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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얼쑤 Oct 21. 2021

헛개같은 소리

호베니아 덜시스라고 들어보셨나요?

태국에서 온 이 게스트는 딱 두 번 만났었다. 늘 서울에 오면 보름 정도 길게 머물렀고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대단한 부자인 그는 생김새부터 미세하게 취하는 제스처까지 여러모로 굉장히 독특한 면이 많은 사람이었다. 기이한 그의 투숙이 확정되는 순간, 곧 귀찮은 일들이 주옥같이 불어닥친다는 신호다. 울고 싶은 심정이었지 뭐.


그의 특징을 몇 가지 짚고 넘어가자면 늘 수행 비서인 듯, 여자친구인 듯한 여자와 항상 같이 다녔고, 본인이 직접 직원과 대면해서 말하는 경우가 적었다. 그리고 한국의 뷰티, 에스테틱, 건강에 대한 그의 관심은 남달랐고 그가 서울을 방문하는 주목적이기도 했다. 이미 개인적으로 다니는 국내 클리닉이 몇 군데 있었고 여자보다도 더 복잡한 관리 루틴을 갖고 있었다.  


이 게스트의 체크아웃 날짜가 별 탈 없이 다가온다고 좋아하던 어느 날,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호베니아 덜시스'가 필요하다고 했다. 차로 우려먹기도 하고 약으로도 쓰이는 이 호베니아 덜시스는 바로 헛개다. 영어로 Hovenia dulcis. 아시아권 국가 중에서도 특히 우리나라 헛개의 품질이 아주 뛰어나기에 반드시 한국의 헛개를 사야한다며 꼭 구해달라고 부탁했다. 덕분에 우리나라 헛개가 최고인 걸 그때 알았다.


처음엔 숙취 해소에 좋은 헛개 음료가 외국에서도 알아주는 음료라 메로나처럼 헛개 음료를 몇 박스씩 사면 되나 했지만, 헛개 음료는 무슨. 컨시어지의 일이 그렇게 쉽게 풀릴리가 없다. 그가 사고 싶었던 건 바로 헛개나무였다. 묘목을 원했던 것이다. 태국으로 돌아가면 집 앞에 직접 헛개나무를 심어 그 열매를 따서 약재로 쓸 원대한 계획을 갖고 있던 것이다. 이게 무슨 헛개같은 소리인가 싶지만, 놀랍지도 않다. 이래야 우리 호텔 게스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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