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는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사는게 제일 고달팠던 거 같아. 그런데 말야. 나는 그 때가 가장 즐거웠거든. 아마도 집에 엄마가 없으니까 너무 자유로웠나봐. 잔소리 하는 사람도 없지, 나가 놀고 싶으면 마음껏 언제든 나가놀 수 있었지, 친구들과의 놀이는 또 너무 즐거워서 마냥 내 세상 같았어.
눈치는 있었는지 공부는 또 열심히 했단 말야. 백점을 맞아서 엄마를 웃게 해주고 싶었다구. 엄마가 내 눈앞에 보이지 않을땐 숨어서 울고 있는거라는 걸 알만큼 영특하진 못했지만, 왜 분위기라는 게 있잖아. 나는 말 잘듣는 착한 딸이 되어야 할 것 같았어. 나까지 엄마를 속상하게 하면 엄마가 날아가버릴것 같았거든.
큰 덩치에 거뭇거뭇한 수염이 산적같아 보이던 담임선생님은 나를 유난히 이뻐하셨어. 상이란 상도 나에게 다 몰빵해 주셨단 말이야. 담임 선생님은 어느 날 우리 엄마를 불러 나를 좀 더 신경 써주는게 좋겠다고 말씀하셨지만, 우리 엄마는 그럴만한 여유가 없었어.
저녁 여섯시 즈음이 되면 함께 놀던 동네 친구들의 엄마가 "저녁 먹자. 어서 와라." 부르는 소리에 하나 둘 집으로 들어가고 결국엔 나와 내 동생만 남았어. 그 적막함을 모르는 아이들이 부러웠던 적도 있었어. 그래도 괜찮았어. 저녁식사만 우리끼리 해결하고 나면 또 자유니까.
나는 사춘기에 접어들었고, 엄마는 나에 대해 잘 알지 못했어. 바쁘거나 고달픈 엄마와 나는 대화다운 대화를 거의 하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아마도 엄마가 대화를 하고 싶어 했을땐 내가 바쁘거나 고달팠겠지. 엄마를 웃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은 더 이상 하지 못했어.
나는 산적 담임선생님의 기대와 다르게 자라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어. 그 아이가 그리웠어. 그리고 의문이 생겼지.
ㅡ 엄마가 바쁘거나 고달프지 않고, 아빠가 가정적이고 다정한 분이었다면 나는 다르게 자라났을까?
10대에, 20대에, 30대에 끊임없이 나 스스로에게 질문했던 것 같아. 아니, 달랐을거라고 확신하며 원망했던 적도 있는 것 같아. 나도 참 웃겨. 그렇게 자유로웠다고 좋은 추억을 가졌다고 의기양양할 땐 언제고.
내 아이들은 올해 초등학교 4학년이 돼. 아이들을 보면 자꾸만 그 때 내 모습이 생각이 나. 분명히 나는 엄마가 옆에 없어서 너무 좋았다고 기억하는데 나는 왜 자꾸 아이들 옆에 있고 싶은걸까. 엄마 왜 일 안하냐면서 엄마가 없기를 은근히 기대하는 아이들 옆에 왜 자꾸 달라 붙어 아이들을 귀찮게 하는걸까. 가던 길을 중단하고 왜 자꾸 아이들 옆에 서 있는 걸까. 내 기억이 잘 못 된걸까? 나는 사실 엄마가 옆에 있어주길 바랬던 걸까?
1호가 독감에 걸려서 또 학교를 안갔어. 갑자기 쏟아내는 토를 두손으로 받아내고도 부족해 온몸에 샤워를 했어. 어젯밤에 1호가 나를 끌어안고 내 얼굴에 거칠게 숨을 쉬어대던 바람에 나도 곧 독감에 걸릴 것 같다구.
분명히 나도 이렇게 아플때가 많았을텐데. 6년 개근은 어떻게 한거지? 아파도 학교가서 아프라고 소리치던 엄마가 생각이 나긴하는데.... 아. 무슨 말을 하고 있는거지. 정신이 몽롱한데. 주제는 어렵고 내가 무슨말을 하는지도 모르겠고. 잠꼬대를 글로 쓰는 기분이야. 아. 일단 오늘은 그만 자자. 수정을 하든 이불킥을 하든 내일로 미룹시다... 아. 그리고, 오해하지 마요. 나는 우리 엄마를 존경하고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