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얼쑤 Oct 09. 2021

올 때 메로나

말하는 대로 이루어질지어다.

직접적으로 겪은 건 아니지만, 주변 사람들이 재밌는 호텔 이야기 하나만 해달라고 하면 꼭 들려주는 이야기가 있다. 일명 '메로나 레이스'로 호텔에 근무하면서 있었던 역대급 에피소드다.


근무했던 호텔의 특성상, 남다른 스케일을 가진 게스트들이 많이 방문했다. 덕분에 살면서 만날 일이 절대 없는 하이 프로파일(high profile) 게스트도 참 많이 만났었다. 이들은 주로 스위트룸 이상인 객실에 머물며 비즈니스, 퍼스트 클래스도 아닌 전세기를 타고 여행하는 리치한 패턴을 갖고 있다.


클라스가 다른 여행 패턴을 가진 게스트들은 호텔이 별도로 초대하여 관리하는 VIP로 브랜드 내 그 수가 많지 않은 VIP 원탑이다. 이들은 동일한 호텔 브랜드가 있는 도시 어딜 가도 호텔로부터 극진한 케어를 받게 된다. 좋아하고 싫어하는 건 물론, 게스트의 재혼으로 바뀐 배우자의 이름까지 그들의 모든 것이 다 공유된다. 재밌는 건 이미 세상을 가져 남부러울 것 없는 탑 VIP 게스트들이 간혹 귀엽고 엉뚱한 부탁을 한다는 것이다. 그 부탁이 선을 넘지 않는 부탁이라면 호텔은 흔쾌히 들어주는데 어느 날 호텔이 받은 게스트의 부탁은 이러했다.


로비의 늦은 저녁 시간은 하루 중 가장 고요한 시간인데, 이 평화를 깨고 체크아웃을 하루 앞둔 이 게스트가 간곡하게 찾는 아이템이 있었다. 그건 바로 메로나. 모두가 알고 있는 그 연두색 아이스크림 메로나가 맞다. 최대한 많을수록 좋고, 박스면 더 좋고, 전국에 흩어진 메로나를 모은 거면 더 좋으니 내일 체크아웃 전까지 꼭 구해달라는 요청이었다. 여행하다 우연히 맛본 메로나가 아주 맛있었던 모양이다. 어차피 녹는 메로나를 왜 사서 가냐고 묻지 말자. 게스트에겐 전세기가 있기에 아무 문제가 없다.


주변 마트는 이미 다 닫은 시간이었고 24시간 영업하는 편의점에서도 메로나는 찾기 힘들었다. 그러고 보니 언제부턴가 편의점에서 메로나는 잘 안 판다. 결국 야간에 근무하던 프런트 직원들이 자차를 몰고 연중무휴 24시간 영업하는 양재 하나로마트를 시작으로 24시간 하는 마트와 편의점에 들러 서울에 있는 메로나를 전부 끌어모았다 봐도 될 것이다. 추운 날씨였는데도 불구하고 그 많은 메로나들이 행여 녹을까 모든 창문을 내리고 호텔까지 새벽의 질주를 했다는 메로나 레이스. 그리고 게스트는 무사히 메로나를 전세기에 잔뜩 싣고 떠나며 메로나 레이스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었다는 재밌는 이야기!

이전 08화 극과 극의 식성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