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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소피 Feb 25. 2024

잘하려고 하지 마!

호떡 vs 공갈빵 or 만두전

집착과 열정 사이


한동안 집착과 열정의 경계에서 갈팡질팡했다. 

뭔가를 잘하려고 할수록 거기에 시간과 노력을 쏟아붓게 된다. 들인 시간과 노력은 집착과 비례한다. 열정을 쏟아부을수록 결과를 기대하게 되고, 기대한 만큼 실망도 크다.


법상 스님의 “결과는 어찌 될지 모르니, 그냥 일단 마음을 내어보고, 집착하지 않는다”는 말이 혼란스러웠다. 내려놓고 집착하지 않으려고 할수록 자신을 속이는 것 같고, 스트레스만 가중됐다. 될지 안될지도 모르는 일에 어떻게 부담 없이 최선을 다할 수가 있는지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웠다. 스님이니까 그게 될지 몰라도 중간 과정이 많이 생략된 말이었다. 

하다못해 집착을 경고하는 표지판이라도 있으면 모를까 도저히 가늠이 되지 않았다. 


열심히는 여기까지, 다음 단계는 집착입니다. 


우연히 유재석이 진행하는 U튜브 <핑계고>에 조혜련이 나온 걸 봤는데 한마디로 명쾌한 말을 했다. 조혜련이 국내에서 제법 입지를 다지고 일본 진출을 할 때였다. 어지간하면 긴장하거나 떠는 일이 없었는데 일본 방송을 앞두고 엄청나게 긴장하는 자신을 보고, "아! 내가 잘하려고 해서 그러는구나! 긴장하지 마. 하던 대로 해. 못하면 어때?"라고 스스로 되뇌었단다. 


그런데 결론은, 역시나 예상대로 엄청 못했다는 반전 아닌 반전을 얘기를 하며 엄청 웃었다. 


출처 : 유튜브 핑계고

공룡이가 나보고 "욕심이 많다"라고 했을 때 동의할 수 없었다. 나처럼 욕심이 없는 사람이 어딨다고?

웃기려고 하는 조혜련의 말을 본 순간, 잘하려고 하는 것,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을 먹을수록 집착하게 된다는 걸 깨알았다. 


열심히 마음을 내서 뭔가를 했는데 어떻게 결과에 집착하지 않을 수 있을까? 잘하고 싶은데, 더 잘하고 싶은데 어떻게 결과는 "되면 좋고, 아님 말고"라는 태도로 일관할 수 있는지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삶이 나를 X먹일 때


이만하면 살 수 있겠다고 마음먹은 때가 있다. 이 정도만 되어도 그냥저냥 만족하면서 살 수 있겠다고 스스로 위안 삼을 때 꼭! 무슨 일이 터진다.


마치 “너 이래도 살만해?”라고 세상이, 온 우주가 나를 엿먹이는 기분이다.


직장 다닐 때도 그랬다. 이제 그만 옮겨 다니고 여기서 좀 정착하자고 맘을 먹으면 얼마 안 가 퇴사하고 싶은 일이 꼭 생긴다. 

항상 불안했다. 이 평화가 얼마 안 갈까 봐. 이렇게 평온한 삶을 살 수 있을까라고 맘을 놓으면, 방심하면 꼭 무슨 일이 생긴다. 순식간에 내면의 평화는 깨진다. 고요한 마음에 누가 돌을 던진 것처럼 파장이 인다. 왜 이럴까? 뭐가 잘못된 걸까? 혼자 자책하고, 기분이 바닥을 친다. 


열심히 살려고 할수록 나는 더 불행해진다. 


정말 내려놓고 아무것도 집착하지 않으려고 해도 쉽지 않다. 내가 아직 내려놓지 못해서인가? 

삶이 뜻대로 되지 않는 게 당연하다고 치자. 그런데 왜 매번 시험당하는 기분이 들까? 싸운 적도 없는데 진 기분이다. 


호떡은 오리지널로


답답함을 뒤로하고 공룡이와 마트에 갔다. 공룡이가 카트를 밀고 물건을 고르면 옆에서 길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졸졸 따라다니기 바쁘다. 


