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블 No. 4 더 필요한 것 없으세요?

테이블 No. 4

by 황서영

소설 속 인물과 사건은 모두 허구입니다.




"어머, 이게 누구야?! 유림 씨 오랜만이다. 어디 다녀오는 길?"

"아, 안녕하셨어요? 예, 뭐 좀 사러 갔다가요. 오랜만이에요."

"요새 일은 어디 다니고 있어요?"

"아, 아직 구하는 중이에요. 제가 집 근처로 일을 찾다 보니 생각보다 잘 안 구해지네요."


토마토와 양배추를 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누가 유림의 왼쪽 팔꿈치를 잡았다. 일주일간 트레이닝을 해준 식당 I의 홀 매니저 A였다. 유림이 잘리게 된 것에 누구보다 무게가 있었을 결정적 발언을 했을 것이 분명한.


토마토와 양배추 때문에 무거워진 백팩 때문에 앞으로 말려있던 어깨를 펴고 허리를 곧추 세우며 급하게 덧붙였다.


"당장 일이 급한 게 아니어서요. 넘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좀 쉬면서 천천히 찾고 있어요."

"써버 일이 정 안 구해지면 여기 사거리 맥도널드나 길 건너 스타벅스 아니면 거리는 좀 되지만 몇 블록 아래 월마트 같은 데는 상시 고용할 텐데 그런데라도 구해보지 그래요."


A는 유림의 말을 전혀 듣지 않았거나 혹은 들었지만 그냥 무시하고 싶은 걸까. 아니면 유림이 펴는 어깨의 각도가 유난히 부자연스럽다고 느꼈거나. 쉬면서 천천히 찾고 있다잖아. 유림은 짜증이 확 치밀었다.


동정은 세상에서 가장 짜릿한 놀이 중 하나다. 상대를 향한 염려의 조언은 자신을 섬세하고 사려 깊은 사람으로 보이게 한다. 그와 동시에, 상대의 불행은 본인이 누리는 상대적인 우월감이나 다행스러운 안위를 일깨워 줄 뿐 아니라 은밀한 위안까지 선사한다. 동정은 공감과 지원을 가장한 위선이지만 대개의 경우 동정을 하는 쪽도 받는 쪽도 그 실체를 알아보는 경우가 드물다.


"아, 그래야겠네요. 한 번 알아볼게요. 고맙습니다. 저 근데 약속에 늦어서...... 다음에 또 기회 되면 봬요, 잘 지내시고요."


요즘 들어 부쩍 거짓말이 는 것 같다고 유림은 생각했다.


매니저 A의 조언에 진심과 위선의 지분이 어느 정도인지에 대한 의문은 일단 차치하면, 사실 영 쓸데없는 말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써버 일이 안 구해지면 구해지는 뭐라도 해야 하는 게 맞았다.

'맥도널드, 스타벅스, 월마트라...... '

코로나가 질질 끌던 시기 터무니없이 부족했던 정부 보조금조차 없어지는 바람에, 빨던 손가락이 닳아 엄지 손가락이 새끼손가락만큼 얇아지고 있을 무렵이었다. 일용직이든 일주일자리든 시급이 얼마든 상관하지 않고 지원했고 시켜주면 뭐든지 오케이였다. 유림은 2022년도의 유난히 더웠던 여름을 떠올렸다. 버거를 조립하고, 멀쩡한 커피를 비웠으며, 똑같은 옷 30벌의 각을 맞췄다. 마음만 먹는다면 다시 채용이 되는 데는 자신 있었다. 기간은 다소 짧았지만 한 번 일해본 경력이 있는 사람은 어디든 플러스 점수를 얻고 간다는 걸 알고 있었다.

다만 유림은 그런 곳에서 일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권력의 단맛을 알아버린 엄석대가 누군가의 종복으로 돌아갈 수 없듯 시급 외 수익의 단맛을 알아버린 유림은 다시는 최저 시급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최근 해외에서 많은 인구가 캐나다로 유입되었다는 뉴스 기사가 난리였다. 특별한 기술이나 유효한 학위가 없는 이민자들이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이 계산원, 패스트푸드 프렌차이저 점원, 그리고 써버다. 공급이 폭발적으로 많아져 최근 몇 년 사이 일자리를 구하는 게 눈에 띄게 아니, 온몸으로 느낄 만큼 어려워졌다. 그중에서 시급 외 수입이 있어 인기 있는 써버직은 그만큼 더욱더 구하기 어려워졌다. 벗어나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던 식당일도 이젠 어디서나 불러만 주면 버선발로 달려갈 지경이었다.


