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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소피 Dec 14. 2023

서로를 구원할 수 있을까(2)

소피의 카우치에 초대합니다 Part.2

https://brunch.co.kr/@sophy100/172




 “더는 지수가 아닌 앨리스로 살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앨리스로 사는 건 어떤 차이가 있나요?”     


앨리스의 고민에 소피는 확인할 부분이 있었다.     

 

“좀 더 자유롭죠. 주위의 시선에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걸 우선하는 사람. 앨리스는 어릴 적부터 품어온 이상형이에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보며 항상 모험을 꿈꿨어요. 정작 현실은 책으로 모험을 떠나는 게 고작이지만.”     


“떠나면 자유로울 거 같아요?”     


소피의 물음에 앨리스는 잠시 ‘자유’라는 개념을 생각해 보았다. 잠시나마 부산 여행을 갔을 때 확실히 자유로움을 느끼긴 했다. 여행을 가면 누군들 그렇지 않겠는가.       


“그걸로는 부족해요. 여행의 개념이 아니에요. 제가 원하는 자유는… 지금껏 해보지 않았던 일을 시도해 보는 거예요.”     


“예를 들자면?”     


소피는 지금 해 볼 수 있다고 가정하고 어떤 일을 할 것인지 떠올려 보라고 했다.   

어떤 게 있을까. 


앨리스는 머릿속으로 상상하면서 자연스럽게 카우치에 누웠다. 첫날부터 좋아한 말랑한 쿠션을 가슴에 꼭 안고 눈을 감았다. 소피 앞에서 주저하지 않고 눕는 게 자연스러웠다.      


“음… 일단, 쓸데없는 일을 하는 거예요. 어릴 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보며 상상한 장면을 그리곤 했어요. 책에서 맘에 드는 장면을 삽화로 그리는 걸 좋아했어요. 미술을 하고 싶었지만 부모님이 반대하셔서 못했어요.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돈이 안 되는 일을 해보고 싶어요.”     


“그건 지금도 얼마든지 할 수 있지 않나요?”     


“맞아요. 이젠 할 수 있는데 과거의 습성에 매달려 쓸데없는 일이라고 규정하고 있었나 봐요.”    

 

앨리스가 한결 편한 목소리로 답했다. 자유로워지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한번 상상하기 시작하자 연이어 떠 올랐다.      


“안정적인 일만 하는 건 그만할래요. 부모가 원하는 대학에 가고, 공무원이 되고, 집안 좋은 남자와 결혼까지 했으면 지금까지 안정적으로 살아야 하는 거잖아요? 근데 내 꼴을 봐요. 어차피 예상대로 안 되는 인생인데 그럴 거면 그냥 내 맘대로 살래요. 근데 내 맘대로 사는 법을 몰라요. 어디 가서 배울 데도 없고.”     


“어릴 땐 모르는 게 당연하고 흥미로웠는데 어른이 되면 모르는 게 약점이 되죠. 모르는 걸 숨기느라 바빠서 삶에 여유가 없어요.”    

  

앨리스는 소피의 말에 귀 기울이며 그렇게 쫓기는 기분이 들었던 이유를 알았다. 원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착각했으나 마음 깊은 곳에서는 알았다.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없어서 그렇게 벽을 치고 살았다.    

  

“그랬나 봐요. 숨기고 사는데 익숙해져서 자신도 속을 만큼. 이제 알겠어요.”     


앨리스가 갑자기 흥분한 듯 누워있던 카우치에서 일어나 앉으며 한 톤 높아진 목소리로 말했다.    


“자신을 속이지 않기. 솔직해지기.”     


앨리스의 결심에 소피가 대견하다는 듯 미소 지으며 물었다.     


“어떠한 순간에도?
자신 있어요?” 

    

소피의 질문에 앨리스의 어깨가 다시 축 처졌다.      


“글쎄요… 잘 모르겠어요.”     


“음… 용기가 필요하겠군요. 이건 어때요?”     


