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득 Nov 14. 2024

day7ㅡ밤이 되어서야 비로소 선명해지는 것들

by 신디북클럽



밤이 되면 유난히 모든 것이 선명해졌다.

선명한 것들을 기록하려 일기장을 펼쳐 그날 있었던 일들과 감정들에 대해 정리했다. 사람들과의 대화를 골똘히 생각하기도, 내가 했던 행동과 말을 검열하며 이불킥을 하기도 했다.
내 삶을 어떻게 그려나갈지 고민하며 왠지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에 가득 차기도, 절망과 고뇌의 문장이 종이를 가득 채우기도 했다. 오로지 나만 생각했던 그때에는 밤이 되면 인생을 생각하며 휘몰아치는 감정을 다스리지 못해 밤을 꼴딱 새우기 일쑤였다. 아마도 넘치는 체력도 한몫했겠지. 오래전엔 그랬다.


ㅡ지 몸뚱아리 하나도 건사하지 못하면서 자식들 챙기느라고 애쓴다 애써. 애들 생각만 하지 말고 니 건강 생각도 해라.

아직도 딸이 마냥 어린아이처럼 보이는 친정엄마는 손자보다 자식 생각뿐이시다. 엄마를 닮은 나의 하루가 바쁘게 지나간 후 선명해지는 건 졸립다, 빨리 자고 싶다는 생각뿐. 아니, 생각도 하기 전에 소파 위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뭐가 뭔지 모르게 눈앞에 닥친 일들을 대충대충 해치우며 정신없이 살다가 밤이 되면 잠든 나 대신 내 무의식이 생각을 하는 모양이다.

 그래서, 로맨틱한 순간에 낯선 남자의 얼굴이 남편의 얼굴로 바뀌는 꿈도 꾸고, 로또 번호를 알려주다 마는 돼지꿈도 꾸고, 누군가의 멱살을 잡았다가 쫓기며 소리 지르다 눈을 뜨기도 한다.


 아마도 아이들이 조금 더 커서, 내 삶을 또렷하게 생각할 여유가 있다면 그때 다시 밤이 선명해지려나. 그때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으려나.

선명한 밤을 보내지 못한 한동안의 세월이 텅 비어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