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오지 못한 말

목화꽃 한 송이

by 박경이

실비 내려 벚나무 그루마다 부피가 번지고 단풍꽃 무게를 더하더니

몸 흔들어 세상의 모든 색을 뚝뚝 떨구더니

가을벚꽃 그렇게 지더니

오늘은 함박눈 오신다


오후 4시쯤, 마침내 구름은 송이송이 펑펑 함박눈을 품어낸다. 얼른 나가 맞고 싶다. 강의실에 앉아 창으로 보는 눈송이가 저리도 포동하고 클까, 목화송이 같다. 그 놀랍던 목화꽃과의 첫만남이 언제 어디서였던가, 메마른 밭에 작은 포기들. 가늘되 빳빳하며 곧은 줄기 끝 동그라미 터지면서 일순 흘러나온 솜사탕이 여릿여릿 흔들릴 때 어린 눈에 그것은 식물의 몸으로 탄생된 비밀스런 광물, 살아있는 광석이었다. 저것을 내가 입고 덮는단 말이지? 아득히 알 수 없는 어떤 신비로움으로 그냥 화학이 되고 물리학이 되고 말아야 했다. 삼라만상 만물이 연결되지 않고서야 어찌 낙원이라 할까, 난 모르겠네. 움직이는 광물, 따뜻하고 부드러운 원석, 목화. 이후로 가끔 목화를 보거나 문득 떠오를 때마다 세상 열리는 기쁨을 되새김질하면서 공연히 서러웠다. 체온을 가진 식물, 목화는 그저 그리움이다. 아버지, 얼굴도 모르겠는 이인칭-너·당신, 혹은 멀리 그, 그사람, 그남자, 그 아저씨... 겨울바람 타고 목화송이가 한없이 풀린다.


5시 15분. 함박눈눈눈,은 무서워지기 시작한다. 강의 목소리는 멀어지고 집에 갈 걱정만 눈처럼 쌓인다. 눈송이처럼 뜨는 불안이 녹지는 않고 목화솜처럼 부푼다. 머릿속에 쌓인 눈은 이미 현실을 능가한다. 내 차는 눈앞에서 바로 미끄러지고 빙글 돈다. 어이없는 일이다, 정말 어쩌면 이럴 수 있을까... 피식 웃음이 나지 않는 것도 아니지만 심리적 현실은 벌써 나를 장악했다. 이른바 트라우마라는 것들의 불가항력적 권력이며 작동방식이다. 트라우마라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로 작은 경험일 수도 있는데 나는 아직 상당한 힘에 휘둘린다. 다른 이의 고통과 감정을 나란히 놓고 비교할 수 없지만, 남의 아픔을 가늠하고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종종 비교해 본다. 느껴 공감하고 치유로 나아가게 돕는 수단일 뿐, 주체의 심리적 현실은 절대적이다. 내게 별 것 아닌 것으로 ‘보이는’ 고통에 절망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래서 더 관심과 회복이 절실하다는 의미로 읽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집에서 한 시간쯤 걸리는 소도시로 2년간 운전하며 출퇴근하던 때의 일이다. 천안에 눈이 퍽 많이 왔던 어느 날 아침, 1교시가 빈 날이라 다행이라 생각하면서 결연히 기차를 탔다. 갈수록 눈이 적어진다 싶더니 역에 내리자 눈이랄 것도 없었으니 택시 타고 학교로 들어갈 때 얼마나 싱겁고 멀뚱한지. “여기도 눈 오나 전화라도 하시지 그랬어요?” 그러게 말이다. 함께 웃긴 했지만 커피는 떫었고 사 가지고 간 빵도 맛이 없었다. 눈에 대한 내 공포의 정체를 전혀 몰랐을 때다. 경부고속도로에서 다른 몇 개의 차들과 동시에 미끄러졌던 일. 몇 해 뒤 서해안고속도로 어느 굽어지는 모퉁이에서 눈얼음 위에 빙글 돌았던 일. 왜 그리 눈을 무서워하는지, 뻔히 겪은 일인데도 까맣게 잊고 있었더랬다.


