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햇살나무 Mar 13. 2023

함께해도 외로운 가족 ;나는 왜 그럴까?

        프롤로그

비교적 크게 흔들림 없이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누군가와 오랜 시간 같이 하는 것보다는 혼자 하는 것이 더 편하고 좋았지만 그것은 개인적인 특성이라고 여기며 깊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왜 편안하지 않은지 알려고 하지 않고 나와 함께 하는 시간을 피하려고 했습니다. 늘 함께 하기에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내가 궁금해졌습니다. 특히 엄마와의 관계가 궁금했습니다. 엄마와는 잘하려고 해도 마음이 담기지 않을 때가 많았습니다. 별것도 아닌 일에 화가 나기도 합니다. 그래서 엄마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나를 이해하려 합니다. 나는 왜 그럴까? 나를 이해하고 어떻게 살아야 내가 행복할지 방법을 찾아보려 합니다.   


나는 왜 그럴까? : 함께해도 외로운 그 시간의 가족

엄마가 허리가 아파서 병원에 입원하셨다자식들에게 피해 주지 않는다고 혼자서 병원에 입원해  '나 병원이다.' 한마디 던져놓고 전화를 끊으셨다순간 가슴 한 구석에 꾹꾹 밀어 넣어 놓은 화가 '악 '이라는 소리와 함께 올라오지만 난 또 꾸역꾸역 삼키며 '갈게' 했. 걱정보다 화가 나를 흔들었다.     


순간 눈물이 났다왜일까?

미안함일까? 부담감일까? 버거움일까? 억울함일까? 걱정일까? 어떤 마음이 눈물로 대신 말을 하는 것일까?

 며칠 전에도 만났었는데 말 한마디 없다가 갑자기 '나 병원이다'.

엄마는 늘 그랬다. 내 생각을 말하면  늘' 시끄러워' 한마디였고 엄마 당신 마음대로 했다.

그거였구나. 미리 알려주거나 의논하지 않고 행동하는 것에 대한 불편한 마음이었구나. 존중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데서 오는 서운함이었구나.   

'그래 알겠어. 마음~ 존중받고 싶은 거. 그게 전부니?

아니~ 또 있어 내가 들어준다고 하니 마음이 주저리주저리 보따리를 푼다.

감기 몸살인지 아니면 고질병처럼 달고 사는 변비 때문인지는 몰라도 나도 지금 컨디션이 안 좋아 며칠째 밥도 못 먹고 끙끙 앓고 있잖아. 그런데 그 몸으로 엄마를 챙겨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었겠다.

'아~ 그랬구나'     

감정이라는 녀석의 수다가 계속될수록 엉켜있던 마음이 정리가 되고 있었다.

'어떻게 할까?'

예전 같으면 전화 끊자마자 달려갔겠지만 오늘은 마음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 너 하고 싶은 대로 하자.'

오늘은 이성으로 통제하지 않고 감정에게 선택권을 주었다.

'그렇게 해도 괜찮아.'     

내가 먼저 기운을 차려야 했다. 이 몸으로는 병원에 들어갈 수도 없었다.

딸기 두 알을 입에 넣는다. 딸기가 모래알 같았다.

그리고 역할을 나누기 위해 2남 2녀 단체 톡 방에 사연을 올리고 각자 시간 나는 대로 함께 돌보자고 요청한다. 일단 부담감이라는 녀석을 해결했다.     


하루를 하고 싶은 대로 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끙끙 앓았다. 마음껏 앓고 나니 병원에 있는 엄마가 눈에 밟혔다. 병원에 가겠다고 전화를 하니 "아버지랑 같이 시간 맞춰 와서 점심 먹자"라고 하신다. "아~ 또!!!!'"짜증이 확 올라오는 것을 다시 삼킨다.     

아프다면서 아버지까지 챙기는 엄마 모습에 화가 나고나도 그 정도는 생각할 수 있고 내 상황이 아버지까지 신경 쓸 수 없는 상태일 수도 있는데~내 상황이나 내 감정은 늘 열외로 하면서 당신의 책임을 나에게 떠넘기는 듯한 엄마 모습에 화가 난다있을 수 있는 일인데 과하게 화가 올라온다. 

      

오십이 넘은 딸이 해야 할 일도 당신이 다 알려주고 싶어 하시는 그 태도에 짜증이 올라오고 아프다면서 아버지까지 챙기시는 그 오지랖에 화가 났다. 그러나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아버지에게 전화해서 시간을 잡았다.