용주부를 하기 전부터 그랬다. 쇼핑에 젬병인 나는 마트나 백화점만 가면 머리가 어지럽다. 

금요일 저녁이라 그런가 마트에 사람이 몰려 카트기가 정체됐다. 공룡이가 나에게 카트를 맡기고 혼자 가서 고기를 고른다. 나는 카트를 사람들과 부딪치지 않게 최대한 상품 진열대 쪽으로 밀착해서 멀뚱히 서 있는다. 주위를 둘러보니 나처럼 서 있는 사람은 어린 아이나 아저씨들 밖에 없다. 


마트는 언제나 행사 중이다. 오늘 내 눈에 띈 건 호떡 믹스. 

예전에 호떡이 먹고 싶어서 혼자 호떡 믹스를 사다가 해 본 적이 있다. 보기에는 쉬운데 호떡 반죽이 손에 달라붙어서 떨어지지도 않고, 설탕이 터지고 난리도 아니었다. 맨 손에 해서 그런가 싶어서 식용유를 손에 발랐는데 대참사가 벌어졌다. 프라이팬까지 기름 범범이 되어서 고작 호떡 하나 먹겠다고 주변 설거지 하느라 더 힘들었다. 그 뒤론 호떡은 집에서 해 먹는 음식이 아니라 사 먹는 거라고 배웠다. 


그.러.나! 

요즘은 호떡 파는 데가 잘 없다. 우리 동네에는 아예 없다. 나는 집에서 원할 때 언제든 호떡이 먹고 싶었다. 과거에 공룡이가 호떡 장사 아르바이트를 해 봤다고 했으니 나보단 낫지 않겠지? 공룡이가 오기 전에 얼른 호떡 믹스 두 개를 카트에 넣었다. 


공룡이가 카트를 보더니 큰 인심 쓰듯이 해 주겠다고 했다. 오예! 

공룡이는 먹는 거에는 인심이 후하다. 대부분 관대한 편인데 특히 더 그렇다. 


오랜만에 해 보는 호떡 반죽인데 역시나 손놀림이 예사롭지가 않다. 심지어 호떡 안에 들어가는 설탕도 터지지 않았다! 완전히 프로다 프로!


용주부 표 호떡

공룡이는 호떡 뒤집개가 없다고 투덜댔지만 가정집에 그게 왜 있겠냐고. 

호떡 안에 설탕이 뜨거워 입천장을 조금 데였지만 내 손에 반죽이 하나도 묻지 않고 호떡을 먹을 수 있어서 아주 만족스러웠다. 


공룡이는 여기서 그치질 않았다. 하나 남은 호떡 믹스를 가지고 도전 정신이 살아났다. U튜브에서 또 뭘 봤는지 이번엔 공갈빵을 해주겠단다. 호떡을 만들 때보다 뭔가 더 과정이 복잡했다. 


쟁반에 밀가루를 뿌려 칼국수 밀듯이 밀기까지 했다. 오븐에 넣어서 익히는 걸 볼 때만 해도 부풀어 오르는 게 그럴듯했다. 그러나 역시 U튜브의 말만 믿을 게 못된다. 반죽을 얇게 하되, 터지지 않기가 쉽지 않았다. 

에어프라이에 해 봐도 마찬가지였다. 반죽에 밀가루가 너무 많이 묻어서 털어내고 먹었는데도 밀가루 맛이 났다. 


공기 반 소리 반 공갈빵

도저히 별미라고 하기에도 뭣한 맛이었다. 과자도 아니고, 뭔가 맛을 볼만한 거리(?)가 없었다. 

처음 해본 요리 실패에 자존심 상한 공룡이에게 "거봐! 오리지널이 최고라니까?" 따위의 말은, 밀가루 묻은 공갈빵과 함께 목구멍으로 삼켰다.  


하지만 이 자리를 빌려 말하고 싶다. 

거봐! 잘하려고 하니까 더 못하잖아?


현재에 집중하기


호떡 믹스로 실패한 걸 가지고 요리라고 하기도 뭣하기에 다행히 공룡이는 금세 털고 일어나 용주부의 면모를 뽐냈다. 오리지널 용도를 변형한 공갈빵은 실패했지만, 냉동 만두를 이용한 '만두전'은 웬만한 동그랑땡 보다 맛있었다. 


