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잔디밭에는 잔디만 있지 않다. 이름 모를 잡초들이 심심찮게 보이더니 얼마 전부터 버섯이 보이기 시작했다. 길쭉길쭉 잔디 사이에서 동글동글 앙증맞은 모습을 뽐내고 있었다. 집 뒤에 있는 표고버섯 농장에서 버섯 포자가 날아왔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버섯 3 대장 중의 하나인 표고인가?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도 우리 집 마당에서 싹을 틔우고 자라고 있다. 지금처럼 그냥 놔두면 알아서 쑥쑥 클 것이다. 만약에 표고버섯이 맞으면 어느 정도 컸을 때 냠냠 먹어 주리라.
잔디밭과 버섯은 생각지도 못했던 조합이다. 애초에 버섯은 왜 우리 집 마당에 자리를 잡았을까. 자신의 의지가 조금은 있었을까. 바람에 실려 바람이 부는 대로 날아다니다 어쩌다 우리 집에 떨어져 싹을 틔웠겠지. 그야말로 불시착이다. 뽑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보이는 대로 뽑아 버리는 잡초와 달리 쉽게 손이 나가지 않았다. 쪼그리고 앉아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어쩌다 문경에 살고 있는 나를 보는 것 같았다. 나는 왜 여기에 살고 있을까.
이사하기 전에 남편과 많은 대화를 나누었고 함께 발품을 많이 팔았고 오랜 시간 고민을 하고 내린 결정이다. 나는 꽤 잘 지내고 있다. 텃밭에서 바로 따온 토마토와 채소로 차린 아침 밥상은 신선하고 맛있다. 멀리 나가지 않아도 집에서 고개만 들면 보이는 푸른 산 덕분에 눈과 마음이 시원하고 넉넉해진다. 햇빛냄새를 풍기는 잘 마른빨래를 개키면 기분이 좋다. 확실히 도시에 살 때보다 몸과 마음이 편안해지고 건강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가끔씩 내가 불시착한 기분이 든다. 푸른 잔디밭에 어울리지 않는 갈색 버섯처럼 말이다.
시골에서 겨울을 지나 봄과 여름을 겪으며 자연에 조금씩 눈뜨고 있다. 자연은 지금껏 내가 알던 것보다 훨씬 더 위대하고 아름답고 놀랍고 황홀하고 경이롭고 가슴을 벅차게 한다. 손으로 잡기 힘들 정도로 조그만 씨앗을 뿌렸을 뿐인데 싹이 트고 꽃이 피고 지고 맺은 열매는 감동 그 자체이다. 오늘처럼 잔디밭에 있는 버섯을 보면 신기해서 눈길이 간다. 그런데 다음을 모르겠다.
지난주 어느 날, 저녁 식사 준비를 하다 문득 하늘을 보았다. 부슬부슬 내리던 비 대신에 쌍무지개가 하늘에 걸려있었다. 예쁘고 예뻤다. 혼자만 보기에 아깝다. 사진을 찍어 SNS에 올렸다. 금세 친구의 댓글이 달렸다. “저녁 준비 풍경이 쌍무지개라니, 부럽소” 나도 즉답을 했다. “자연을 얻고 대신 자유를 잃었소.”
극장에서 영화를 보려면 내가 보고 싶은 작품이 아니라 극장에서 상영하는 영화를 보아야 한다. 울적할 때 수다를 나누고 싶어 갑자기 불러 낼 수 있는 친구가 지척에 아무도 없다. 도서관과 책방은 집에서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에 살고 싶었는데 우리 집에서 가장 가까운 도서관까지 도보로 2시간이다. 버스를 이용해도 비슷하게 걸린다. 배차간격이 길어서 버스를 이용하나 걸어가나 그게 그거다. 아주 가끔은 혼자 내키는 대로 아무 데나 가고 싶다. 답답하다.
며칠 동안 지켜보니 표고버섯은 아닌 것 같다. 요리 보고 조리 보아도 표고의 모양새는 아니다. 버섯의 이름이 궁금해서 이미지 검색을 했다. 잔디밭이나 풀밭에 무리 지어 자라는 ‘선녀낙엽버섯’이다. 북한에서 부르는 이름은 ‘잔디락엽버섯’으로 이름에 아예 ‘잔디’가 들어있다. 얼마나 잔디에서 잘 자라면 이름이 그럴까. 나처럼 우리 집에 불시착한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보다.
남편에게 내가 느끼는 답답함을 얘기했더니 자동차가 필요하냐고 물었다. 내 소유의 자동차가 없어서 생기는 감정은 아니다. 차가 있어도 여전히 비슷한 감정이 들 것 같다. 아직 내가 이곳에 적응을 못해서 그런가. 사는 동네는 바뀌었는데 예전처럼 살고 싶은 욕심을 버리지 못해서 그런가. 친구들이 우스개로 나를 문경댁으로 부른다. 어색하다. 언제쯤 익숙해질까? 잔디밭의 버섯을 보고 이런저런 생각이 드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