금세 기운이 빠진 앨리스에게 소피가 한 가지 새로운 제안을 했다. 앨리스는 소피의 제안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쥰은 언니와 만나고 돌아오는 고속버스 안에서 소피가 준 쪽지를 펼쳐 보았다. 쪽지에는 한 마디가 쓰여있었다.      


자신이 의심되거나 자신이 없을 땐 요술봉을 들고 주문을 외워보세요. 간절한 마음을 담아서.     


소피다운 말이었다. 달리는 버스 안에서 주문을 외울 수는 없으니 기억만 해 두었다. 쥰은 도착할 때까지 한숨 자기 위해 눈을 감았다.      


쥰은 꿈에서 쫓기고 있었다. 

ㅇ ㄴ ㅎ ㅁ, ㅏ ㅠ ㅡㅟ, 자음과 모음이 따로 또 같이 뭉쳐서 우르르 쫓아왔다. 쥰이 도망가는 모습을 가족들이 비웃고 있다. 지난번 꿈속에서 처럼 얼굴에 닢 ㄷ ㅣㅍ퓌 ㅁ ㄹ 따위의 의미를 알 수 없는 글자를 붙인 채 마구 웃어댔다. 언니만 쥰의 팔을 잡고 괜찮냐고 물었다.     

 

“저기요! 괜찮아요?”     


아무리 남보다 못한 자매지간이라도 저기요라니 이건 좀 심하지 않나? 언니가 팔을 잡고 흔드는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어느 순간 쥰은 눈을 번쩍 떴다.      


“저기 손님. 다 왔어요. 괜찮으세요?”     


생각보다 오래 잠든 모양이다. 어느새 버스는 터미널에 도착해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승객들은 다 내리고 혼자 남았다. 얼마나 생생한 꿈이었는지 이마에 식은땀이 맺혀있었다.      


“죄송합니다. 좀 깊게 잠들었나 봐요.”     


쥰은 자신을 깨운 기사에게 꾸벅 인사를 하며 잠이 덜 깬 얼굴로 버스에서 내렸다. 상쾌한 밤바람이 머리를 환기시켜 주었다. 한동안 꿈을 꾸지 않았는데 찜찜했다. 쥰은 잠도 깰 겸 좀 걸을까 하다가 얼른 가서 주문을 외워봐야겠다는 생각에 지하철을 타기로 했다. 


쥰이 회사를 관둔 지 벌써 석 달이 넘었다. 실업급여 기간이 아직 남았지만 이제 슬슬 취업 준비를 해야 한다. 약간의 적금이 남아있긴 했지만 혼자 사는 처지에 마냥 쉴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어차피 가족은 있으나마나라서 자신을 책임질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 난독증을 완전히 고치지 못하고 글을 쓰지 못해도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 쥰은 마음이 초조해졌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가방에서 요술봉을 꺼내서 주문을 외웠다.  

    

삐루삐루~ 이루어져라~ 얏!     


요술봉에서 밝은 빛이 나와 반짝거렸다 사라졌다. 쥰은 주문을 외우면서 눈을 꼭 감았다.     


제발 나를 사랑할 수 있게 해 주세요.
이대로도 좋아요.
더는 나에게 상처 주고 싶지 않아요.  

    

소원이 이루어질까? 

언니가 봤다면 바보 같다고 하겠지만 기분이라도 나아졌으니까 괜찮다. 


쥰은 씻고 와서 책상에 앉아 꿈을 기록하려고 마련한 노트를 펼쳤다. 요술봉의 주문을 적고 할머니를 생각하며 부산에서 들렀던 문방구에 대해 썼다. 시간은 어느새 훌쩍 자정을 지나 있었다. 

집에 와서 몇 시간째 글만 쓰느라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펜을 쥔 손도 아팠다. 쥰이 보기엔 제대로 쓴 것 같은데 아무래도 자신이 없었다. 소피에게 가서 확인해 봐야겠다.      


숙제를 마친 쥰은 노트를 덮으며 빨리 소피를 만나는 다음 주가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쥰의 바람은 그녀의 예상보다 훨씬 빨리 이루어졌다.     

 

다음날, 쥰에게 소피의 전화가 왔다.           


9화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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