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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소피 Dec 15. 2023

서로를 구원할 수 있을까(3)

소피의 카우치에 초대합니다 Part.2

https://brunch.co.kr/@sophy100/173




소피의 카우치 다섯 번째 세션.     

 

앨리스가 소피의 카우치 상담소에 들어섰을 때 처음으로 대기자가 있었다. 쥰이었다. 대기실에는 여전히 앉을 데가 없어서 앨리스보다 먼저 온 쥰은 화원처럼 꾸며진 주위를 둘러보는 중이었다.      


“어?!”     


앨리스가 입구에 들어서자 방문을 알리는 벨 소리가 나서 쥰이 돌아보았다. 서로 눈이 마주치고 한눈에 알아보았다. 이런 곳에서 만나는 게 그리 달가운 일은 아니다. 앨리스는 쥰을 모른 척하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반가웠다. 지난번 소피와의 상담에서 좀 더 마음의 경계를 풀고 솔직해지기로 한 뒤로 먼저 다가갔다.     

“혹시 쥰?”     

“앨리스?”     


쥰은 앨리스를 알아보았지만, 인사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이고 있었다. 앨리스가 먼저 다가와 줘서 반가웠다.      


“소피 만나러 왔어요?”     

“네. 앨리스도?”     


소피의 카우치에 상담사는 소피뿐이었다. 그렇다면 예약에 착오가 있어서 시간이 겹친 걸까? 안내 데스크에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마침 안내원이 다가왔다.      


“자리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네? 누구부터 해요?”     


앨리스의 물음에 안내원이 재차 “두 분 다 자리로 안내해 드리겠다”라는 말을 하며 앞장섰다. 지난번 세션에서 소피가 앨리스에게 집단 상담을 제안했었다. 함께 할 대상이 쥰이었나 보다. 쥰은 소피가 먼저 전화가 와서 예정보다 상담 날짜를 앞당기자고 했을 때 별생각 없이 예약이 많아서 그런가 보다 했다.     

 

앨리스와 쥰은 어색한 걸음으로 앞장서 가는 안내원을 따라갔다. 초행길이 아님에도 안내원은 항상 친절하게 안내만 주었다. 노크 소리에 이어 안에서 “들어와요!”하고 소피의 목소리가 들렸다.    

  

앨리스와 쥰이 한꺼번에 문으로 향하다가 살짝 부딪쳤다. 먼저 들어가라는 눈인사를 서로 하다가 쥰이 반걸음 뒤로 물러섰다. 앨리스는 문 앞에서 시간 낭비하고 싶지 않아서 먼저 들어갔다. 


곧이어 쥰이 들어오고 소피가 자리에서 일어나 둘을 반겼다. 오늘은 깔끔한 정장 차림도 히피 스타일도 아닌 화려한 드레스 차림이었다. 상담 후에 어디 파티라도 나가는지 상체가 딱 달라붙는 보랏빛 실크 드레스를 멋들어지게 차려입고 있었다. 소피의 화려한 차림새 덕에 상담실이 마치 연회장이라도 된 듯했다. 조명도 더 반짝였다.      


“앨리스! 쥰! 오늘 같이 하는 건데 어때요? 둘이 만난 적 있으니까 괜찮죠?”     


쥰은 소피에게 앨리스를 만났다고 한 적이 있었나 헷갈렸다. 앨리스도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알았는지 소피는 말하지 않아도 다 보고 있는 사람 같았다. 자신을 지켜보는 것 같지만 소름 끼치는 부류의 행동은 아니었다.

오히려 따뜻하고 안정적인 느낌이랄까. 


쥰은 앨리스를 만난 적이 없어도 괜찮았을 거로 생각했다. 그녀가 만나본 앨리스는 초면의 상대방에게 무례하게 구는 사람이 아니었다. 쥰과 앨리스가 대답할 새도 없이 소피가 먼저 자리에 앉았다.      


오늘은 카우치에 누울 수 없겠네.      


앨리스와 쥰은 둘이 같은 생각을 하는지도 모른 채 각자 카우치의 양 끝에 가 앉았다.      


“오늘 두 사람을 같이 보자고 한 건 우리가 어떤 새로운 시도를 할 시점이 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아! 상담 시간을 절약하려고 한 것도 있지만요!”    

 

소피가 긴장된 분위기를 풀어보려고 찡긋하고 윙크하며 덧붙였다. 

    

“소피가 생각하기엔 제가 남 앞에서도 스스로 솔직해질 수 있을 것 같아요?”     

“그걸 이제부터 알아보죠.”  

   

앨리스는 지난 세션에서 자신에게 솔직해지고 싶다고 했다. 소피가 다른 사람과 함께하는 상담을 제안했을 때 약간의 거부감이 들었지만, 결국엔 수락한 것도 그런 바람 때문이다. 완전히 낯선 사람이 아니라서 다행이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의 치부를 들킨 것 같아 민망했다. 

     

“소피, 저는 잘 모르겠어요. 아직 용기가 안 나요. 오늘도 꿈을 꾼 내용을 써 왔는데 제대로 썼는지도 모르겠고요.”     


쥰은 자신의 엉망진창인 글을 소피 외에 보여 준 적이 없다. 비록 앨리스와 인연이 있지만 어떤 평가를 할지 몰랐다.   

   

“그런 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아요. 여기 앨리스가 쥰을 도와줄 거예요. 아니, 서로 도와줄 수 있어요.” 

    

소피는 언제나처럼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앨리스는 소피의 말에 어리둥절했다. 

     

내 문제도 벅찬데 누가 누굴 돕는다고?     


“제가 지금 누굴 도울 처지는 아니라서요.”  

   

쥰도 앨리스와 마찬가지였다. 갑자기 자신이 없어진 쥰이 가방을 들고 또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쥰의 그런 모습을 여러 번 본 소피는 가만히 있었다. 앨리스는 쥰의 행동을 보고 자기와 똑같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서로 도움이 될지는 몰라도 위안은 될 수 있을 것 같다. 

     

“저한텐 이미 쥰이 위안이 되었어요. 그날 바닷가에서 자살하려고 한 건 아니지만 지독하게 외로웠거든요. 인제 그만 마음속에서 아가를 떠나보내고 나니 정말 혼자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 우연히 쥰이 함께 해 줬어요. 다시 한번 고마워요. 그때 연락처를 묻지 않은 건 이런 만남을 기대해서였나 봐요.”     


앨리스의 솔직한 말에 쥰도 마음이 흔들렸다. 여기서는 무슨 말을 해도 괜찮다는 생각이 다시 한번 들었다.      

“저도 외로웠어요. 아마 그래서 앨리스에게 눈길이 갔는지도 몰라요. 제 인생에도 호의를 가진 누군가가 들어와 줬으면 했거든요.”     


앨리스가 먼저 말을 하자 쥰은 자신도 몰랐던 속마음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마지막화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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