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이는 사이 몰디브로 갈 시간은 빠르게 다가왔고(일단 항공권은 사두었다. 남편의 마일리지를 긁어모아서) 평소의 설레는 여행과 다르게 망설임이 크다 보니 짐도 싸지지 않았다. 하지만 역시 몰디브는 몰디브여서 그 유혹을 뿌리칠 수 없었고, 결국 나는 아이와 남편과 함께 공항으로 나서고 있었다.
남편과 나의 사이는 계속 삐걱거리고 있어서, 공항에서도 별일 아닌 것으로 투닥거리게 되었다. 이 여행이 과연 즐거울까.
비행기에 탑승하고 기내식이 나오자 쩝쩝 박사 남편의 기분이 확 좋아졌다. 나도 기분이 덩달아 좋아졌다.
그리고 몰디브에 도착했다. 사람들이 몰디브, 몰디브 하는 데는 이유가 있구나. 나는 역시나 몰디브의 분위기에 휩싸이고 말았다. 남편의 동업자는 내가 이 일에 대해 걱정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몰디브에서의 즐거운 며칠이 흘러간 후 어느 날 식사 자리에서 '남편이 이 회사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으며, 일을 정말 잘해서 꼭 필요한 존재다'라는 사실을 나에게 얘기했다. 그리고 회사의 재정 상태에 대해서도 나름의 안심이 되는 설명을 해 주었다.
나는 마음이 편해졌다. 우리 가족끼리는 가성비 생각하면 아마 일평생 올 일 없을 것 같은 몰디브에 와서, 굳이 이렇게까지 안 먹어도 될 고급 식사도 하고 나니, 나는 이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이미 일어나지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하지 말자.'
나는 몰디브에서의 사진들을 자랑스레 인스타에 업로드했다. 사람들의 부러워하는 댓글을 보며 내 팔로워들이 어떤 생각을 할지 유추해 봤다. 남편이 육아휴직하고 다른 일에 도전하고 있다는 걸 몇몇 친구들이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 집 대박 났나?'
라고 아마 생각하지 않았을까?
소박하기 짝이 없는 내 인스타가 갑자기 화려해진 느낌이었다. 인스타는 소비를 해야 '있어 보이는' 피드나 스토리가 가능한 공간이었다. 돈을 써서 맛집엘 가든지, 멋진 새 옷을 사 입던지, 새로운 장소로 여행을 가든지. 나 같은 자린고비가 주말마다 아이랑 똑같은 공원에 가서 노는 걸로는 멋진 피드가 완성되지 않았는데, 그래서 이번엔 호캉스라도 갈까? 하고 업로드를 위한 여행을 계획해 보던 나 자신이었는데, 몰디브 여행이라니.. 화려한 피드에 팔로워들은 유독 많은 댓글을 달며 환호했다.
남편은 그 길로 퇴사를 했고, 아직 수익이 실현된 것도 아닌데 이미 우리는 부자가 되었다는 이상한 헛바람이 가득 찼다. 그래서 외벌이가 되었으니 씀씀이를 일단 줄여보겠다 계획은 세웠지만, 쉽게 실행되지 않았다.
주말에 만난 동업자 부부는 다음 겨울에 아이들을 데리고 또 해외에 가자는 제안을 했다. 아이들 국제학교 체험도 시키자며. 숙소비는 회사에서 지원하겠다고 했다.
에라, 쎄빠지게 돈 벌어 모하나. 남편의 수익은 없지만 그 사이 열심히 돈 벌어 올 나를 위한 보상으로 나는 겨울 여행 항공권을 당장 결제했다. 그리고 그곳은 골프가 싸다고 하니 이김에 가서 골프라도 치자며(같이 가는 부부도 골프를 치기에) 나는 골프 연습장까지 등록해 버렸다.
나의 머릿속은 희한하게도 해외 여행지에서 골프를 치는 내 모습을 인스타에 올리는 상상을 이미 하고 있었다. 해시태그를 뭘 달지 까지 상상하며 나는 벌써 뿌듯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몇 달 뒤, 겨울에 떠난 해외여행지에서 나는 나의 상상을 실현시키고야 말았다. 인스타에 올라간 나의 골프스타그램에 팔로워들은 환호해 주었고, 나는 내가 골프스타그램을 올렸다는 사실에 심취하여 만족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