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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그조띠끄 김서윤 Oct 20. 2023

얻은 것과 잃은 것의 인색한 무게를 재며 봄볕을 걸었다

공사 재개와 행복 그리고 갑작스러운 불행감



"어쩌면 나란 사람을 고쳐 나가듯 

어떤 오래된 공간을 리모델링하고 싶었는지도 모르죠."



집을 리모델링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나도 함께 리모델링되길 바란 줄 알았었는데,


정작 나를 리모델링하고 싶어

그토록 고집스레 구옥만을 찾아다닌 거였다. 











꽃비가 내렸다고 한다. 난분분 난분분 벚꽃 흩날리는 봄이 다시 왔다고 워커힐로가 들썩인다. 


그래, 춘정(春情)이라고 했다. '꽃피어 봄 마음 이리 설레니. 아, 이 젊음을 어찌할거나.' 젊은 나이에 환속을 했던 신라의 여승 설요의 이 시구처럼, 봄의 이 어쩌지 못하겠는 도도록한 마음, 이미 깊이 품어 버린 대책 없는 연모의 마음, 그건 봄이었다. 찬란한 봄. 그 찬란함이 지나쳐 성스러움이 된다. 




성스러운 봄... 이 다시 왔다.


  

역시나 봄이 되니 뭔가 분주하고 소란스럽다. 지난겨울 이 골목 안에는 간간이 지나가는 거친 차소리와 가끔씩 벨을 눌러주는 택배와 배달만이 존재했었는데 지금은 온갖 소리가 안과 밖의 경계를 허문다. 나도 뒤처질세라 그 소란에 일조를 한다. 끝끝내 하고 싶지 않았던 지붕공사를 하기로 아니, 해야만 했으니까. 우리 집이 이 골목에서 또다시 제일 시끄러운 발원지가 된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걱정, 이젠 방수에서 지붕으로.

 


마음을 단단히 먹자. 

누수에 대한 신경쇠약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한껏 용기를 내.... 자!.... 했건만..., 리모델링이라고 신축 지붕 공사비용보다 80프로 가까이나 비쌌다. 언제나 리모델링은 많은 부분에서 신축보다 까다롭고 비쌌다. 차라리 헐고 새로 짓는 게 낫다는 말은 괜한 말이 아니다. 사실 지붕은 돈도 돈이지만 스패니쉬 기와를 닮은 색감이 은근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모든 과거의 흔적을 없애버린다 해도 이 빛바랜 기와지붕 하나만은 남겨두고 싶었었다.




지붕 리모델링 공사를 위해 또다시 대출을 받는다.     


겨울 동안 잠시 쉬고 나면 괜찮을 줄 알았는데 공사 소음을 다시 견딘다는 게 결코 쉽지는 않다. 집 전체가 쉴 새 없이 진동하며 희뿌연 먼지로 뒤덮였다. 실내마저도 이게 먼지인지 내 시력이 나빠진 건지 시야조차 흔들려 모든 사물이 희미하게 연무 속을 걷는 것만 같았다. 무려 20여 일이 넘게! 안 되겠다. 뛰쳐나가자.




우리 팡팡이 이제 아차산에 있구나.


걸어도 걸어도 마음이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날도 있는 법이다. 이런 날은 어떻게 마음을 달래야 하나. 이 기분을 떨칠 수 있을 때까지 걸어야 하나. 5월, 팡팡이의 마지막 흔적을 아차산 자락에 뿌려주던 날 기분이 한없이 가라앉았다. 허전함 때문이었을까. 미처 다 뿌려주지 못한 팡팡이의 재를 안고 이사를 했었다. 보내야 해서 보내 놓고 그것조차도 떠남이, 혼자 남겨진 듯한 이 느낌이 싫었던 걸까. 텅 빈 마음을 부여잡고 겨우 도착한 집 앞 광경은 급기야 내 이성마저 텅 비게 만들고 만다. 여름 만발을 위해 고이고이 키워온 수국은 죄다 뽑혀 있고 마당의 벽돌도 아무렇게나 여기저기로 흩어져 있다. 동네 치매 어르신이었다. 



"화기에 심어져 있는데 잡초인 줄 알았다구요??" 


나는 어느새 눈물을 그렁이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왠지 내가 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만든 환상이 하나 둘 깨어지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이제껏 멱살 잡고 끌고 온 나의 사기 그리고 스스로에게 강박처럼 걸어온 유리 최면이 차례로 부서지고 있었다. 



눈에 좋다며 샛노란 메리골드 화분을 선물해 주신 옆집 할머니, 갑자기 쏟아진 비를 잠시 피하고 있던 내게 우산을 건네준 동네 카페 사장님, 갈 때마다 종종 면류와 과자를 챙겨 주시는 편의점 사장님, 처음 보는 내게 외상을 주는 생선 가게 사장님, 남의 집 앞까지 쌓인 눈을 치워주시는 할아버지까지 풍요로운 측면도 많았지만 가끔 나를 참혹하게 만드는 동네 사람들 때문에 힘들었다. 며칠 뒤 치매 어르신이 휘젓고 간 집 앞에는 한 술주정뱅이가 바짓가랑이사이로 흘리고 간 배변 때문에 온 동네 똥파리들이 집결하며 결국 내게 경찰 조사서를 다시 한번 쓰게 만들기도 했다. 또 다른 동네 치매 어르신은 이에 질세라 집 앞 전봇대에 강아지마냥 소변을 보는 장면을 아무렇지도 않게 연출해 댔다.  


어디에나 트러블메이커는 존재한다는 진리를 알고는 있지만, 좋아하는 걸 해주는 것보다 싫어하는 일을 하지 않는 게 사랑이라는 진실 또한 나는 알고 있다. 여전히 이 골목에서 이방인이 된 느낌이었다. 이방인이라는 단어 자체에서 풍기는 외롭고 낯선 느낌은 쉽게 지워지지가 않았다. 작년 가방을 분실하던 순간부터 CCTV 영상에 찍혀버린 모든 봉변들이 뇌리에서 끊임없이 반복재생했다. 인간이, 이 골목이, 이 동네가 그리고 무엇보다 삶의 시즌2니 뭐니 요란스레 설쳐 대던 내가 또다시 견딜 수 없을 정도로 혐오스러워졌다.





나의 역치는 언제쯤 높아질까.


모든 공사를 마치고 평온하다 느끼던 것도 잠시, 처참한 덧없음이 몰려왔다. 뭐가 달라졌지? 집만 완성되면 당연히 사라질 줄 알았던 그간의 쌓이고 쌓인 분한한 감정이 터져버린 걸까. 이 집이 리모델링되는 사이 내 삶은 전혀 리모델링되지 않았다는 헛헛함. 나란 사람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았다. 많은 것이 변했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대부분은 그대로였다. 모든 게 씁쓸한 허상 같았다. 



결국, 자발적으로 만든 이 모든 상황에 냉소적인 내 마음이 어지러운 광기를 드러내고야 만다. 아등바등해 봤자 크게 달라지는 건 없더군. 이 집을 위해 나를 섣불리 재물로 바친 건 아닐까 싶은 의심을 품고, 한동안 의욕도 식욕도 모두 잃어버린 채 해질 무렵의 아차산과 한강을 눈물을 흘리며 걸었다. 미친 것 같았다. 긴 여행을 떠나야 하나 정신과를 가야 하나 고민하다 일단 정신과를 먼저 가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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