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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나무 Mar 20. 2023

어른으로 사는 것은 참 어렵습니다.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의식주를 책임져 주던 엄마. 엄마가 밥 할 때 엄마 옆에서 불을 지피며 얼굴이 숯검댕이가 되어도 좋았고, 엄마가 울면 눈치를 보면서 안절부절 어쩔 줄을 몰라해도 그래도 좋았다. 엄마가 있어서.


자주 안아 주지도 놀아 주지도 않았고 내가 필요할 땐 늘 곁에 없었지만 그래도 존재만으로도 든든함이 있었나 보다. 사람이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금방 표시가 난다는 말이 가슴 안으로 파고들었다.

학교 갔다 오면 ' 엄마' 하고 들어오며 부를 수 있어서 좋았다.  엄마가 안 보이면 '할머니 엄마는요?'라고 물을 수 있었고 '산등밭', '내동산밭' 하면서 행선지를 분명하게 알 수 있었기에 나는 그것만으로도 안정감을 느끼고 성장하고 있었다.


어디에 있고 언제쯤 돌아올 거라는 믿음이 있고 집중해 주지 않아도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만족하고 있었다.  글을 쓰면서 느끼는 것은 나는 욕심이 많지는 않았나 보다. 아니 어쩌면 이미 내가 받을 수 있는 적절한 사랑의 양의 한계를 정해 놓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 많지 않았던 사랑마저도 포기해야 하는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초등학교 5학년 3월 어느 날, 그날은 할머니가 서울에 있는 고모네 이사를 한다고 2박 3일 집을 비우게 되었다.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몰랐다. 몰라야 했을 것이다. 알았다면 나는 울었을 것이고 함께 가겠다고 고집 피웠을 것이고 그러면 할머니가 알게 되어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었을 테니까. 그때 엄마에게는 할머니에게서 벗어나는 것, 오직 탈출이 목표였다. 엄마 자신이 살아야 했기에 다른 것들은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날씨도 좋았다. 그날 학교 갈 때 엄마는 말했다.

"학교 잘 갔다 와. 엄마가 곧 데리러 올게"

나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지도 못했고 '곧'이라고 말하는 그 시간이 어느 정도를 말하는 지도 알지 못했지만 묻지도 않았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어떻게 했는지 기억나지도 않는다. 다만 학교에 다녀오니 엄마도 아빠도 남동생들도 모두 사라지고 남겨진 것은 이사 간 후 남겨진 썰렁함과 필요 없어서 놓고 간 엄마 손때 묻은 가재도구 몇 개와 2살 어린 여동생뿐이었다.


우린 울지 않았다.  엄마가 버리고 간 가재도구와 우리를 동일시했는지 아니면 앞으로 일어날 후폭풍이 무서워서였는지는 모르지만 울지 않았던 것은 분명하다. 그저 기계처럼 이사 가며 엄마가 알려준 대로 소 밥을 줬고 그리고 다음 날 할머니랑 할아버지가 오시길 기다렸다.


본능적으로 알았나 보다. 우린 버려졌고 이제 우리의 보호자는 엄마도 감당할 수 없어서 야반도주하듯 도망치는 할머니와 할머니를 감당할 힘이 없기에 할머니가 원하는 대로 맞춰주는 할아버지라는 것을. 그리고 그때의 감정은 두려움과 공포였을 것이다.


할머니는 오셨고 외갓집까지 가셔서 분풀이를 하셨으며 동네가 발칵 뒤집어졌다. 들리는 말로는 외할머니에게 분풀이를 하셨다고 한다. 또한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이끌고 엄마아빠에게 찾아가 내 자식 아니라고 도둑놈이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치고 마음껏 분풀이를 하고 오셨다고 했다.


 우리는 잘못한 것도 없이 눈치를 봐야 했고 시키지 않아도 나는 할아버지 곁에서 소죽을 끓였고 동생은 할머니 곁에서 밥을 하며 살아남기 위한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할머니는 우리가 듣든 말든 엄마아빠 욕을 하셨고 그럴 때마다 우리는 죄인이 되었으며 할머니가 자기감정을 감당하지 못해 술을 드시고 술주정을 하시면 들었고 쓰러지시면 모셔다가 방에 눕혔고 살기가 힘들어 죽는다고 농약을 먹는다고 광으로 들어가시면 할머니를 따라 들어가 농약병을 감추어야 했다.


물론  할머니가 늘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것은 아니었다. 당신이 외롭고 지치고 속상하면 당신도 모르게 보이는 그 습관은 한 달에  한두 번이었다.


할머니가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을 때는 도시락도 열심히 싸주셨고 우리가 학교 갈 수 있게 깨워주고 우리에게 못된 행동을 하는 아이에게는 '가만 안 둔다'라고 윽박지르며 우리를 보호해 주셨다.


그러나 나는 늘 불안했다. 할머니의 평정심이 언제 깨질지 몰라서~예측할 수 없는 할머니의 넋두리와 주사, 약병을 드는 돌발행동은 내 온 신경을 내가 아니라 할머니에게 향하도록 했다.


