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정리하다 먼지가 쌓여있는 오래된 씨디를 꺼냈다. 옥주현 다이어트, 오래전 가요들, 영화, 다양하게 많기도 하다. 그 중 눈에 띄었던 국악노래 씨디 여러장. 내가 심청가, 판소리, 민요 이런 것들에 언제 관심이 있었지 싶다가 외할아버지가 문득 떠올랐다. 백 세에 돌아가신 외할아버지.
할아버지는 열 일곱에 열 여덟 외할머니와 부모님이 정해주신대로 결혼하셨다. 여덟 남매는 장성하여 자식들을 낳고, 그 손주들이 또 자식들을 낳아 현재 외할아버지가 퍼뜨린 자손들은 백 명이 넘는다. 마흔이 넘어 낳은 막내딸인 내 엄마가 결혼 하는 것도 못보고 죽을까 걱정하셨다는데 막내딸의 손주까지 다 보셨다.
외할아버지는 말씀이 많이 없으셨다. 내가 배 아파하면 조용히 오셔 등을 쓰다듬어 주고, 손바닥을 주물러 주셨다. 입이 짧았던 어린 내가 밥을 안먹으면 밭에서 토마토를 따와 설탕에 버무려 먹으라고 내 앞에 놔두시곤 했다. 그 많은 손자 손녀들 틈에서 나를 한번씩 챙겨주시는 모습에 잔잔하고 따뜻한 사랑을 느꼈다. 나는 외할아버지가 좋아서 팔순이 되셨을때부터 다음엔 못 볼까 걱정하곤 했지만, 할아버지는 정정하셨다. 소식을 하셨고, 따뜻한 물을 드셨고, 많이 걸으셨고, 늘 긍정적인것이 장수의 비결이라고 엄마는 늘 말씀하셨다.
외할아버지는 막내딸 집에 한번씩 예고 없이 오시곤 하셨다. 미용실 원장님이던 막내딸 가게에 수박을 한 덩이씩 사서 가져오시곤 막내딸이 손님의 머리를 만져주는 모습을 흐뭇하게 앉아 바라보셨다. 손님들은 그 시절 머리카락이 하얗게 센 한복입은 할아버지가 미용실에 앉아있으니 어색해했다. 외할아버지는 90세가까이 되셔 엄마가 미용실을 그만 두셨을때에도 우리집을 혼자 찾아오셨다. 그 연세에 봉천동에서부터 광명까지 걸어오곤 하셨으니 참으로 대단하신 분이다.
내가 운전을 하기 시작했던 무렵 외할아버지는 노환으로 눈이 침침해지고 몸이 편찮아지셨다. 겨울이면 무주 시골이 답답하다며 봉천동 큰 외삼촌 댁에 머무르시던 할아버지는 우리집에도 한달씩 계셨다. 입맛이 없다며 엄마가 끓여주신 사골국은 드시다 밀어버려도, 요리를 못하는 내가 끓여드리는 짜파게티는 맛있다며 싹싹 비우셨다. 아마도 할아버지께 짜파게티는 나만 끓여드리는 별미였을테다.
할아버지가 우리집에 오실때마다 뭘 좋아하실까 매일 고민하다 판소리를 씨디에 가득 넣어 계속 들려드리고 티비나 라디오 국악방송을 틀어드렸다. 할아버지는 박자에 맞추어 손과 발을 까딱이며 먼 곳을 바라보고 흐뭇하게 미소지으셨다. 우리동네에서 하던 풍물놀이에서 구십 넘으신 연세에 지팡이 들고 흔들흔들 흥이 나서 춤추시던 모습, 하필이면 그날 잃어버린 핸드폰의 영상 안에서 할아버지는 여전히 춤을 추고 계실테다. 그 때에는 너무 신이 나 편찮으셨던 것도 다 잊으셨던 것 같다. 우리 신경쓸까봐 밤새 끙끙 대시면서도 아프다 소리 한번 안하시던 할아버지는 오래 살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이렇게 재밌는게 많은 세상인데 죽기엔 너무 아깝다고, 앞으로는 더 재밌는게 많이 생길텐데 그걸 다 보고 싶다고, 언젠간 비행기 타고 미국도 꼭 가보고 싶다고 하셨다.
외할아버지는 아흔 후반 쯤 눈이 안보인다며 화장실도 찾기 힘들어 벽을 어루만지며 걸으셨다. 눈앞에 먼지가 그득하다며 깨끗한 바닥을 손바닥으로 자꾸 쓰셨다. 그 당시 칠십 후반이 넘었을 큰아들과 며느리도 외할아버지를 챙기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나는 외할아버지가 우리집에 계시는 동안 병원에 모시고 가 백내장 수술을 해드렸다. 눈 앞이 훤해졌다고 너무나 좋아하신 것도 잠시 어른들은 집안이 답답해 나가고 싶어하는 할아버지가 다치실까 걱정되어 못나가게 하셨다. 그렇게 흥 많고 밖에 다니길 좋아하는 할아버지가 큰 외삼촌 댁 작은 방에서 리모콘을 돌릴 줄도 모르는 채 홀로 하루종일 계신 것이 너무 안쓰럽게 느껴졌다.
나 살겠다고 바빴던 무렵의 어느 새벽 다섯시 전화가 울렸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믿을 수가 없었다. 두달 후 할아버지의 백 세 생신 잔치가 있을 예정이었다. 백명 가까이 되는 가족들이 대대적으로 모일 참이었다. 하지만 백 세의 할아버지는 너무 몸이 아프고 외로우셔 기다리기 힘드셨나보다. 외숙모는 외할아버지께서 나를 많이 찾으셨다고 하셨다. 죄책감이 오래도록 컸다.
여전히 외할아버지 생각이 많이 난다. 할아버지와의 이별이 너무 아프고 죄송스럽기만 하다. 그래도 할아버지는 하늘나라에서 나를 만나면 반갑게 달려와 웃으며 두 손 내밀어 꼭 잡아주실 것 같다. 만약 내가 지금 당장 죽는다해도 외할아버지를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죽음이 두렵지 않다. 할아버지를 다시 만난다면 내 아이들이 배운 판소리를 들려드리고, 맛있게 잘 드시던 짜파게티를 꼭 끓여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