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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득 Nov 16. 2024

day 8ㅡ내가 아침을 기다리는 이유

일기

by 신디북클럽



3주 전쯤 열살 쌍둥이 중 2호의 오른쪽 검지 손가락이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생인손이라 불리는 조갑주위염 때문이었다. 손톱을 물어뜯는 버릇이 있는 2호는 아무리 말을 해도 듣지를 않고 조금만 불안하거나 걱정되는 일이 있으면 또는 집중해야 할때에 손톱을 물어뜯곤 했다. 그것이 문제의 시작이었다.


열심히 인터넷 검색을 해서 방문한 실력 좋다고 유명한 피부과의원은 손님이 너무 많아선지 불친절했다. 피부를 째고 고름을 짜내며 아이는 용감하게 비명을 참았고, 전날 밤 병원에 간다는 생각에 겁에 질려 밤새 팔이 잘리는 악몽을 꾸고 간혹 소리를 지르며 울던 아이는 그제서야 웃었다. 이제 고름을 짜냈으니 남은 건 소독을 잘 하는 것과 약을 제때에 잘 먹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눈에 띄게 낫는 것 같은 느낌이 잘 들지 않았다. 여러번에 걸쳐 병원엘 갔다. 오래된 병원의 할머니 의사는 눈이 잘 보이지 않는지 안경을 내리고 자세히 보려하다 이내 올렸다. 환자가 많이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바쁜지 우리를 빨리 내보냈다.


그러는 사이 1호가 왼쪽 엄지 손가락을 언뜻 숨기는 것이 눈에 보였다. 1호는 늘 다쳤을때마다 다친곳을 숨기곤 한다. 겁이 많은 1호는 병원 가는 것과 주사 맞는 것을 세상 제일 무서워하기 때문이다. 숨기면 병이 더 커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꾸 숨기려한다. 계속 숨기려는 1호의 손가락을 낚아채듯 잡아 올려 보았다. 손톱 옆이 발갛게 부어있었다. 염증이 생긴 것을 병원에 가기 싫어 몰래 혼자 짜낸 것 같았다. 1호도 병원에 가서 손가락을 보여드리고 소독약과 먹는 약을 처방받았다. 2호가 병원에 가는 것을 보고 자기 손을 보며 호기심에 거스르미를 뜯어보고 문질거리다 그렇게 된것 같다는 게 내 생각이다. 같이 병원을 다니며 보기에 상처가 커보이지 않아 금방 나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학교에서 아이들은 쉬는 시간이면 바닥에 앉아 딱지치기를 했다. 다양한 종이로 각자 만들어온 딱지를 쳐서 따먹기를 하였다. 학교에선 반 대항 피구대회도 열렸다. 아이들은 점심시간과 방과후를 이용해 피구연습을 했다. 주말에도 따로 만나 연습을 할 정도로 열정적이었다. 피구를 할 때에 공은 잡지 말고 피하기만 해라, 딱지치기는 하지 마라 라고 말해도 소용이 없었다. 바둑을 좋아하는 2호는 바둑학원에 가서 여러 아이들과 함께 바둑을 두었다. 검지 손가락 손톱 위에 바둑돌을 올려놓고 중지 손가락으로 위에서 받치고 두어야 하는데, 하필 그 검지 손가락이 아팠다. 선생님의 세심한 배려로 그 자세를 피했으면 좋으련만 대수롭지 않게 여긴 선생님은 아이에게 그냥 원래 자세로 바둑을 두라고 했고, 소심한 아이는 말도 못하고 아픔을 참으며 두시간동안 그렇게 바둑을 두었다. 여러 아이들이 만지던 바둑돌을 왜 아픈 손톱 위에 두고 바둑을 두었냐고 손가락이 아프다고 왜 말을 못하냐고 말해봤자 였다.


불 친절하기로 손님들한테 불호령 잘하기로 그렇지만 실력은 좋기로 유명한 의사가 악화된 손가락을 보고 아이들한테 낫게 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자기가 실력 없는 의사가 된 것 같아 속상하다고 했다. 대학병원 예약은 오래 기다려야 해 근처 정형외과로 갔다. 의사는 아이들을 보더니 당장 손톱을 빼야할 것 같다고 했다. 갑작스런 말에 소름이 돋았다. 무서웠다. 이 의사는 신뢰해도 되는 것일까. 진행되는 염증이 뼈까지 퍼지면 안된다고 무서운 말을 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울고 싶었다. 2호가 세상이 무너질 듯한 표정으로 먼저 울기 시작했다. 주사라면 비명지르고 울며불며 도망부터 가는 1호는 평온해 보였다. 스크린에 나오는 뉴스를 보며 무표정하게 트럼프가 당선되었다는 말을 했다. 그게 더 낯설고 이상했다. 남편에게 "너무 무서워" 라고 톡을 보냈다. 겁이 많은 F엄마는 표정관리가 어려웠다.  