'아버지는 좋겠다. 이렇게 챙겨주는 아내가 있어서~ '   

한때는 내가 해야 할 일들을 정해주는 엄마가 오히려 편하기도 했다. 생각하지 않고 말하는 대로만 하면 됐으니까. 그런데 언젠가부터 그 편안함이 불편함으로 바뀌고 있었다. 내 문제였다. 난 다시 스멀스멀 올라오는 불편한 감정을 쑤셔 넣는다. 좀 길게 아플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언젠가부터 내가 나를 무시하면 내 마음은 쿠데타를 일으킨다.'는 것을 나는 알게 되었다.     


병원에 입원한 지 이틀 되었다는 엄마는 얼굴이 좋아 보였다.

"엄마, 왜 갑자기 입원하게 된 거야..."

미리 의논하지 않아서 서운했다는 말을 할 생각으로 질문을 했다.

"며칠 전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파서 끙끙 앓았는데 너희 아버지가 못 본 척하고 시골 간다고 하고 가버리더라. 너 그거 아냐? 아픈 거보다 고픈 게 더 힘들더라. 마음이 고파지니 서러워지더라. 그래서 입원했다."     

아버지는 직장을 그만두신 후로는 제2의 직업을 선택하셨다. 농부. 어렸을 때부터 해왔던 일이고 그곳에서 태어나고 자라셨으니 고향에 대한 애착이 남다른 분이다. 나도 그곳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그곳이 주는 편안함을 안다. 하지만 나에게 그곳은 외롭고 두렵고 부담스럽고 언제나 떠나고 싶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힘으로 벗어날 수 없었던 곳이기도 하였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니 그렇게 아팠던 곳임에도 불구하고,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이 있기에 나도 아버지처럼 시간이 날 때면 습관처럼 다녀오곤 한다. 아버지도 그러셨을 게다. 엄마와 함께하는 무미건조함 보다는 가끔 그곳이 주는 온기가 그리웠으리라. 자연이 주는 편안함이 좋았으리라. 그 뒷모습을 엄마도 느끼셨기에 서러웠던 모양이다.


마음이 고파지니 서러워지더라. 아픈 거보다 고픈 게 더 힘들더라.

'장군 같았던 우리 엄마도 여자였구나. '순간 엄마의 외로움이 확 밀려왔다그리고 미안해진다

엄마가 아버지를 그렇게 지극정성으로 보살폈던 것은 당신도 그런 대접을 받고 싶어서였나 보다. '아픈 거보다 고픈 게 더 힘들더라'는 말이 내 마음 안으로 들어왔다.


"우리 엄마 외로웠구나~병원에서도 혼자 있느라 얼마나 서글펐어~"

순간 일흔여섯 엄마의 주름진 눈가에 눈물이 맺힌다. 엄마가 아버지를 그렇게 지극정성으로 보살폈던 것도 우리는 통제라고 느껴 도망치고 싶었던 숨 막히는 간섭도 엄마는 당신이 받고 싶어서 주었던 사랑이었던 것이다. 몸이 아픈 것은 알아주는 사람이 있으면 견딜 만 하지만 마음이 고픈 것은 방법이 없어 더 서글펐으리라.


함께해도 마음이 통하지 않으면 오해가 생기고 외로움이 깊어진다.  그런데 그 마음이 통한다는 것이 참 어렵다.  특히 엄마는 우리 인생의 전부였기에 엄마는 완벽하다고 우리만의 기준을 만들고 엄마에게 인정받고 사랑받기 위해 노력하며 산다.  엄마는 말하지 않아도 우리 마음을 알 거라고 엄마가 하라는 대로 하면 무조건 옳은 거라고 따라 해 놓고 그 기준에 맞추지 못한 자신을 미워하고 엄마에게 서운해하며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엄마도 사람이다.'라는 것을 놓치고 산다.  엄마도 사는 것이 무섭고 힘들고 엄마도 사랑받고 싶어 한다는 것을 외로울 수 있다는 것을 놓치고 산다.  우리는 '나도 소중하다.'는 것을 놓치고 산다.  태어난 순간부터 절대적인 가치를 지닌 존재이며 우리 모두가 동등한 가치를 지닌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놓치고 산다.     



