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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얼쑤 Oct 23. 2021

(모른다고 할 수 없는) 컨시어지

모르는 걸 모른다고 해야지 그럼 뭐라고 해야 하나요?

컨시어지의 메인 데스크가 로비에 있다 보니 근무하면서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화장실이 어디냐는 질문이었다. 이건 컨시어지뿐만 아니라 로비가 메인 스테이지인 직원들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화장실 다음은 엘리베이터는 어딨냐는 질문이 아닐까? 게스트에겐 미안하지만, 사실 너무 자주 듣는 질문이라 귀찮은 질문이다. 세상 모든 호텔리어가 가장 귀찮아할 질문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공감하기에 호텔에 가면 화장실이나 엘리베이터가 어딨는지 어느 누구에게도 묻지 않고 꼭 혼자 찾는다. 화장실, 엘리베이터 다음으로 컨시어지가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보통 특정 장소에 가는 방법, 둘 중에 더 맛있는 레스토랑, 오늘의 날씨처럼 답을 절대 알 수밖에 없는 질문들을 한다. 하지만 내가 가장 싫어하는 변수가 여기에도 있다.


호텔리어라면 게스트에게 쉽게 해서는 안 되는 몇 가지 말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모른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아 그냥 모른다고 해버릴까'라는 생각이 순간 팍 들게 하는 황당하고 때론 심오한 질문들을 게스트가 하곤 했었다. 돌발 질문이었지만, 때로는 고마운 질문이기도 했다. 그들이 바라본 서울에 대한 궁금증에서 비롯된 질문은 내가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던 부분을 오히려 챙김을 받는 것 같아 좋기도 했었던 질문 몇 개를 추려봤다. 


김치 담그는 방법을 아는가?

한국에 전쟁이 일어날 확률은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는가? 안 무서운가?

한글은 어떤 원리로 만들어진 건가? 내 이름을 한글로 써줄 수 있는가?

한국 여자들은 대체 무슨 화장품을 쓰길래 피부가 좋은 건가? 왜 남자도 피부가 좋은 건가?

이화여대는 왜 여자를 위한 학교가 되었는가?

동시에 왕이 5명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왜 서울에는 궁궐이 5개나 있는가?

한국인들은 싸이를 좋아하는가? 강남 스타일의 강남은 어떤 곳인가?

왜 택시 아저씨들은 전부 화가 나있는가?

왜 모든 사람들이 다 같은 갈색 트렌치 코트를 입고 다니는가?

당신은 한국인인데 왜 삼성이 아닌 애플의 아이폰을 쓰는가?


사실 편하게 자유로운 답변을 할 수 있는 질문들이 몇 개 있다. 하지만 컨시어지니까, 컨시어지이기에 할 수 있는 답은 따로 있다. 이런 질문을 하는 게스트는 컨시어지를 통해 서울을 이해한다는 점에 늘 주목해야 한다. 때론 나의 대답이 서울에 대한 편견을 심어주는 건 아닐지,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 마치 한국 사람들 전체의 생각처럼 비치는 건 아닐지. 나의 답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그렇기에 컨시어지는 항상 정확하고 중립적인 자세를 유지하며 최대한 모범 답안에 가까운 대답을 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언제나 잊어서는 안 된다. 호텔의 컨시어지이기도 하지만 서울의 컨시어지라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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