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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그조띠끄 김서윤 Oct 22. 2023

집도 삶도 여! 전! 히! 리모델링하고 있습니다

하나의 완성과 다시 허무는 모순 사이



"다시 한번 시작이지 않을까.

무릇 시작에는 신비한 힘이 깃들여 있으니까"



끝인 동시에 시작을 알리는 야누스의 문 앞에 그렇게 다시 섰다. 











중증의 불안장애와 그보다는 경미한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첫 진료 때는 허락된 20분 내내 꺼이꺼이 서럽게 울음만 토해냈다. 창피하지도 않았다. 친구들조차 제대로 들어주려 않는 내 어찌할 줄 모르겠는 슬픔을 누군가 성의껏 들어주고 있다는 게 고마울 뿐이었다. 2만 원의 위력은 대단히 만족스러웠다.



갑작스러운 봄날의 방황. 


가장 행복할 거라 기대했던 공사의 끝자락에 기본적인 양심도 예의도 없이 찾아든 기습폭격 같았던 우울증 그리고 그 우울증을 유발시킨 불안감. 처음엔 그 불안을 내 태생적인 나약한 멘탈탓으로만 돌렸다. 하지만 간절히 이루고 싶은 게 있는 사람은 불안하기 마련이라는 사실은 간과하고 있었다. 간절하면 누구나 예민해지고 불안해진다. 나만 유독 이상한 건 아니라는 기분 좋은 위로였다. (물론 유리멘탈에 가까운 건 인정한다.)   

     


내 삶이 촘촘히 채워진 줄 알았는데 여전히 피곤하고 고달팠다. 나의 새 집이 완성되었다고 해서 뭐 대단한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내 팔자가 원래 이렇지 뭐...' 자조 섞인 한탄 속에 그 사이 부쩍 늙어버린 내 모습만 보였다. 과거 행복했던 사진을 들춰내며 결코 불행하진 않은 내 현재를 저울에 달았다. 내가 뭔가를 이뤘다고 한들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도 맑게 반짝이던 과거의 나보다 더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무렇게 나이만 먹어 가는 게 겁이 나서 결연하게 시작한 내 삶의 리모델링, 기대보다 초라함에 황망해했다. 

당장 펑! 하고 터질 만큼 부풀었던 기대감은 아주 여리여리한 자극에 '피식~'하고 시시하게 바람이 빠져 아무것도 아닌 게 돼버렸다. 늙는다는 건 참 공평하고 객관적인데 그 늙음을 겪는 과정은 너무도 주관적이라서 모두 다 나이 든다는 무성의한 말로는 위로가 되지 않았다. 이것 말고 덧붙일 진실이란 게 더 있을까도 싶지만. 


나를 막 지나간 봄날은 그랬었다.




이제와 돌아보면 지난 봄날의 대책 없던 극단의 감정은 이 모든 여정의 마지막 절정의 고비였다. 발단· 전개· 위기를 거쳐 마침내 도달한 우뚝 솟은 절정의 그래프. '이번이 마지막일 거야. 조금만 더 견디면 돼' 라며 다독여온 그 많던 클라이맥스의 순간들은 그저 자잘한 위기들에 지나지 않는 거였다. 결말을 향한 극의 흐름이 언제나 그렇듯 격정의 갈등은 해결됐고, 드디어 내 삶 시즌 1의 대단원을 맞이했다. 


물론 거저 얻은 결말은 아니다. 싫지만, 내가 서툴렀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고 몇 달 동안 매일 밤 정신과 약도 빠짐없이 복용했다. 자기 연민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나를 그대로 수용할 수 있게끔 마음을 천천히 관조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도 필요했다. 




산책, 기도, 독서, 미술관, 글쓰기, 멍 때리기, 어쩌다 명상

산책, 기도, 독서, 미술관, 글쓰기, 멍 때리기, 어쩌다 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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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기간 동안 산책, 기도, 독서, 미술관, 글쓰기, 멍 때리기, 어쩌다 명상이 반복적으로 이어졌다. 



거기에 혼자 편의점 와인 마시기까지 (이건 좀 별로지만 그래도 당시 내겐 건강보조제 같은 거였다), 무척이나 얌전한 태도로 봄날이 갔다. 그러다 문득! 어느덧 웃으며 살아가고 있는 나를 보았다. 분명하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내게 필요했던 것만큼 정확히 시간이 흘렀다는 것을. 모든 걸 삼켜버린다는 크로노스가 결국 내 우울마저 삼켜버렸다는 것을. 




그제서야 하나를 이루려면 지극한 정성과 헌신적인 노력이 필요한 법이라는 진리를 알아차린다. 분명하다. 나는 헌신까지는 않으려 했다. 귀중한 것을 가지고 싶어 하면서 '왜 이렇게 내 삶은 항상 견뎌내야 하는 걸까?' 라며 언제나 불평이 앞섰다. 큰 행운과 천재성을 타고나지 않은 나 같은 평범한 사람에게 있어 이 정도의 장렬한 노력쯤은 해주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결코 원하는 것을 손에 넣을 수 없다는 걸 마지막에 와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나만 빼고 다른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었을 평범한 사실에 깨달음을 운운하며 어둠을 한껏 걷어올렸다. 동그란 광배처럼 7월의 빛이 눈부시게 쏟아져 내린다.     




"1979년식 작고 오래된 단독주택을 리모델링합니다."

내 오랜 삶도 리모델링하는 리추얼한 의식



이 집이 하나의 설치 미술 작품처럼 리모델링되길 원한 것처럼, 내 삶 또한 예술적으로 리모델링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감히 꿈꿨다. 하지만 자꾸만 손볼 곳이 생겨나는 이 오래된 단독주택의 리모델링 공사처럼 삶이라는 건 결코 한 번에 전복되진 않는다. 한 단계 한 단계 낯선 이국의 땅을 호기심으로 여행하듯 평생을 두고 스스로를 알아가며 원하는 모습으로 리모델링해 나가면 되는 것이다. 그저 내 삶의 새로운 방향성을 찾았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값지고 더없이 아름답다. 




미련도 없고 후회도 없다. 지난 시간에 대한 일말의 미련도 후회도 없을 때 비로소 과거는 과거로서 평온하게 남겨질 수 있다. 그러고 보니 내가 나를 희생해서라도 뭔가를 더하려는 과잉된 욕심을 끊고 '자! 여기까지 하자'라고 쿨하게 돌아설 수 있는 수준은 되지 않았을까 싶다. 요 정도면 나의 이 집처럼 환골탈태까지는 아니더라도, 내 삶도 조금은 리모델링된 셈인가? 



희극과 비극이 공존하던 야누스 같은 시절이었다. 그 시절은 이제 막 내 삶을 지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도달한 지점에서 또 다른 출발을 하려 한다. 그토록 원하고 궁금해하는 예술적 삶의 다음 단계를 위해 나를 다시 시험하고 싶어 졌기 때문이다. 이렇게 끝인 동시에 시작을 알리는 야누스의 새로운 문 앞에 다시 선다. 



자, 다시 한번 시작해 볼까? 

무릇 시작에는 신비한 힘이 깃들여 있으니까.


집도 삶도 여! 전! 히! 리모델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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