가깝지만 먼 당신, 엄마

영유아기, 아동 청소년기의 나를 따라가면 그 시간 안에는 엄마가 있다. 분명 나는 엄마와 함께 했다. 그런데 나는 엄마가 있어도 외로웠고, 엄마가 있어도 안전하지 못하다고 느꼈으며 엄마는 나를 사랑했지만 나는 사랑받지 못했다고 느끼고 있었다. 분명 엄마와 함께했는데 내 곁에는 없었고 내가 필요할 때는 없었기에 나는 외로웠고 불안했으며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꼈다. 그리고 그 삶이 익숙해져 '이 모습이 엄마구나 '라고 나만의 엄마의 모습을 규정하며 살아왔는데 엄마는 이제야 내 곁으로 다가오려고 한다. 가까이 더 가까이. 나는 그 모습이 불편하다. 


나는 엄마와의 관계가 힘들다. 잘하려고 해도 마음이 담기지 않을 때도 많았고, 별것도 아닌 일에 화가 나기도 했다. 힘들 때 의지해야 하는 사람이 엄마였지만 나는 엄마를 편안하게 의지해도 되는 존재로 인식하지 못했다. 가깝지만 먼 당신. 그런 사람이 엄마였다. 


 엄마는 나를 세상에 존재하게 하고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준 사람이다. 엄마는 나에게 다른 사람 눈치를 보며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하면 안 된다고 말씀하셨다. 늘 힘들고 불편한 한 것은 내가, 편하고 좋은 것은 어른과 다른 사람에게 양보해야 한다고 그래야 착한 사람이라고 했다. 나는 엄마가 말하는 착한 사람이 되려고 했다.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생각해도 된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엄마는 나의 전부였기에 그냥 따랐다.


그런데...... 그렇게 살았더니 내가 너무 힘들었다. 힘들어서 내 맘대로 살려고 했다. 가만히 있으라고 하면 움직였고 밥 먹으라고 하면 먹고 싶을 때 먹는다고 했고 엄마를 도와달라고 하면 친구들이랑 논다고 줄행랑을 쳤다. 그랬더니 엄마는 잔소리로 회초리로 무관심으로 내가 틀렸다며 더 울타리를 강화시켜 엄마만의 착한 아이로 만들려고 했다. 그 길이 사랑받는 길이고 잘 자라게 하는 것이라고 엄마는 생각했던 것 같다.


엄마와 나는 가깝지만 먼 당신. 딱 그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며 지내고 있었다. 남들이 보기엔 가깝고 때론 나도 가깝다는 착각 속에 살지만 마음에 있는 힘든 이야기는 꺼내놓지 못하고 순간 재미있는 이야기만 하며 , 엄마 쪽에서 다가온다 싶으면 나는 슬그머니 뒤로 물러나며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렇게 살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이제 그 정도의 관계에도 빨간불이 들어온 것이다. 더 이상 미루거나 회피할 수가 없다. 엄마와의 관계를 들여다 봐야겠다.  어디서 부터 시작되었는지 상처난 곳은 마음을 보듬어 치료해 주고 온기가 느껴지는 곳에서는 머물러 누리며 나를 찾아 여행을 떠나보려 한다. 나를 만나러 간다.


마음을 보듬어 줍니다.


엄마도 사람인 것을 우리는 잊고 삽니다.

들꽃 같은 엄마도 장군 같은 엄마도 사랑받고 싶습니다.

일흔여섯 인 엄마도 사랑받고 싶었던 것입니다.

'아픈 거보다 고픈 게 더 힘들더라'는 말은 어쩌면

아버지 보다 당신의 아들 딸에게 하고 싶었던 마음의 소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픈 거보다 고픈 게 더 힘들더라'는 엄마의 마음의 소리가

메아리처럼 마음에 울려 퍼집니다.


나도 소중한 존재인 것을 우리는 놓치고 삽니다.

무언가를 잘하고 누군가가 인정해서가 아니라

태어난 순간부터 절대적인 가치를 지닌 존재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삽니다.

나도 동등하게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달라는 마음의 소리가

우리를 찾아옵니다.

내가 소중하다는 것을 놓쳤다는 신호가 짜증, 외로움, 분노, 슬픔, 우울, 무기력이었나 봅니다.

앞으로 이들이 찾아오면

가던 길을 멈추고 마음에 집중하며 이해하는 시간을 가져보려 합니다.

내가 나에게 관심을 주는 가족이 되어주려 합니다.


나무님들

머리로는 상대가 원하는 것을 아는데 마음은 굳건하게 문을 잠그고 몸이 움직이지 않을땐 억지로 강요하지 말고 나에게 시간을 주기로 해요. 내 마음과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지고 나면 분명 나는 나다운 선택을 할 거예요. 그 선택이 나의 후회를 줄여줄 거예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