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어린 시절, 한없이 하찮고 초라하게 느껴지고 부모님은 커다랗게 느껴지던 때가 있었다. 세상이 뭐가 뭔지 도대체 알 수도 없고 관심도 없던 시절, 나의 관심은 오로지 작은 세계에 갇혀있던 그때에는, 내 안에 꿈틀대는 것이 무엇인지 그것이 어디로부터 온 것인지, 아니 그런 것이 있는지 조차 관심 갖지 못했다.
송곳처럼 뾰족했던 청소년 시절에 부모님이 나에게 해주시는 모든 것들은 당연하게 느껴졌다. 부모니까, 자식을 낳은 부모니까, 모든 부모가 다 그렇게 하고 있으니까 마땅히 부모님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다른 친구들과 비교하며 부족한 것이 있으면 그것은 내 가슴에 컴플렉스로 남아 부모님을 원망하는 마음으로 돌아갔다. 키가 작은 것, 눈에 쌍꺼풀이 없는 것 따위가 불만이었고, 엄마가 새벽 바쁘게 싸주시던 도시락 반찬의 계란말이 생김새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친구의 부러움을 사며 풀지도 않고 차곡차곡 쌓아두기만 했던 학습지 교재를 부모님이 어떻게 돈을 벌어 어떤 마음으로 사주었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 독서실에 한 번씩 간식을 들고 찾아오는 엄마의 마음은 알지도 못한 채 눈을 피해 공부하는 척을 잘했던 것에 그저 안도감을 느꼈을 뿐이다. 내 삶에서 진짜 불만과 가짜 불만이 뭔지도 모른 채 그냥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 애송이였다.
이십 대가 되어 내 인생을 스스로 통제하기 시작했을 때, 고만고만한 삶들을 벗어나 더 큰 세상을 만났다. 출발점이 달라 또래 다른 이들보다 정신적 육체적으로 시간과 에너지를 몇 배로 써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예컨대, 내가 번 적은 돈으로 영국에 유학을 가서 질이 낮은 선생님들이 있는 저렴한 학원에 등록하고, 하숙비와 교통비를 아끼기 위해 하루 왕복 서너 시간을 버스에서 보내며, 새벽 여섯 시부터 오후 세시까지 패스트푸드점에서 일을 하고 늦은 오후에 공부를 하는 동안, 다른 친구들은 부모님이 적극 지원해 주시는 돈으로 좋은 집에 살고, 좋은 프로그램 이 있는 비싼 학원에 등록하고, 저녁이면 친구들과 쇼핑을 하거나 펍에 가서 젊음을 즐기는 그러한 것들. 아마도 세상에서의 내 부모님과 나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했던 때였던 것 같다. 이십 대는 그러했다. 내 부모님과 내가 세상 사람들과 비교하여 어느 지점에 있는지가 중요했다. 미래를 생각하며 길을 잃어버린 아이처럼 방황했고, 내가 가야 할 곳이 어디인지 고민하기엔 너무 늦었다는 생각이 들어 괴로웠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른 채,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어딘지도 모른 채 그저 마음 가는 대로 흘러 흘러갔다. 내 의지대로 살았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의지라기보다는 무지에서 오는 헛된 희망 같은 것에 대한 집착이었을 뿐이었다. 나는 나에 대해 과대평가를 하고 있었고 미로를 헤매다 엉뚱한 길로 빠져들어 헤어 나오지 못하는 느낌이었다. 부모님의 고충 따위는 눈에 잘 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그저 내 인생을 더 힘들게 만드는 장애물 같았다. 부모님에게서 느낀 정서적 결핍을 메우기 위해 계속 나를 채찍질했다. 나는 내 연민에 빠져 차가웠다.
이십 대의 치열한 방황을 지나고 삼십 쯤 되어서야 나에 대해 알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부모님이 물려주신 문화적 정서적 유산은 나의 생각과 행동에 제한을 두고 내 정신과 삶을 지배하여 중요한 결혼 문제와 직업선택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엄마는 부모로서 자식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보듬어주려 애를 썼지만 그 애쓰는 마음조차도 내 가슴을 더욱 후벼 파 죄책감만 생길 뿐이었다. 내가 받은 것들을 다른 사람들은 받지 못할 수도 있고, 내가 받지 못한 것들을 다른 사람들은 받기도 한다. 그러나, 내가 받은 것들을 어떻게 극대화시켜 사용해야 하는지는 내가 선택하는 것인데, 그러한 것들을 몰랐다. 받지 못한 것들만 생각하며 살다가 받은 것은 것에 대한 감사함을 느끼지 못했음을 후회한다. 지나고 나니, 부모가 물려준 것들의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애썼던 시간들이 쌓인 후에야 그것들이 그저 나의 허영심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내가 가진 것이 집착인지 집념인지 구분할 줄 몰랐고, 사람들이 내게 하는 조언이 틀렸다고 생각했다.
삼십 대 후반에 늦은 결혼과 출산을 하며 내 인생은 크게 달라졌다. 미로를 헤매다 결국 예상치 못한 길로 나오긴 했지만, 내가 만들어낸 생명체들은 나의 인생에서 가장 큰 기쁨을 안겨주었다. 아이들을 낳고 키우며 비로소 나는 인생에서 중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멋모르고 살아온 삶을 반성하고, 쓸데없는 생각으로 감정 낭비를 한 것이 후회되었다. 지나고 나면 삶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하는 별 볼일 없는 것들이 왜 그렇게 그때는 트라우마로 가슴에 박혀 때때로 내 삶 전체를 뒤흔들어놓는 건지, 사람의 무의식이라는 것이 왜 그렇게 융통성이 없는 건지 아쉽기도 하다. 부모의 마음이란 것, 아이들에게 주고 싶은 것들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가지고 있는 것들 중 최대한 좋은 것을 주고 싶지만, 모든 것을 당연히 여기고 부족한 것에 대해 아쉬움을 가졌던 나처럼 내 아이들도 분명 부족함을 느끼며 성장할 것이다. 나는 그러한 아이들의 성장과정을 이해하는 너그러운 부모가 될 것이다.
아이를 낳고 키운다는 것은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다. 내가 아는 세상이 전부가 아닌, 내가 모르던 세상의 반쪽이었을 뿐임을 알아가는 과정. 부모님은 이제 부모님을 넘어 인생 선배로 의식된다. 사소해 보이는 어려운 일 하나하나가 쌓이는 그 하루하루 자체로도 버거운데, 그것을 수십 년을 해온 부모님이 존경스럽다. 그 삶을 지탱할 수 있는 원동력은 나를 닮은 아이를 바라보는 따스한 눈빛과 미소, 사랑이라는 것을 이제야 느낀다. 나는 나의 부모님이 줄 수 있는 최대한의 사랑을 받았음에 틀림없다. 살아온 여정이 어떻든 방법이 어떻든 부모님이 나에게 주신 무한한 사랑을 느꼈으니 이제는 내가 그것을 줄 차례다. 나도 나의 부모님처럼 부모라는 역할을 하면서 깨지고 부딪히며 더 나은 부모가 되어갈 테다. 부모님의 사랑을 깨닫게 해 준 사랑스러운 나의 아이들에게 고맙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내어주신 부모님께 감사드린다. 이제야 완전한 감사함을 느낀다. 사랑, 그것으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