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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서영 Oct 26. 2024

내꺼인듯 내꺼 아닌 내꺼같은 너

참을 수 없는 혼자의 무거움, 그 9화

“과장님, 뭐 드시겠어요?”

“동태탕.”

“이모님 여기 동태탕 4개 주세요.”

메뉴판을 보며 오늘 점심 메뉴를 고심하던 주인공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메뉴판에서 눈길을 거두지만 ‘나는 동태탕을 먹고 싶지 않다'라거나 ‘내 점심 메뉴는 내가 선택하고 싶다' 따위의 항의를 하지는 않은 채 이미 체한 것 같은 표정으로 흰 쌀밥만 삼킨다.

장강명 소설 원작의 영화 ‘한국이 싫어서'에 나오는 장면이다. 그 장면을 볼 때 나는 먹지도 않은 동태탕을 토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의 첫 직장은 사내 식당 시설이 꽤 훌륭했다. 한식, 중식, 일식, 양식, 분식 등 다양한 메뉴 중에서 자유롭게 선택 할 수 있었다. 문제는 부장을 필두로 한 20명 쯤 되는 부서 사람들이 함께 식사를 하는 문화였다는 거다. 부리기 제일 만만하다는 대리급이 먼저 자신의 식판읕 들고 약 20인분의 자리를 맡아놓는다. 20명이 넘는 부서 사람들이 자신이 맡아놓은 식탁을 찾아 올 수 있도록 까치발을 하고 양팔을 휘저으며 신호를 보내는 동안 그의 식판은 식어갔다. ‘만만한 대리' 조차 되지 못한 병아리 사원이었던 나는 부서 사람들의 동향을 살핀다. 오늘의 대세가 떡튀순이라면, 그래서 대리님이 미리 자리를 잡고 기다리는 식탁이 분식 코너에 가깝다면 아무리 장어 덮밥이 땡겨도 분식을 선택해야했다. 선택권이 있는데 선택권이 없는, 내꺼인 듯 내꺼 아닌 내꺼 같기만 한 장어 덮밥이었다. 여기서 또 다른 문제는 부서 사람들의 80퍼센트 이상이 대한민국 예비역이라는 데 있다. 회사생활을 하며 느낀 예비역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지극히 개인적 경험에 의한 매우 성급한 일반화이니 ‘성급하다거나 비논리적’이라며 욕할 사람은 여기 이 이메일을 활용하셔라  no.more.thinking.and@gmail.com). 첫 째 어떤 메뉴든 가장 빨리 먹을 수 있는 메뉴를 선택한다. 둘 째, 그래서 가장 인기가 없는 메뉴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셋 째. 밥을 먹는 건지 마시는 건지, 마치 5분 안에 다 먹으면 상금을 주는 챌린지에 참가한듯 무서운 속도로 식사를 해치운다. 넷 째. 한 시간의 점심시간 중 10분을 식사에 할애 하고 나머지 50분은 커피나 담배나 혹은 둘 다를 즐기는 시간에 할애하고 싶어한다. 어렸을 때부터 쉽게 체하던 탓에 식사를 천천히 하는 버릇이 있는 나는 남들보다 식사 속도가 두 배 이상 느렸다. 뒤쳐지지 않기 위해 고개 한번 들지 않고 열심히 숟가락질을 해도  3분의 1정도 먹었을 때 정수리가 따가운 느낌에 고개를 들어보면 20명이 넘는 부서 사람들이 냅킨으로 입을 훔치거나 이쑤시개로 이를 후비면서 나를 보고 있었다. 깜짝 놀라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고개를 들자,

“아냐, 아냐. 우리 신경쓰지 말고, 얼른 마저 들어.”

부처님의 자비같은 부장님의 배려에 다시 숟가락을 들고 한 입 뜨다가 더이상 떡볶이도 튀김도 순대 맛도 느낄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일어나시죠.”

아직 묵직한 식판을 들고 잔반대를 향해 앞장선다.


회사 생활 집단 점심식사 시간을 2년 정도를 버텼으나 더 이상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항상 부족한 점심식사 때문에 탕비실의 과자를 집어 먹기 시작했다. 훌륭한 영양사들이 고심하며 구성했을 균형있는 영양소 대신, 트랜스지방, 설탕, 인공 첨가물, 그리고 정제 탄수화물 따위가 내 몸을 풍선처럼 부풀리며 망가뜨리기 시작했다. 결단을 해야했다.

“부장님, 저는 다이어트를 위해 앞으로 샐러드를 테이크아웃해서 먹겠습니다.”

