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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소피 Apr 07. 2024

결혼기념일에도 밥상 받아먹는 백수 아내

소고기사태찜

'직업'의 사전적 정의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자신의 적성과 능력에 따라 일정한 기간 동안 계속하여 종사하는 일"이다. 이 정의에 따르면 나는 직업이 없다. 


하는 일은 있는데 직업은 없다. 


친정 엄마도 그렇게 생각하는 듯했다. 내가 대학원에 간다는 말을 했을 때도, "무슨 공부하냐?"는 질문보다 "그거 하면 돈 돼?"냐고 물었다. 석사를 졸업하고 박사까지 한다고 하니 이번엔 "그럼, 집에서 공(짜) 밥을 먹냐?"라고 했다.  

   

물론, 버럭 했다. 은연중에 나도 같은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직설적인 엄마와 무뚝뚝한 딸은 자주 부딪쳤다. 그나마 멀리 떨어져 살아서 자주 보지 못해서 다행이다. 


대학 졸업 전부터 사회생활을 했고, 수백 번의 면접과 이직을 해도(100번 면접 본 여자) 공백이 거의 없었다. 코로나가 심해질 무렵 재택근무를 하다가 당시 회사가 재정이 어려워져 전속(?) 프리랜서가 되었고, 그 뒤 계약 만료로 자연스럽게 백수가 되었다. 


대학원에 다니고, 논문을 쓰고, 국가공인 자격증 준비를 하고, 글쓰기를 하며 집안일을 해도 '직업'이 없어서 공밥을 먹는 사람이 된 거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가족이 그런 말을 하니 더 상처가 되었다. 

엄마의 속내는 외벌이를 하는 사위에 대한 걱정과 자신이 보탬이 되지 못한 미안함 등이 한데 섞여 무의식 중에 튀어나온 말이 "공밥"이었다. 


결혼기념일에 남편이 소고기사태찜을 해서 엄마에게 자랑삼아 보낸 게 발단이었다.  

하고 많은 걱정 어린 말 중에 왜 하필 "공밥"인가.

정신분석에서 우연은 없다. 은연중에 뱉은 말, 말실수, 농담 등은 무의식의 형성물로 본다. 엄마도 말실수를 했다고 느꼈는지 (당연히 사과는 하지 않고) 말을 돌렸다. 


늘 그런 식이었다. 

부모 자식 간에 말 한마디마다 잘잘못을 따져본 들 서로 상처밖에 남지 않는다. 부모가 자식에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안다. 하지만 가족 간에는 평가나 지적질이 아니라 격려와 응원이 먼저였으면 좋겠다. 이조차 내 욕심이고, 바람이겠지. 내 생각이 무조건 옳다고 강요할 순 없기에 엄마와의 불편한 대화 이후 한동안 연락을 하지 않았다. 


용주부인 남편은 그 말을 듣고 "자기가 왜 공밥 먹냐?"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요즘 남편은 용주부까지 하느라 두 배로 바쁘다. 결혼기념일에는 평일이기도 하고, 내가 대학원 행사가 있어서 뭔가를 하기 애매해서 용주부가 솜씨를 발휘했다. 


본인도 처음 먹어본다는 '소고기사태찜'을 했다. 내가 고기와 면 요리를 좋아한다는 걸 알고 고심 끝에 고른 메뉴였다. 


얇게 저민 소고기 사태를 수육처럼 삶은 소고기사태찜


소고기 사태를 수육처럼 통째 삶아서 최대한 먹기 좋게 얇게 저몄다. 식칼이 잘 안 든다며 투덜대던 용주부는 국수 면이 퍼지기 전에 소고기사태를 올려 먹어보라고 권했다. 


나: 그냥 잔치국수도 좋아하는데 그 위에 고기라니 너무 환상의 조합인걸!
용주부: 우리처럼?
나: (입 바른말로 단호하게) 어딜 우리한테 비벼?
용주부: 맛이 어때? 면이 좀 퍼진 거 같은데.
나: 아냐. 딱 좋아!(사실 좀 불었다.)
소면 위에 소고기사태를 얹어 먹는 소고기사태찜


용주부의 요리를 가족에게 보내면 "너는 뭐 하냐?"라는 핀잔만 돌아왔다. 내가 요리를 하면 당연한 거고, 남편이 하면 특별한 일이 된다. 내가 직업이 있건 없건 마찬가지다. 직업이 없으면 더욱 "너는 뭐 하냐?"라는 말을 듣는다. 


남편이 요리 좀 한다고 해서 아무렴 나보다 많이 했을까. 집안일이 어디 요리 밖에 없나. 하지만 나는 '직업'이 없다는 이유로 요리까지 하는 남편을 둔, 팔자 좋은 여자로 둔갑했다. 기념일에도 밥상을 받아먹는 아내가 되었다. 그 뒤로 다시는 가족에게 사진을 보내지 않는다. 


대신 브런치에 연재한다. 브런치에 연재하는 이유는 얼마큼 좋아해야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에 쓴 것처럼 그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일을 찾아가는 과정을 응원하기 위해서이다. 


결혼기념일에 비싼 선물을 사 주지 못해서 미안해하며 처음 해 보는 요리를 정성을 다해하는 건 용주부가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다. 그 맘을 알기에 용주부의 요리를 먹어보기도 전에 이미 맛있었다. 


기념일에'' 요리를 하는 남편이 아니라 기념일에'' 요리를 하는 남편을 두어서 행복해해야 하는데 마음 한편이 씁쓸했다. '직업 = 나'가 아닌데 오랫동안 이렇게 인식하고 살았다.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한 방황을 꽤 오래 했다. 은둔의 시간은 필수적이었다. 나이가 얼마든 상관없다. 소설 <데미안>에서 알을 깨고 나오는 싱클레어처럼 인생에서 한 번쯤은 거쳐야 할 과정이었다. 


이제 직업의 사전적 정의 외에 나만의 정의를 새롭게 해야 할 때다. 중요한 일을 할 때는 절대 빈 속에 하면 안 된다. 용주부의 요리를 먹고, 속을 든든히 채운 뒤 다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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