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반전적인 결말로 시청자들을 충격에 빠지게 했던 드라마 <발리에서 생긴 일>을 좋아했다. 신분 계층의 가장 아랫단에 위치할 것 같은 여자 주인공은 계층의 가장 꼭대기에 있을 것 같은 있는 남자 주인공을 만나 서로 티격태격하다 결국은 사랑에 빠지는 별다를 것 없는 신데렐라 스토리였지만 <발리에서 생긴 일>의 여자 주인공(이수정)은 고전적인 신데렐라 캐릭터와는 달랐다. 처음에는 남주의 돈과 힘을 이용하기 위해 노골적으로 접근을 하다 어느샌가 정이 들고 남자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만다. 하지만 그는 남주와 첫날밤을 보내기 직전 이런 엄청난 대사를 던지는데,
"마음을 주지 않는 건 내 마지막 자존심이에요."
그 비수 같은 말에도, 여주에게 홀딱 빠진 남주는 더욱 흥분하여 키스를 한다. (여담이지만 여주의 치명적인 대사에 비해 남주의 소심한 키스는 아무리 생각해도 옥에 티다.)
끝까지 자존심을 지킨 하지원(극 중 이수정)의 눈에서 툭툭 떨어지는 말똥 같은 눈물은 마음이 아팠으나 그것과 별개로 마음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래, 바로 저거야. 하지원의 그 대사를 듣고 나서야 깨달았다. 왜 내가 남순이 그렇게 바라고 바랐던 선욱에 대한 거짓말을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는지. 말하자면, 그건 내 최초의 자존심이었다.
부친의 직업을 물어보는 다른 어른들(대부분 또래 아이들의 부모)의 질문에 곧이곧대로 대답하지 말라던 남순의 당부는, 월요일 아침 조회시간 교감 선생님의 반복되는 훈화 말씀처럼 잊을만하면 찾아왔다. 평소에 말이 없던 병철은 남순이 나에게 그런 말을 할 때마다 '쓸데없는 소리 한다'며 버럭 화를 내곤 했다. 남순의 성격을 말하자면 엄격했으며 불 같은 기질에 대체로 욕심이 많았다. 다른 사람에게 무시당하거나 밑지는 것을 싫어했고 자랑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런 성격에 '자식 없는 노인네'라는 꼬리표는 그에게 죽어도 갖고 싶지 않은 것이었을 거다. 그 마음을 모르는 바 아니었기에 측은한 마음도 들었지만 영 부대끼는 것도 사실이라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하고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느그 아부지 뭐 하시노?
1970-8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 <친구>에서 담임교사 역을 맡은 김광규의 대사였는데 그만큼 당시의 시대상을 잘 반영한 대사도 찾기 어렵다. 다들 왜 그렇게 아버지의 직업을 궁금해하는 건지 유치원 때부터 하루 건너 한 번 듣는 그 질문에 노이로제가 걸릴 지경이었다. 유치원과 학교에서 만나는 선생들은 기본이고 놀이터에서 또래들과 놀다 마주치는 아이들의 부모들, 슈퍼 가게 아주머니, 동네 방앗간 아저씨...... 어른들의 질문 레퍼토리는 거의 정해져 있었다.
1. 꼬마야, 니 이름 모고?
2. 어데 사노?
3. 늬 아부지 뭐 하시노?
요즘이야 그런 질문을 받으면 개인정보라 알려줄 수 없다는 아주 간편한(뿐 아니라 매우 합리적이고 정당한) 대응이 가능했을 텐데 그 당시 어른들의 질문에 '민감한 개인정보라 말씀드릴 수 없다'는 대답을 했다가는 늬 집 자식인데 이렇게 맹랑하고 버르장머리 없느냐는 꾸중을 들을 게 뻔했기에 감히 엄두를 낼 수 없는 대응이었다.
결혼한 여자들이 직업을 갖는 것이 쉽지 않았던 그 당시 대부분의 '어무이'들은 '뭐 하시노?' 질문의 대상이 될 수 없었고 가정을 책임지는 가장이었던 성인 남성이 돈을 벌어오는 수단에만 사람들이 관심을 갖던 시절이었다. 어찌나 창의성이 형편없는지 어른들의 질문 레퍼토리는 마치 똑같은 말을 반복하는 저지능 챗봇 같았다. 초등교사라는 제법 그럴듯한 직업을 가진 ‘어무이'를 둔 나로서는 억울한 부분이었다. 누군가 '느그 아부지 뭐 하시노'하고 물을 때마다 나는 남순이 내 말이 들리지 않을 정도로 멀리 떨어져 있는지 확인한 후 이렇게 대답했다.
"아부지는 돌아가셨고요, 어무이는 학교 선생님이에요."
묻지도 않은 혜순의 직업 정보를 굳이 제공함으로써 나름의 가드(guard)를 올린 것이다. 그러면 어른들의 반응은 대부분 비슷했다. 아이의 부친이 죽었다는 정보와 아이의 모친이 번듯한 '사'자 직업을 가졌다는 정보를 한 번에 처리하기 어려운 듯(저지능 챗봇이라니까) 혼란스럽고 애매모호한 표정을 지었다. 가끔 본인의 호기심을 해결하는데만 정신이 팔려있는 뻔뻔하고 염치없으며 무례한 어른들의 경우 '아이고, 우짜다가?'하며 초면에 선을 넘는 추가 질문공세를 퍼붓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의 경우 별말 없이 자진후퇴 하곤 했다.
남순이 시키는 대로 거짓말을 하지 않았던 이유는 (황희 정승 23대손으로서) 거짓말을 한다는 양심의 가책도 싫었고, 누가 봐도 너무 쉽게 들통날 거짓말이라 뒷일이 걱정되기도 했으며, 또 '미국에서 무슨 일 하시는데?' 따위의 추가 질문이 날아올 경우 내 부족한 데이터 베이스로는 감당이 안 될 확률이 다분하다는 판단에 의거한 결정이었다. 하지만 그 어떤 이유보다 내가 남순이 바라던 거짓말을 끝끝내 하지 않았던 이유는 <발리에서 생긴 일>의 대사처럼 자존심이었던 것 같다. 내가 아버지를 가지지 못한 건 물론 너의 잘못이 아니겠지만 내 잘못도 아니야. 그러니 나는 굳이 숨길 필요가 없고 너의 동정도 필요 없어. 그런 마음이었다. 실제로 그런 유치한 어른들이 있었다. 아버지가 없는 아이는 사이코패스나 바이러스라도 된다는 듯 내가 보는 앞에서 자기 아이에게 같이 놀지 말라며 아이 손을 잡고 놀이터에서 도망가듯 멀어지는 부모도 있었다.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그들의 논리를 마주할 때마다 억울했고 억울한 만큼 오기가 생겼다. 하지만 그게 무서워 거짓말을 하지는 않기로 결심했다. 내가 내 아버지의 죽음을 두고 거짓말을 하지 않았던 건 내 최초의 자존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