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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득 Nov 09. 2024

day 4 ㅡ 달리기



by 신디북클럽





어렸을 때, 나는 달리기를 좋아했다.

턱 끝까지 숨이 차오르는 그 느낌이 좋아 힘차게 달리고 또 달렸다.


술래잡기할 때 술래한테 잡힐까 동네를 휘저으며 달리고, 백 미터 달리기에서 일등 하고 싶어 달리고, 고무줄 놀이할 때 줄을 끊고 도망가는 남자아이들을 쫓아 달려갔다.


엄마가 백 원을 주시면 오십 원짜리 달고나를 먹고 오십 원어치 트램펄린을 탈 기쁜 마음에 동생과 달렸다. 약수터를 다녀올 때 산을 내려가는 가속도가 즐거워 달리고, 아빠가 포장마차에서 소주 한잔 하는데 오돌뼈 먹으러 올 거냐는 전화에 한걸음에 달려가고, 까불다 화가 난 개가 짖으며 따라올 때 무서워서 내달렸다.


달리기는 나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달릴 때마다 이상하게 다리털이 쭈삣쭈삣 서는 느낌이 들면서 간지러웠다. 가슴이 벌렁거리고, 입이 헤 벌어지면서 괜스레 웃음이 나왔다.

꿈속에서도 달리기를 하다 슈퍼마리오처럼 점프해서 새처럼 날아오르곤 했다.


그랬던 나의 달리기가 바뀌었다.


학교에 지각해 벌칙으로 운동장을 달리고, 수능 시험에 늦지 않으려고 달렸다. 새벽 도서관 자리를 맡으려고 달리고, 회사로 향하는 전철을 놓치지 않으려고 달렸다. 나의 달리기는 어느새 변하고 있었다. 무언가를 쫒는 애써야 얻을 수 있는 달리기가 되어 어느새 내 다리보다 내 손과 눈, 내 머리가 더 빨리 달리고 있었다.

가벼웠던 다리는 점점 느려졌다. 다리털이 쭈삣쭈삣 서지 않았다. 대신 나는 하루하루를 열심히 걷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어릴 때 행복하게 달리던 추억이 지쳐도 뚜벅뚜벅 걸을 수 있는 힘이 된 것 같다. 가슴이 뜨거웠다가 어느 순간 편안해졌다.


나는 이제 달리기에 신이 나지도, 달리는 꿈을 꾸지도, 무언가를 쫓기 위해 하는 달리기도 하지 않는다.


이제는 현관문을 열고 화장실이 급할 때, 가스 불 끄기를 잊어 냄비가 끓어 넘칠 때, 아들들이 잘못해서 혼내주러 쫓아갈 때처럼 그냥 그런 커다란 목적이 없이 아주 짧은 중요한 타이밍에 하는 달리기를 한다. 나는 이제 천천히 걷는 산책이 더 좋다. 천천히 걷다 보면 키가 하늘 높이 솟은 엄청 큰 나무, 앙증맞은 열매가 달린 작은 나무들의 이름이 궁금해진다. 빨간 꽃, 노란 꽃, 하얀 꽃 예쁜 꽃들한테 말도 건다. "어머 웬일, 너 왜케 이쁜 거니. 왜 여기 구석에 혼자 피어있어 아무도 모르게. " 하고 호들갑을 떤다. 그리고 저 홀로 피어있는 꽃들을 기억해 주기 위해 사진도 예쁘게 찍어준다. 천천히 둘러보는 세상에 아름다움을 느끼기 시작한다.


내가 다시 기쁘게 달리는 날이 올까 생각해 본다. 인생은 알 수 없으니 어느 날 갑자기 달리는 사람이 되어 있을지도 모르지. 오래전부터 가지고 있던 버킷리스트 속 마라톤 달리기가 현실이 되어있을 수도.


여하튼 나는 잘 달리던 나도,

천천히 걷는 게 좋은 나도,


다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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