 상태가 나쁘지 않게 느껴졌다. 벌써 적응해 버린 걸까. 짐을 대충 정리하고 우리는 장을 보러 가기로 했다. 그곳이 바로, 까르프였다. 북경 도착 이틀 만에, 우리가 처음으로 찾아간 장소였다.


우리는 까르프에 찾아왔고, 점심으로 피자헛 피자를 먹었고, 필요한 것들을 다 담은 짐 한 보따리 들고 육교를 건넜었다. 친구와 가만히 앉아서 그때 그랬지 하며 추억을 이야기했다. 지금은 굳이 건널 필요없는 육교를 배경으로.



휴대폰 메모장에 이렇게 기록했다. '세월은 죄가 없다', 그렇다. 세월은 죄가 없다. 그리고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아 놓을 길도 없으니 우리의 탓도 아니다. '변하지 않는 것은 없고, 변화를 받아들일 우리만 있을 뿐이다.'는 생각이 드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진 걸 느꼈다. 이곳에 다시 왔다는 그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많은 걸 이루어낸 거다.


친구가 말했다. "학교도, 기숙사도 못 들어가서 아쉽긴 해도 지금 여기 여유롭게 앉아서 시간 보내니깐 좋네. 어쨌든 오늘 근처에 종일 있었네."

이렇게 가만히 있어도, 우리는 충분히 좋았다.



기대만큼의 하루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별 볼일 없는 하루도 결코 아니었다. 우리는 이곳에 추억할 게 많은, 조금 특별한 여행객일 뿐이었다. 아쉬움을 느꼈던 건, 그때 그 시절이 그만큼 너무나도 좋았다는 뜻이다. 그때의 낭만은 더 이상 없지만, 그 시절의 낭만을 찾아 무작정 이곳에 온, 낭만적인 우리가 여기 있다. 그거면 됐다. 그걸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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