물론 다이어트가 절실히 필요한 상태이긴 했으나(14살 이후 다이어트가 필요없는 상황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핑계였다. ‘여러모로 눈치가 보여 당신들과 함께 식사하기 불편하니 앞으로 혼자 먹겠습니다'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점심시간 혼밥을 선전포고한 이후 나는 테이크아웃 샐러드를 받아 사무실 내 자리로 돌아왔다. 배려심 넘치는 회사는, 너무 바빠 식당에서 식사할 짬도 나지 않는 불쌍한 직원들이 일을 하며 먹을 수 있도록 샌드위치나 주먹밥 같은 다양한 테이크아웃 메뉴도 함께 제공했지만 다이어트를 이유로 내세운 마당에 뽀얀 식빵이 세 장이나 들어간 샌드위치를 씹는 모습을 혹시라도 들킬까봐 안전한 샐러드를 선택했다. 불꺼진 사무실의 낮아진 조도와 평온한 데시벨, 매일 먹는 양상추는 질렸으나(그래도 쉬림프 샐러드, 베이컨 샐러드, 에그 샐러드를 돌아가며 먹었다) 더이상 눈치 볼 게 없는 혼자만의 점심시간은 장어덮밥보다 달콤하고 만족스러웠다. 


남들보다 식사 속도가 지나치게 느린 나는 어딜가든 눈치가 보였다. 대학교 때 동기들과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 항상 느려서 미안하다는 말을 ‘밥 먹듯이’ 했고, 고등학교 때 급식을 먹을 때도 배식 당번이 내 식판을 빠뜨리고 떠나버렸고, 당번이 기분이 좀 괜찮은 날엔 내가 밥을 먹고 있는 책상 앞에 서서 아무말 없이 나를 노려보거나 했다. 그렇다고 엄청난 양을 먹는 것도, 영국 귀족처럼 여유를 부리며 먹는 것도 아니었다. 내가 만족하는 식사 적정량은 일반적인 국밥집의 돼지국밥 기준으로 국은 3분의 2, 공기밥은 3분의 1 정도로 한 끼 기준 식사량이 많은 타입이 아니었다. 게다가 내가 느리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사람들과 속도를 맞춰야 한다는 강박으로 체하기 일보 직전까지 밥을 식도에 밀어 넣다시피해도 양껏 먹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식구(食口)라는 단어가 가리키는 것처럼 ‘같이 먹는 사람’을 중시해 온 한국 문화 속에서, 혼자 밥을 먹는 행위는 고립이나 외로움의 상징 즉, 왕따나 사회부적응자로 손가락질 한다해도 나는 기꺼이 자처할 의향이 있었다.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은 좋지만 식사 시간에 먹는 행복을 눈꼽만큼도 느낄 수 없는 것보다는 차라리 왕따나 외톨이가 되는 게 낫다 싶었다. 그리고 입 속에 음식물이 있을 때는 말을 삼가야 한다고 유치원에서부터 배우지 않았나. 음식물을 삼키고 입 속이 완벽히 비운 후 그 다음 새로운 음식물이 들어오기 전 공백의 순간에만 말을 해야 한다면 내 저녁식사는 다음날 아침식사가 될지도 몰랐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만족스럽지 못한 식사 만남이 계속되자 스트레스를 넘어 노이로제에 걸리고 말았다. 언제 밥 한 번 먹자는 형식적인 인사에도 거부감이 들기 시작했다. 사실 속도보다 나를 더 불편하게 하는 것은 불과 두 자(寸)도 되지 않는 거리를 두고 누군가와 마주봐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식사를 한다는 것은 내겐 굉장히 내밀한 행위로 여겨졌다. 식기를 이용해 음식물을 입 안으로 옮기고 입 속에 든 음식물을 씹어 삼키는 과정은 아무리 조심해도 어쩔 수 없이 입 속을 보여야 하고, 씹는 소리도 들리기 마련이며 간혹 음식물이 입술 주변에 묻거나 고춧가루나 검은 깨 등이 치아 사이에 낀 모습, 혹은 갑자기 튀어나오는 트림을 있는 그대로 노출해버릴 수 있는 사고의 위험까지 기꺼이 감수하는 일이다. 밥의 민족으로서 대한민국 사람들은 그런 내밀한 교감에 익숙해진 것인지 무뎌진 것인지 너무도 쉽게들 하는 것 같아보였지만 나는 어려웠다. 


고춧가루 낀 모습을 보였다는 사실보다 더 참을 수 없는 것은 ‘어, 너 이에 뭐 꼈어'하고 알려주는 친절한 배려와 친근감이 민망하고 불편해서 다시는 누군가와 함께 식사를 하지 않겠다는 지킬 수 없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필요 이상으로 비장하게 다짐 하고 있는 나 자신을 견디는 일이었다. 그래서 내가 찾은 최선의 타협점은 마주보지 않고 나란히 앉아 밥을 먹자는 제안을 할 만큼 편한 상대하고만 식사를 하기로 했다. 당시 나에게는 또 아주 그럴듯한 핑계거리가 생겼는데 그건 피부발진이었다. 스트레스를 받거나 피곤하면 온 몸이 벌겋게 뒤집어지는 증상이 나타나는데 심할 때는 목이나 다리까지 증상이 나타나 겉으로 봐도 꽤 심각해보였다. 그럴 땐 벌개진 목을 보여주며 음식을 조절해야 해서 조미료와 설탕이 많이 들어간 외식을 피해야 한다며 식사 자리에서 빠져나오곤 했다. 핑계라고 했지만 거짓말은 아닌 이유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더 심해지는 건 명백한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피한 것은 오로지 ‘함께 밥을 먹는 일’이 목적이 되는 자리였다.  집단주의와 의기투합에 진심인 한국에서 ‘혼밥러'들이 식당에 들어가 당당하게 1인분의 식사를 주문하는 것이 어색하지 않게 된 건 얼마되지 않았다. 기껏해야 국밥집이나 분식점 정도였고, 누군가 고깃집에서 혼자 고기를 구워먹었다는 소문을 들으면 ‘혼밥 최상 레벨’의 직위를 부여할 만하다며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우는 시절이었다. 