강의는 끝났고 사람들은 거침없이 차를 몰고 속속 떠난다. 그런데 나는 시동만 걸어도 미끄러질 것 같다. 안 된다는 절대명령을 부여받은 듯 꼼짝달싹 할 수 없는 상태에서 많이 벗어났는데도. 이젠 정체랄 것도 없는 공포의 작동법을 알아가는 중이어서 두려움이 덜 하지만 아직 그 불안이 소산되기엔 멀었나 보다. 그것이 헛것임을 알기 때문에, 실체없는 망령으로부터 벗어나기만 하면 되는데, 움직이는 일만 남았는데. 그건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는 일, ‘하기만 하면 되는’ 일인데 그게 어렵다. 그래서 지금 한 번 더 두려움에 굴복해야겠다. 엄살을 부리면서 짐짓 두려운 체 하기로 결정한다. 남편한테 전화를 했다.


“여보, 이쪽에는 눈 엄청 쌓였어, 나 운전 못해.”

“괜찮아, 시내는 오는 대로 녹고 있어. 길에 차들 잘 다녀.”

“무서워, 못 가. 택시 타고 자기가 여기로 왔음 좋겠어.”

“괜찮아, 살살 우리 학교까지만 와 봐. 하던 일 정리하고 있을게.”

화가 날동말동하는데도 어째 금방 시동을 거는 나, 이상하다. 서운해서 화를 내야 하는데 내가 왜 이러지? 어라어라, 가 지네. 괜찮아, 괜찮네. 조심조심 얼떨떨 교문 도착.

“잘 왔네ㅡ 괜찮지?”

“안 괜찮아, 너무 무서웠어.” (별로 무섭지 않았어. 정말 괜찮았다구.)

“그래도 잘 왔네. 그렇게 해 보는 것도 괜찮아.” (에그~ 그놈의 ‘괜찮아’ 소리, 지겨워.)


괜찮아, 괜찮다. 그거야말로 내게 필요한 말이었는데 몰랐다. 들으면 화가 났다, 나는 조금도 괜찮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도대체 뭐가 괜찮단 말인가, 몹시 둔하고 무관심 같던 말이었다. 듣기 싫던 그 말이 진정 원했던 말, 가장 듣고 싶어한 말이었음을 아프게 알아갔다. 어릴 때 충분히 들었어야 했던 말임을 점점 잘 알게 되었다. 내게 필요했던 그 때 오지 못한 말. 특히 미드에서 과하다 싶게 자주 들을 때면 화가 났던 말. 도대체 어디 있었던 거야? 괜찮다, 너무 늦게 온 말! 늦어도 괜찮아.

괜찮아, 경이야. 괜찮다, 넌 걱정할 것 없어. 괜찮아, 다 잘 될 거야. 등을 토닥이는 엄마아버지아주머니아저씨, 누군가의 괜.찮.다,라는 말. 이미 왔어야 하고 충분히 왔어야 했던 말! 늦지 않았다, 무엇도 늦는 것은 없다. 내게 알맞은 때가 지금일 터다. 그렇지 않다면 나는 내가 아닐 테니. 이제 내가 누군가에게 나눠주어야 할 말이다.


집 앞길에 눈 치우는 남편, 밤새 더 쌓이면 내일 아침에 너무 힘들단다. 나도 이층의 눈을 한쪽으로 밀어놓고 내려왔다. 남편도 꽤 아랫길까지 밀었더니 땀난다면서 들어온다. 여보, 생강차 마셔. 아주 진하게 잘 우러났어. 발물을 한다, 뜨거운 물에 발을 담근다. 뿌리를 적신다. 발톱부터 휘리릭 풀려 오르더니 정수리에 목화꽃 한 송이 톡 벌었다. 아하, 이제 정말 괜찮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