2호가 먼저 처치실로 들어갔다. 진료받은 의사가 아닌 예전에 진료 받았던 다른 의사가 들어왔다. 의사를 바꿨다는 미안한 마음도 잠깐 긴장에 몸이 굳어버린채 인사도 나오지 않았다. 아이가 침대에 눕고 의사는 손가락을 소독했다. 나는 아이의 손을 잡고 얼굴을 감쌌다. 의사는 아이 손가락에 마취주사 네다섯번을 놓았고 마취가 된 것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핀셋으로 아이 손가락을 찌르며 아픈지를 물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손톱을 뜯어 잡아 빼기 시작했고, 아이도 울고, 나도 같이 고개를 돌리고 울었다. 아이는 계속 언제 끝나를 외쳤다. 밖에서 울음소리를 혼자서 듣고 있을 1호가 걱정되었다. 이걸 다시 한번 또 해야 하는게 끔찍했다.


2호가 나가고 1호가 들어와 내가 눈물을 닦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나를 올려다보는 1호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지병으로 세살부터 주기적으로 피를 빼기 위해 주사를 맞던 1호다. 아빠를 닮아 혈관이 숨거나 터져 한번 주사를 맞을 때마다 세네번씩 찔림을 당하기는 예사고, 양팔을 붙잡히고 발에서도 피를 빼내던 아이. 그래서 주사라면 애기 때부터 질색팔색인 아이. 1호의 손톱은 엄지라 범위도 더 넓고 훨씬 정상적이라 더 아팠을텐데. 아이는 웬일인지 의젓하게 울음소리도 크게 내지 않았다. 아이에게 고마웠다.


병원을 나설 때, 소식을 들은 엄마가 오셨다. 엄마는 "나도 손톱 뺐었는데 금방 괜찮아졌어. 걱정마." 하시며 아이들을 안심시키시고 고생했으니 아이들에게 맛있는 점심을 사주시겠다고 하셨다. 아이들과 맛있게 먹었던 굴칼국수와 갈치조림은 나에게도 너무 큰 위로가 되었다.


오늘 아이들은 학교에 가지 않았다. 학교에 가면 분명 또 해맑게 딱지치기와 피구 결승전을 할 터였다. 아이들은 학교를 가지 않은 대신 집에서 하루종일 도라에몽 만화를 보고, 학교에서 배운다는 코딩 게임을 했다. 2호가 다리가 아프다고 징징거리다 어지럽다며 구토를 하려했다. 티비와 게임은 모든 것을 잊게 해주는 행복한 마취총이었다. 아이들의 손가락은 무사했다.


저녁에 간호사인 아이친구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뼈에 염증이 옮을 수 있으니 대학병원에 가서 잘 치료가 되었는지 확인을 꼭 하라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내일은 학교를 보내야하나 고민이 된다는 나에게 1-2주 쉬는 것을 추천했다. 뼈까지 염증이 옮으면 괴사될 수 있으니 남자 아이들을 믿지말라고 하셨다. 너무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내일 학교를 보냈으면 미술수업 시간에 아픈 손가락이 아이로 인해서 또는 아이 친구들로 인해서 물감 물 샤워를 할 수도 있었다.


내일 아침이면 병원에 가서 드레싱을 빼고 손가락 소독을 할 것이다. 생인손으로 손톱을 빼는 것도 흔하지 않고, 병원을 다니면서 빼는 것도 흔하지 않고, 특히나 아이 둘이 한꺼번에 그렇게 되는 것이 흔하지 않다고 했다. 내일이 너무 걱정이 된다. 관리가 잘 되어있기를 바란다. 상처가 잘 아물고 있기를 소독까지 잘 끝내고 오기를 바란다. 내일이 어서 와서 빨리 병원에 가고 싶다. 시간이 빨리 흘러가서 아이들 손가락이 원래대로 돌아오길 바란다. 다 내 잘못 같아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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