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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다윗 Mar 07. 2024

죽기 전 아들을 축복하다

이삭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쌍둥이로 태어난 에스와 야곱이 그들입니다.


아버지 이삭은 자신이 죽을 날이 가까이 옴을 알고 세상을 떠나기 전에 장남인 에서를 축복하고자 그를 불렀습니다.


"네 기구 곧 화살통과 활을 가지고 들에 가서 나를 위하여 사냥하여 내가 즐기는 별미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와서 먹게 하여 내가 죽기 전에 내 마음껏 네게 축복하게 하라(창세기 27:3-4)."


이삭은 두 아들 가운데서 장남이자 자신의 가업을 물려받게 될 에서를 더 좋아했습니다.


성경은 아버지 이삭은 막내인 야곱보다 장남인 에서를 더 좋아하고 어머니 리브가는 막내인 야곱을 좋아했다고 말합니다.



에서는 사냥하기를 즐기는 벌판의 사내였습니다. 거부였던 이삭은 그의 재산과 수많은 종들을 이끌어 자신의 대를 이어 가문을 지켜가야 할  장남인 에서를 신뢰했습니다.


반면 야곱은 집에 머물기를 좋아하고 어머니를 도와 요리하기를 좋아하는 막내였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아버지의 바람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아버지인 이삭은 생을 마치기 전에 장남인 에서에게 복을 빌어주기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야곱이 축복을 받다


     에서를 축복하기로 한 남편의 계획을 아내 리브가는 알았습니다.

어머니는 에서가 아닌 야곱이 아버지의 축복을 받기를 원했습니다.


아버지의 원대로 사냥을 떠난 에서가 집을 비운 사이에 리브가는 남편을 속여 이삭의 축복의 손 아래로 그녀가 사랑하는 아들 야곱을 밀어 넣었습니다.


야곱은 아버지가 평생에 걸쳐 살아가며 쌓았던 축복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 축복이 장남인 형에게로 흘러 들어가는 것에 대해 잠자코 수긍할 수가 없었습니다.


야곱은 그 축복의 물줄기를 자신에게로 돌려야겠다고 오래전부터 마음먹고 있었습니다.


반면에서는 당연히 자기가 아버지의 축복을 받게 될 것을 의심치 않아 그 축복에 대해 안일했습니다.


그가 사냥터에서 아버지께 요리해 드릴 실한 짐승을 어깨에 메고 돌아왔을 때엔 이미 그 축복은 동생에게로 쏟아부어지고 난 뒤였고 그 축복을 안고 이미 야곱은 집을 떠난 후였습니다.


누가 장남이었던가.


     몇 년을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봐야 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그날도 에서는 멋진 레저활동으로 사냥을 마치고 귀가했을때 몹시 시장했습니다.


동생은 주방에서 따끈한 수프 요리를 끝내고 있었습니다.


배고픈 에서는 당연히 그 수프를 먹기를 원했지만 야곱은 형을 위해 그 맛난 수프를 거저 그릇에 담지 않았습니다.


대신 자신을 형으로 인정한다면 그 수프를 얼마든지 줄 용의가 있다고 말합니다.


야곱은 같은 날 쌍둥이로 태어났지만 동생이 된 자신의 운명을 바꿀 기회를 엿보고 있었습니다.


"에서가 이르되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오

야곱이 이르되 오늘 내게 맹세하라 에서가 맹세하고 장자의 명분을 야곱에게 판지라(창세기 25:32-33)."


에서는 단지 하루의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한 끼의 수프로 장자의 권리를 포기했습니다.


그것은 공정한 거래가 아니었지만 야곱은 장자의 권리를 주장할 빌미를 갖게 되었습니다.


축복은 길을 따라 흐른다


     에서는 단 한 번도 아버지의 축복의 서열에서 밀릴 것에 대해 의심한 적이 없었지만 결과는 달랐습니다.


더욱이 에서는 아버지에 대한 불만을 이방여인과 결혼함으로 부모에게 근심을 안겨드린 과거가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축복이 아닌 길로 걸어 들어간 것입니다.


축복은 누구나 받을 자격이 있지만 아무에게나 허락되는 것은 아닙니다.


몸을 가누기 힘든 연로한 아버지일지라도 그가 자식에게 복을 빌면 그것은 현실이 되는 것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아버지의 축복을 받지 못한 에서는 왜 자신이 그 복을 받지 못했는지 그 이유조차도 알지 못한 채 화를 불같이 내었습니다.


아버지를 졸라서 찌꺼기 복이라도 빌어 달라고 했지만 그가 억지로 받아낸 떨리는 아버지의 손으로부터 받은 축복은 말 그대로 부스러기 복에 불과했습니다.


복을 좋은 것으로 여기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그것을 귀히 여기고 시간을 들여 그릇을 준비해야 합니다.


아버지의 손은 언제나 자녀를 위해 복을 빌 준비가 되어있고 그가 빌은 복은 현실이 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 복의 경로를 경시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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