냉동만두의 화려한 변신 '만두전'

공룡이는 비록 공갈빵이 생각대로 되지 않아도 요리 자체를 관두지 않았다. 그 일로 짜증도 내지 않았다. 

공갈빵의 실패를 경험 삼아 만두전도 시도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인생이 그렇듯 수많은 시행착오 하나였을 뿐이다. 요리뿐만 아니라 삶에서도 이런 달관한 태도를 가지면 고통받을 일도 없지 않을까? 말처럼 되지 않아서 문제지만. 


공룡이에게 요리는 잘해야만 하는 집착을 가져올 정도의 일은 아니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대충 하는 일은 아니다. 잘하고 싶긴 하지만, 그보다 그냥 하고 싶은 일이다. 

별 기대 없이 우연찮게 만든 만두전의 기쁨이 그래서 더 즐겁다. 

 

결과는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게 맞다. 아무리 노력해도 되지 않을 수 있고, 기대하지 않고 그냥 쉽게 했는데 예상보다 좋은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노력이 꼭 결과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그럼, 왜 노력을 해야 할까?


인생은 원래 내 뜻대로 되지 않고, 그게 되면 신이지 인간이 아니다. 내가 뭔가 마음을 잡고 여기서 안정을 취하려고 하면 “네가 언제까지 그러는지 보자”는 것처럼 나를 X먹이는 일이 생긴다. 

그럼, 세상을 원망하고 살아야 할까?


그럴수록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에만 집중하는 것이 최선이다. 사실 이것도 쉽지 않다. 계속 마치지 못한 일, 해결해야 할 일이 머릿속을 떠돈다. 지금 현재 하는 일에 집중하는 법을 익혀야 한다. 나의 정신을 과거나 미래에 두지 말고 지금 이 순간에 두어야 한다.


결과? 물론 여전히 알 수 없다. 그런데 어떻게 최선을 다할 수 있을까?

내 인생에서 미처 끝내지 못한 중요한 일을 할 때 마음의 불안이 덜하다. 이때 결과는 중요하지 않다. 마음속에 오랫동안 품어왔던 일을 하는 순간부터 그 일에 몰입하게 되어 온전한 내가 되는 기분을 느낀다.


한마디로 살아있다고 느낀다. 내가 마음을 내어 무엇인가를, 꿈꿔왔던 어떤 일을 했을 때 비록 내가 기대한 결과는 나오지 않아도 전혀 생각지도 못한 길이 보일 수 있다. 인생은 해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거니까. 그건 아무리 전능한 자라도 알 수 없다. 내가 직접 해보는 수밖에.


될지 안 될지 결과도 모르는 일에 왜 마음을 내고 최선을 다해야 할까?

만약 정말 결과는 알 수 없고, 집착하지 않겠다면 적어도 하고 싶은 일에 최선을 다해 노력을 해야 결과가 좋지 않아도 덜 억울하지 않을까? 하고 싶지도 않은 일을 억지로 했는데 결과도 안 좋다? 이거야말로 최악이 아닌가?


결과를 떠나 하고 싶은 일을 후회 없이 해봤다는 것은 엄청난 힘이 된다. 그 경험은 내 안에 축적되어 어디 가지 않고 차곡차곡 쌓인다. 계속 그렇게 오늘 내가 할 일에만 집중해서 묵묵하게 했을 때 시절인연을 만나 반드시 한 번은 나의 시대가 온다. 그게 남들이 말하는 때와 다를 뿐, 나의 시대는 사회적으로 규정된 때가 아니라 나에게 맞는 때이다.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닌데 남과 비교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공룡이 덕에 매 끼니 걱정에서 벗어나 훨씬 여유롭게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생겼다. 

공룡이는 생각지도 못한 용주부를 해 보며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재정립하는 중이다. 

각자 소비자에서 생산자로 가는 첫걸음을 내디딘 우리에게 어떤 일이 닥칠지 모른다.

다만, 잘하려고 하지 않고, 즐길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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