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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그조띠끄 김서윤 Oct 22. 2023

"바로크와 낭만주의" 그 어딘가쯤 애매하게 걸쳐진,

열정과 무관심, 달콤함과 환멸, 품위와 경박



"달아 달아,

내딛고 선 자리 위의 달아,

내 소원 좀 들어주렴."



그렇게 봄날 하루하루들의 산책은 길게 이어졌다.

그리고 산책길에서 길어 올린 문장들로 글을 써나가기 시작했다. 









많은 이들이 서울을 떠나 자연에 귀의한 평화로운 삶을 꿈꾸며 완전한 이주든 오도이촌이든 시골로 향한다. 서울에서의 치열한 삶에 지쳐. 하지만 나는 전혀 서울에 지치지 않았다. 오히려 더 편안함을 느낀다. 그래서 남들이 시골로 떠나 검박한 집을 지을 때 나는 어떻게 해서든 이 서울에 두 발을 딛고 더 단단히 서겠다며 많은 부분을 타협했다. 이웃이든 자연이든 더불어 살기 위해 단독을 택한 것은 아니었다. 이 아차산 자락도 자연과 가까이고 싶어서가 아닌 내 가용예산이 허락한 그나마 여건이 괜찮은 곳이었기 때문이다. 아침마다 길고양이 똥을 치우며 내 사유지에 함부로 침입하는 어이없는 당당함에 질색팔색하며 신경전을 벌이기 일쑤였다. 단독에 산다는 것이 게다가 이처럼 서울 변두리의 오래된 단독주택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품고 있는 전제조건을 나는 알지 못했다. 


자연친화적이지 못한 성향의 내가 지금 무슨 코스프레를 하고 있는 거지? 내 나이브한 허영과 허세가 여과 없이 드러나는 건가? 나도 물론 계절의 바뀜에 경탄하고 화사한 꽃향에 괜스레 달뜨다가도 목련처럼 영욕으로 지는 꽃을 보면 나 자신 같아 쓸쓸해하기도 한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남들이 예찬하듯 자연이 나를 더 위로해 주거나 생의 에너지를 충전해 준다거나 하는 것들은 귀뚱으로도 주워 담지 않았었다. 하지만 그랬던 내게도 자연은 역시 자연이었다.




음.... 풀 냄새. 

걷다 보면 이렇게 풀 내음이 훅 치고 들어올 때가 있다. 한 발자국을 더 내딛는 순간 싱그러운 초록 공기로 대기가 전복되는 놀라운 지점이 있다. 그리고 가끔, 저녁 예불을 알리는 타종 소리가 온 아차산 자락에 울려 퍼지기도 한다. 뒤를 이어서는 목탁소리가 탁! 탁! 공(空)하게 들리고 곧 향내음이 아주 가까이까지 흘러들기 시작한다. 내려놓기 내려놓기 내려놓기.

(이 소리들이 매일 들리지 않는 이유는 무얼까? ① 내가 다른 일에 집중하고 있어서 못 들을 뿐이다. ② 아주 지척에서 나는 소리가 아닌 이상 매일의 대기 조건에 따라 소리의 전달은 달라진다. ③ 스님들이 매일 저녁 예불을 드리는 것은 아니다. 이런! 보자 보자 하니 불경스럽기 짝이 없구먼.)   




내가 여기서 얻으려고 하는 것에 비하면 

내가 잃는 것은 한없이 작은 것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어느 날 드디어 내 마음이 경계를 넘는다. 얻은 것과 잃은 것의 인색한 무게를 재는 일, 찬연한 봄빛과는 어울리지 않는 내 그 행동을 이제는 그만하고 싶어졌다. 눈물도 더 이상 흘리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따끔히 다독인다. 한 달 동안 지속된 이 찌질한 행위도 지치거나 혹은 지겨워질 정도로 시간이 흘러서인지 아니면 정신과에서 처방받은 약 때문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분명히 하고 싶지 않아 졌다. 적어도 이런 1차원적인 눈물에의 호소는 근본적으로 큰 위안이 되지 못한다는 걸 깨닫기라고 한 것처럼.







공사를 한다고, 내면에 집중할 시기라고, 내내 폐쇄적이었던 우리 집 폴딩 도어를 열었다. 햇볕이 스치듯 바람도 자유자재로 흘러들어 집 안 곳곳으로 퍼져나간다. 사소하게도 분명하게도 자연의 흔적이 지나간다. 아주 잠깐 허락된 시간, 그 시간을 붙들어 매고 누군가에게 자꾸만 알려주고 싶다. 여기 햇살 좀 보세요!



집 밖에서 열린 거실을 바라보려니 마치 바로크식 휘장이 쳐진 무대 같다. 그렇다. 분명 이 집은 바로크적인 특징을 지녔다. 강렬한 빛과 극적인 동세, 지나치게 꾸민듯한 묘사와 장식성의 17세 바로크. 바로크 미술의 과장된 연출의 반동에서 낭만주의가 시작되었고 그 계보가 내가 오마주 하는 상징주의와 초현실주의로 이어졌다. 바로크의 연극적인 형식과 상징주의의 낭만적 내용이 뒤섞인 채 인위적이면서도 자유분방하고, 비관습적이면서도 정돈된 듯 보이는 이 거실의 허구적인 미장센이 마음에 든다. 






환한 대낮에 무대 단만큼의 높이를 지닌 1층 거실에 앉아 있자니 애써 세운 담벼락이 무색하게도 지나가는 이웃분들과 자꾸만 눈이 마주친다. 에라 모르겠다. "안녕하세요!" 애써 높인 하이톤으로 밝게 인사를 건넨다. 



"오늘 날씨가 좋죠. 어디 다녀오시나 봐요?" 


"친구들이랑 산에 다녀오는 길이에요. 야휴 벌써 낮에는 덥네.

"이쁘게 잘 꾸며놨네. 아파트보다 훨씬 낫구만."



집 안으로 들인 골목길 풍경, 골목길 너비만큼 넓어진 우리 집. 폴딩도어를 활짝 열어놓은 이 거실은 집 안팎의 풍경을 자연스럽게 연결해 주며 남들 눈엔 분명히 기이할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역시 바로크적이야!


내 몸에서도 햇볕 냄새가 난다면 어떨까? 그 햇볕 냄새를 담은 향수가 있나? '아쿠아디파르마의 피코 디 아말피'처럼 태양의 뉘앙스를 지중해 바다의 청량감과 함께 담아낸 향수가 그렇다라고 평가받을 수 있겠지. 하지만 내가 원하는 건 그런 은유가 아닌 좀 더 물질적이고 직접적인 것이다. 하지만 정작 이렇게 궁금해하는 나는 햇살 냄새가 어떤 건지 구술하지 못한다. 그런데 정말 햇볕 냄새는 어떤 향일까.



어느덧 계절이 여름으로 넘어가듯, 내 삶의 한 계절도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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