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돌프 히틀러의 어린 시절 5

히틀러 어머니가 죽고 어린 시절이 드디어 끝나다

by 꿈많은 미소년


다음 사람은 시험을 보았고 부족한 성적으로, 혹은 입학 인정이 되어지지 않는다. 아돌프 히틀러, 브라우나우 아 인, 1889년 4월 20일, 독일인, 가톨릭, 부친은 시 공무원. 고등학교에서 4과목 수료, 성적 불량. 시험에 제출된 그림의 성적은 불만족.


히틀러는 다음 해에 다시 도전하였지만 이번에 그의 그림들은 너무 수준이 낮아서 시험에서 인정받지 못했다. 이 야망 있는 젊은이에게는, 나중에 자신이 쓴 바에 따르면, 청천벽력과도 같은 일이었다. 히틀러는 분명히 성공적으로 합격할 것이라고 절대적으로 확신하고 있었다. 나의 투쟁에서 자신의 주장에 따르면, 히틀러는 대학 총장에게 설명을 요청했다.


그 신사는 내가 제출했던 그림들이 이론의 여지가 없게도 나의 재능이 미술에는 합당하지 않음을 보여주었다고 확신했다. 그리고 내 능력은 명백하게 건축 분야에 있다고 했다. 그가 나에게 말하기를 미술 대학은 나에게 맞지 않고 건축학부가 나에게 적절할 것이라고 했다.


젊은 히틀러는 동의하도록 설득되었다. 하지만 빠르게 다시 되돌아 보니 자신은 고등학교에서 학업에 실패하고 졸압도 하지 못했다는 점이 건축학부에 입학하는 데 장애가 될 것이라는 점을 알아차렸다.


그 무렵 히틀러의 어머니는 유방암에 걸려 죽어가고 있었고, 히틀러는 린츠로 돌아왔다. 아돌프가 학교에서 나온 후 삼 년간 클라라 히틀러와 그녀의 친척들은 이 젊은이를 지원했지만, 이제 그 노력에서 아무 것도 볼 수가 없었다. 1908년 11월 21일, 마을이 크리스마츠 축제때 입을 의복을 정하고 있을 때, 아돌프 히틀러의 어머니는 숨을 거두었다. 그리고 이틀 뒤에 레오딩 묘지에 그녀의 남편 곁에 매장되었다. 19세의 젊은이에게는


공포스런 바람이 닥쳤다... 나는 아버지는 존경했지만 어머니는 사랑했다.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내가 하늘 높이 날아 가는 것을 꿈꾸던 계획이 끝났다는 것을 의미했다... 가난과 힘든 현실 때문에 나는 빠른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나는 어떻게든 내 자신의 생계를 꾸려나가야만 하는 문제에 직면했다...


어떻게든! 히틀러에게는 일을 할 기술이 없었다. 히틀러는 항상 육체 노동을 경멸해 오고 있었다. 단 일 센트라도 벌어 보기 위해서 노력했던 적이 결코 없었다. 하지만 히틀러는 의연했다. 자신의 친척들에게 작별을 고한 후에, 성공할 때까지는 결코 돌아오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옷과 속옷으로 가득 찬 여행 가방을 손에 들고, 불굴의 의지를 내 가슴 속에 담은 채, 나는 비엔나를 향해 길을 떠났다. 나 또한 아버지가 오십 년 전에 성취했던 운명으로부터 노력하여 나의 것을 얻어 내기를 희망했다. 나 또한 "무엇인가"가 되기를 희망했다. - 그러나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시 공무원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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