살아남으려면 뭐든 열심히 해야 했고 잘해야 했다. 그래서 동생도 나도 우리는 최선을 다해 공부했고 밥을 했고 소죽을 끓였다. 그 시기에 기타를 메고 한껏 멋을 부리며 고등학교 다니던 외삼촌이 훗날 목이 메어 울먹이며 말했었다. '쪼꼬만 한 것이 풀을 베어 자기보다 더 큰 포대를 이고 오는 것을 보면 가슴이 아팠다고'

그 말에 내 마음은 또 주저앉았다. 그러면서 마음으로는 울부짖었다. '좀 도와주지. 엄마에게 전해주지'


돌봄을 받아야 하는 나이에 엄마아빠가 짊어져야 하는 삶의 무게를 짊어지고 돌봄을 하는 어른으로 살고 있었다. 우리가 그렇게 살 때 엄마아빠는 한동안 연락이 없었다. 무서워서 그랬다고 했다.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느라 시간이 없었다고 했다. 그래도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우리를 한 번이라도 생각해 주었어야 했다. 엄마니까 아빠니까 어른이니까.


요즘도 가끔 생각난다. 엄마가 떠나고 난 날 소죽을 끓이다가 하얀 벽에 검은 으로 하트를 그리고 우리 집은 즐거워라고 써놓았던 그 장면이. 엄마는 떠나고 텅 빈 방에 우두커니 앉아 있었던 여자아이 둘이.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했던 엄마가 말없이 떠났던 후유증은 생각보다 컸다. 어린아이가 어른 역할을 하느라 마음은 초등학교 5학년에서 성장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누군가가 존중해 주지 않아도 그것에 대해 기분 나빠하지 않았고 알려주지 않아도 궁금해하지 않았으며 그저 묵묵히 눈앞에 떨어진 일만 하는 그런 사람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내가 존중받는 것을 포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 기분이 무엇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내가 나에게 관심이 없었다.


아니, 알아도 표현해 봤자 상처만 받을 거라는 생각에 아예 표현조차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의 역할까지 과하게 책임지려고 하고 있었다. 엄마아빠가 해야 하는 동생의 부모 노릇까지 하면서 마음으로는 엄마를 무책임하다고 비난하고 있었다. 가슴 저 깊은 곳에서는 분노가 자리하고 있었지만 그 분노는 슬픔으로 가려져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다.


표현하지 않고 요청하지 않고 과하게 잘하려고 하는 삶의 태도는 습관이 되어 어른이 된 어느 지점까지 나를 힘들게 했다. 요청해도 거절당할 거라는 잘못된 신념으로 말하지 않고 알아주길 기대했고, 알아주지 않으면 그 사람과 담을 쌓았다. 선택의 상황에서도 침묵하고 의존했고 마음을 표현하지 않으니 누군가는 서운하다고 하고, 누군가는 자기 마음대로 나를 이용하려고 했으며 또 다른 누군가는 나를 그림자 취급했다.


달라져야 했다. 그 방법으로는 나를 지킬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용기를 내어 내 마음을 보려고 했고 말하려고 하고 있다.




마음을 보듬어 줍니다.


어느 날 갑자기 버려진 아이가 되어 무섭고 슬펐을 아이야.

슬픔을 느껴도 괜찮다.

누구라도 슬펐을 것이고 그 누구라도 무서웠을 거야.

힘들다고 말해도 괜찮다.

누구라도 힘들고 그 누구라도 억울했을 거야.


나 만이라도 그 무섭고 슬프고 힘든 마음을 알아줄게

그 느낌을 알아준다는 것은
표현한다는 것은
적어도 나는 너를 존중하고 있다는 것이니까

이 세상에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는 딱 한 사람

그 사람
내가 되어줄게

버려질까 봐 두려워하지 않아도 돼

표현하면 거절당해서 상처받을까 봐 미리 포기하지 않아도 돼

다른 사람이 싫어할까 봐 잘 지내기 위해서 침묵하지 않아도 돼

내가 너를 지켜줄게

내가 너의 이야기를 들어줄게

내가 너랑 친구가 되어줄게


나만이라도 내 감정과 내 욕구와 내 생각을 존중해 주기로 약속합니다.



나무님들은 어른으로 사는 거 어떠신가요?
저는 어른으로 사는 것이 참 어렵습니다.
책임져야 하는 것들이 너무 많으니까요.

어른도 사람이라 무섭고 힘들어서 도망치고 싶을 때가 많기에
그 자리에서 살아내느라 애쓰는 어른들이 빛나보입니다.
그래서 엄마가 이해됩니다.

하지만 내 상처가 크기에
나만은 어떤 사정으로 아이와 함께 살지 못하게 되면
아이가 이해할 수 있게 상황을 설명해 주고
아이가 안정감을 느낄 수 있게 언제 함께 살 수 있는지
도움이 필요할 땐 어떻게 하면 되는지 알려주고
약속을 지켜주려 노력하며 삽니다.
그 모습이 내가 꿈꾸는 어른인 듯합니다.

아이가 불안하지 않게, 버려질까 봐 두려움에 떨지 않게
그래야 아이가 아이 인생에 집중하며 살 수 있어요.
건강한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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