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크게슬기롭다 Oct 26. 2024

activation for writings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 2. 나를 쓰게 하는 것들을 읽고

책 속 작가의 질문:  

어떤 상황에서 글 쓰는 내가 가장 활성화되는가?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지만, 그게 결국 내 면을 상하게 하는 주제라는 것을 아는 이야기가 입을 벗어나 입술에 맴돌 때. 그때 가장 글이 잘 써진다. 정말 손 끝이 글을 쓰는 느낌을 받는다. 나는 그냥 나의 뇌가 말 대신 손가락을 움직이고 있다는 걸 인식할 뿐이다. 예를 들어 주변인의 험담을 원색적으로 하고 싶을 때, 나의 가족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거나, 연민의 늪에 잘못 빠져들어 스스로를 마냥 불쌍하게 보고 있을 때, 그런 이야기를 어디 누구에게 마구 털어놓고 싶어 진다. 하지만 나의 반대쪽 이성이 나의 입을 틀어막는다. 그 이야기를 남에게 해서 얻을, '후회'라는 감정을 떠올려본다. 카카오톡을 열고 타인에게 하려던 창은 닫고, 대신 글을 쓸 수 있는 페이지를 연다. 노션에 글을 많이 써와서 그런지 노션을 보면 저절로 그 글을 쓸 세팅이 되어있다는 것을 뇌는 안다. 손가락을 타자기 위에 올려놓으면 뇌에서 바로 손가락근육을 자극한다. 나의 머릿속에서 한번 맴돌고 나가는 문장들이 아니다. 바로 손가락으로 그 말들이 튀어나간다. 나의 눈은 그저 '잘 쓰이는지' 관망할 뿐이다. 이 지점이 내가 알고 있는 "가장 활성화되는" 순간이다.


이렇게 글을 쓰는 건, '뇌를 빼놓고' 쓰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결국 글로 하는 중얼거림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최근에 신기하게도 뇌를 포함한 글을 쓴 경험이 있다. 그 글의 시작은 타인에 대한 부러움이었다. 젊음에 대한, 내가 미처 하지 않고 통과한 대학 시절을 알차게 보내고 있는 존재들을 보고 머리가 마구 복잡해졌기 때문이다. 그 글을 쓰다가 문득, 내가 그들을 쳐다보고 부러움을 느끼는 감정을 고요히 들여다보았다. 나의 손은 계속 '불안한 나'를 표현했지만, 내 눈이 그 불안감을 관찰한 것이다. 그리고 관찰 끝에 나의 뇌에게 질문을 던졌다.



'좀 더 구체적으로, 뭐가 그렇게 부러운 거야? 너의 지금 중 어떤 게 가장 부족하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그 아래에 써 내려갔다. 그러자, 내가 가볍게 무시했던 나의 욕망을 발견했다. 그 시절이 그리웠던 것도 맞지만 나는 '축제'에 가보고 싶었던 마음이 더 많았다. 모든 이들이 편하게(CHILL 하게) 있는 순간이 좋고, 그 사람들 사이를 멋진 음악들이, 약간의 땀냄새와 닭꼬치 냄새가 채우는 어떤 순간도 참 그리웠다. 살찔걸 걱정하기보다 지금 이 순간을 놓칠세라 마시는 맥주의 맛도 그리웠다. 그래, 나는 지금 가능하다면 축제를 신청해서 가보고 싶어, 하는 나의 상태를 찾아냈다. 그 축제 속 사람들과 부대끼고 싶다.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 어떤 것과 연결되었다는 느낌도 받고 싶다. 모르는 타인들과 하나의 취향으로 '함께'를 느끼고 싶다... 등등 축제하면 떠오르는 감정들이 더 많이 솟구쳐 오름을 느꼈다.



그 발견을 몇 백자 되지 않는 글 속에서 발견했다.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고 답변을 하는 과정 속에서 다음 방향을 찾아냈다는 게 정말 좋았다. 짜릿했다. 축제만큼은 아니더라도 내가 느끼고 싶었던 충족감이 일부는 채워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한 편을 뚝딱 작성했다. 그날의 [100일 글쓰기 과제] 도 금방 제출할 수 있었다. 글 쓰기 끝에 느꼈던 '아주 작지만 강렬한 민트 캔디를 먹은 듯한 ' 느낌은 꽤나 오래갔다. 그다음 날에도 다다음 날에도 계속 나의 글을 열어보았다.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은 그 [상황] 은 글쓰기의 시작점이었고, 글을 쓰며 스스로를 알게 되는 깨달음은 글쓰기의 [보상]이었다.

이전 18화 강렬하게 반짝이는 눈빛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