캐나다에 온 이후로 한국은 혼자인 게 여러모로 힘든 나라였다고 느낀다. 이 곳은 점심시간이 되면 함께 일하던 사람들은 제각각 흩어진다. 캐나다는 사내식당을 갖춘 회사의 비율이 매우 적고 급식을 하는 학교도 매우 드물다. 웬만하면 자기 도시락은 자기가 챙겨온다. 가끔 각자의 도시락을 들고 모여 식사를 같이 하는 모습도 보이지만 대체로 점심시간은 혼자 보내길 원한다. 미친 물가로 인해 높은 외식 비용도 한 몫 하겠지만 두 명 이상 함께 식당에 가려면 메뉴 선정만 하다 점심시간을 다 보내야 한다. 종교에 따라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사람, 소고기를 먹지 않는 사람, 할랄(Halal: 이슬람 율법에 따라 허용된 방식으로 동물을 도축한 육류) 음식만 먹는 사람이 있고, 드물긴 하지만 코셔(Kosher: 유대교에서 따른 식사 규칙)를 따르는 사람도 있다. 또 신념에 따른 채식주의, 비건주의가 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체질에 따라 견과류를 못먹는 사람, 글루텐 불내증이 있는 사람, 해산물을 못 먹는 사람, 우유를 못먹는 사람 등 알러지는 또 얼마나 다양한지 모른다. 식당에서 서버로 일을 하다보면 손님들의 종교와, 신념과, 체질과 식성에 따른 까다로운 커스터마이징 요구를 매번 접한다. 양파 빼달라, 오이 더 넣어 달라, 돼지고기 만두를 야채 만두로 바꿔달라, 양식 연어 대신 자연산 연어로 바꿔달라, 마요네즈 대신 칠리 소스로 바꿔주되 음식에 직접 뿌리지 말고 따로 용기에 담아달라 등등. 심지어 김밥을 시키면서 김을 빼달라는 요구에 대응하기 위해 김 대신 쓸 수 있는 콩 페이퍼(콩으로 만든 종이)도 필수다. 


이토록 식성이 까다롭고, 까다로운 것이 당연한 권리라는 생각이 만연한 캐나다에서 상대방의 의사를 묻지도 않고 ‘동태탕으로 통일’ 따위를 시전했다간 소송까지 각오해야 한다. 혼밥 문화가 발달하기 안성맞춤인 환경이다. 더이상 ‘이번주 주말에 밥 한 번 먹자'는 지인의 연락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스트레스 받을 필요가 없어졌다. 밥 대신 카페에서 만나 차 한 잔 하자기엔 너무 거리를 두는 것처럼 보일까봐, 밥 대신 맥주나 한 잔 하자기엔 괜히 사심이 있는 걸로 오해받거나 너무 들이대는 것처럼 느껴져 부담스러워 할까봐 답장을 보내기 전에 한참을 고민했었다. 사실 커피 한 잔과 맥주 한 잔의 거리 그 사이 어디 쯤에 있을 밥 한 끼가 누구에게나 일반적으로 적당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나는 인간관계도 극단적인 편이었다. 커피 한 잔의 거리 만큼만 유지하고 싶은 관계, 맥주 거품보다 더 큰 거품을 물며 수다를 떨어도 괜찮은 관계. 오래 전엔 극단적인 내 성격이 싫었다. 남들 다 잘만 하는 마주보는 식사를 불편해 하는 내 예민함도 싫었다. 한국에서는 약속을 잡으면 식사 중심이거나 식사가 포함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자괴감이 더 심했던 것 같다. 


예전과 다르게 요즘은 만남에도 다양한 스타일이 있어 반갑다. 누군가와 함께 산책만 할 수도 있고, 쇼핑만 할 수도 있고, 배드민턴만 치고 헤어지기도 한다. 그러다 식사 약속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즐거운 시간의 연장선으로 자연스럽게 식당에 들어가게 된 적이 있었다. 그 사람과는 첫 식사였기에 불편할까봐 걱정됐지만 이제와서 즐거운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았고 무엇보다 배가 엄청 고팠다. 사정을 이야기한 후 마주 앉는 대신 나란히 앉아도 괜찮겠냐고 물었다. 다행히 흔쾌히 내 부탁을 들어주었고 우리는 나란히 앉아 식사를 했다.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같은 풍경에 대해 나눴던 대화와 가끔씩 팔꿈치가 스쳤던 순간들, 모두 따뜻하고 다정한 시간이었다. 나는 누군가와 함께 밥을 먹는 걸 싫어하는 게 아니었다. 마주보는 시간보다 같은 곳을 바라보는 시간을 더 선호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됐다. 그리고 팔꿈치의 온기 같은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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