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얼쑤 Oct 21. 2021

노 플랜

오늘부터 노 플랜은 금지어. 

중동에서 온 게스트들은 컨시어지를 처음 만나면 약속이라도 한 듯 모두가 같은 말을 한다. “I have no plans. What should I do?” 세상에 노 플랜이라니. 컨시어지가 세상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말이 노 플랜인데, INTJ형 컨시어지인 글쓴이 본인은 절대 이해할 수 없었던 여행 스타일이다.


왠지 노 플랜이라고 하면 굉장히 즉흥적인 여행을 즐기는 사람들일 것 같지만, 그 누구보다 본인들의 일정을 깐깐하고 꼼꼼하게 시간 순으로 정한다. 이들은 
데스크에 머무는 시간도 ‘최소’ 40분으로 모든 국적의 게스트를 통틀어서 가장 긴 편에 속한다. 그리고 다른 외국인들에 비해 투숙 기간이 굉장히 길고 먹을 수 있는 음식 또한 제한적이라 일정을 설계하는 데 있어 가장 어려운 국적의 게스트에 속한다. 40분 정도 떠들다 보면 우선 목소리를 잃게 되며 그 다음에는 멘탈을 잃게 되는데, 부디 이 게스트 뒤에 선 게스트가 중동에서 오지 않았길 내심 바라던 때가 있었다. 조금 이따가 와주세요, 중동 게스트 여러분..


중동 게스트와 한번 엮이면 아주 지독하고 질기게 엮이게 된다. 그들의 일정은 완성될 때까지 완성된 게 아니기 때문이다. 변덕이 워낙 심한 탓에 컨펌에 재컨펌에 재재컨펌까지 하지만 다 소용없는 일이다. 분명히 최종적으로 아침에 일어나서 창덕궁 후원을 간다기에 티켓 예매까지 철저하게 했지만, 나의 경험에 의하면 그들은 후원은 까맣게 잊고 있다가 늦은 점심쯤 기상할 것이다. 그리고 일정을 전면 취소하거나 통째로 바꾸겠지만 다 부질없는 일이다. 오늘 일어났던 일이 거짓말처럼 내일도, 그 다음 날에도 일어날 텐데 수정이 다 무슨 소용이겠냐는 말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중동 게스트는 컨시어지를 놀리려고 서울에 도착하기 전에 모두가 이렇게 하자고 약속하는 몰래카메라가 분명하다. 그게 아니라면 이렇게까지 단합된 모습을 보여줄 수가 없다.

이전 10화 헛개같은 소리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