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같은 마누라
준다고 했던 동남아 여행 숙소비를 대놓고 지원받은 것은 아니지만, 남편이 퇴사 전 약속받았던 한 달에 한 번의 월급은 입금이 되기 시작했다. 남편이 그전에 벌던 금액의 절반도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안심이 되었다. 그래, 남편 마음이 편하면 되었지.
수익은 줄었으나 씀씀이는 줄지 않았다. 마음 한편에 불안감이 있었지만, 그래도 곧 잘될 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기에, 또 다음 여름의 동남아 여행을 계획했고 나는 또 골프연습에 매진했다. 계획대로 여름에는 또 한 번의 동남아 해외여행을 다녀왔으며, 한국이라면 더워서 실내에서만 있을 날씨에 얼음팩을 두르고 나가 골프를 쳤다.
땀이 나도 즐거웠다. 그전 여행보다는 실력도 조금 늘었고, 더움에도 불구하고 18홀을 끝까지 돌았다. 인스타에도 물론 골프스타그램을 올렸으며 나는 만족했다.
그리고 다가온 어느 가을날 아침,
출근을 하려는데 남편이 말했다.
심장이 쿵 내려앉는 것 같았다.
바쁜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회사 일이 잘 안 돌아가고 있는 것이냐고, 그럼 어떻게 할 셈이냐고 따져 묻고 싶은 마음이 목까지 차올랐지만, 참았다.
이 사람은 무슨 마음으로 이 말을 나에게 전했을까.
어려운 문제들을 나에게 말하지 못해 끙끙 앓고 혼자 해결하려다 빚을 더 키운다거나 하는 일을 저지르는 건 아닐까. 여러 가지 걱정들이 동시에 떠올랐다.
"여보, 나는 언제나 당신 편이니까, 무슨 걱정이나 문제가 있으면 뭐든지 나랑 같이 상의해."
나는 아주 마음 넓은 쿨한 여편네의 멘트를 날리고는 직장으로 출근했다.
남편이 퇴사를 하기 전에도 나는 수백 번 고민했다. 친정 엄마는 퇴사를 생각하는 남편에게 그러면 이혼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으라고 했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었다.
내가 정말 이 사람이랑 이혼할 생각이 있는가. 이혼을 하고 홀로 아이를 키우는 싱글맘이 나을까,
이혼을 하지 않고 어려운 가정 형편일지 잘 되었을지는 모르겠지만 남편이 있는 게 나을까.
나는 남편이 있는 삶을 택했다. 아이에게 아빠가 있고, 가정형편이 어려울지라도 육아에 살림에 조금이라도 지원군이 있는 쪽을 택했다. (혹시 살림이 오히려 핀다면 더 좋겠고)
그리고 이왕 지원군이 있다면 확실하게 지지해서 가족 구성원의 유대의 끈을 단단히 만드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나는 남편의 편이 되어주기로 했다.
혹여나 이혼을 하자고 으름장을 놓아서 남편이 퇴사를 포기하고 원래의 직장에 다닌다면, 남편은 파김치처럼 생동감 없이 저녁시간을 보내고 부부 사이의 연대도 끊어질 것 같았다.
나는 그게 두려웠다.
안정적인 수입이 들어오는 것보다 남편과의 연대가 끊어지는 것, 남편과 원수지간이 되는 상태로 아이를 키우며 살아가는 것이 두려웠다.
나는 그래서 이혼이라는 말을 함부로 꺼내지 않기로 하고, 주변에서 칭하는 '바보처럼 착한 마누라'가 되어 남편의 퇴사를 응원하고, 언제까지나 남편의 편이 되기로 하였다. 여우 같은 마누라처럼 남편이 내 말을 고분고분 듣고, 나를 위하여 본인을 희생하기를 즐기는 그런 남편을 두지 못해 나 자신이 한심하지만 어쩔 수가 없다. 그러고 싶어 그런 게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착한 마누라'가 된 나 자신이 참 못났지만 어쩌겠나, 이게 나인 것을.
저녁에 남편이 돌아오기 전에, 아이를 재우고 나는 컴퓨터를 켜고 엑셀파일을 작성했다. 예전에 작성해 둔 우리 가계의 고정 수입, 수출을 기록했던 내용을 수정했다. 줄어든 수입으로.
그리고 뭔가 불안하게 짚이는 것이 있었다.
우리 집을 담보로 대출받았던 것, 이자 금액이 꽤 큰데 그동안은 회사에서 투자에 대한 이자를 주던 것으로 처리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돈이 잘 들어오고 있을까...?
퇴근한 남편에게 물어보자, 요새 그 돈이 안 들어온 지 좀 됐다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또 엑셀파일을 수정했다. 더욱 줄어든 수입으로.
내가 두배로 벌어야 적자를 메꿀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