유림은 스마트폰을 열어 달력과 은행 어플을 차례로 확인했다. 백팩에 저번 주에 돌리다 만 이력서가 서너 장쯤 남아있었다는 기억을 떠올리며 집으로 향하던 발길을 돌렸다. 양배추 한 통과 토마토 6알이 가방에서 이리저리 구르고 치이는 소리가 났다.




월마트에서는 이력서를 건네주면서 이미 마음을 접었다. 수년 전에 식료품 부서에서 일할 때보다 손님이 더 많고 정신없어 보였다. 이력서를 남기고 싶은데 매니저나 담당자를 좀 불러줄 수 있겠냐는 부탁에 파란 조끼를 입은 직원은 일한 지 일주일 밖에 안 돼서 담당자가 누군지 모르겠다고 했다. 다른 직원을 찾을까 잠깐 생각했지만 맥도널드와 스타벅스까지 걸어서 돌았더니 피곤함이 몰려왔다. 매장 한복판에 할인광고를 위해 전시되어 있는 강아지 매트에 드러눕고 싶을 지경이었다. 별 수 없이 그 사람에게 이력서를 건네며 혹시 다른 직원에게라도 전달해 줄 수 있겠냐고 부탁을 했다. 유림의 손에서 벗어나 그 사람의 손으로 옮겨간 이력서가 밟힌 전단지처럼 보였다. 이력서가 인사 담당자까지 전달되지 않을 확률 99.2 퍼센트쯤 될 것이다.


쌀쌀했던 바람이 오후가 되자 좀 누그러졌다. 장을 보기 위해 집을 나선게 오전 11시였으니 5시간째 무거운 가방을 메고 돌아다닌 셈이었다. 평소에 배고픔을 잘 못 느끼는 유림이었지만 오늘은 이상하게 배가 고팠다. 맥도널드의 감자튀김 냄새와 스타벅스의 고소한 커피 원두 냄새가 아무래도 식욕을 자극한 것 같았다. 허기를 인식하자 더욱 배가 고파졌다. 바로 뒤를 돌면 월마트 출입문이 있고, 허기의 급한 불을 꺼줄 월마트 식품 코너가 잠시 떠올랐으나 전쟁터 같은 그곳으로 다시 들어가고 싶지는 않았다.


꼬르륵 대는 배를 양손으로 움켜잡고 한 10여분 쯤 걸었을 때 한 작은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식당이었다. 간판에 분홍색 생선회가 올라간 초밥 그림과 함께 'Kosei(코세이)'라고 적힌 글자를 보니 보니 백 미터 밖에서 봐도 일식당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런 곳에 초밥집이 있었다고? 얼마 전만 해도 그 건물은 간판도 뭣도 없이 5년째 공사 중단인 채로 방치되던 장소였다. 집에서 걸어서 35분 정도 걸리는 곳으로, 그리 멀진 않았지만 외딴곳이라 자주 올 일이 없어 가게가 들어선 지도 몰랐다. 유림의 걸음이 가게 앞에서 멈췄다. 10분 동안 5명이 지나갔고 2명이 들어갔다. 분당 트래픽 0.5명, 분당 전환율 20퍼센트. 10분으로 설정했던 타이머의 알람을 끄며 유림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딸랑"


"Welcome to Kosei. How many are in your party today? (환영합니다. 오늘 당신의 팀은 얼마나 많습니까?)"

"Hello.Uhm, just me. One person, Please. (안녕하세요. 아, 저 혼자요. 한 사람이요)."


오랜만에 익숙한 냄새와 광경이 눈앞에 펼쳐지자 처음 와 보는 곳임에도 갑자기 익숙한 곳에 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시각보다 먼저 반응한 것은 후각이었다. 갓 지은 밥에서 올라오는 쌀밥 냄새와 그것이 품고 있는 시큼하고 들큼한 식초와 설탕 혼합의 덜찍지근한 냄새. 새우 향을 머금은 대용량 기름이 펄펄 끊는 냄새. 일주일에 엿새 씩 12시간씩 맡을 때는 진절머리 났던 그 냄새가 고작 3개월 쉬고 나니 반가웠다. 냄새 때문인지 잠시 누그러졌던 허기가 구토처럼 올라왔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써버가 안내하는 구석자리 식탁 앞에 엉덩이를 내려놓고 있었다. 써버가 녹차와 함께 가져다준 끈적한 메뉴판에 적힌 숫자가 보이자 각성이 들었다. 배가 고프면 식당 문을 열게 아니라 배낭 문을 열어 토마토를 빨아먹든 양배추를 씹어 먹든 하는 게 맞았다. 당장 이번 달 인터넷과 전기세를 낼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마당에 물가 높은 밴쿠버에서 외식이라니 유림은 기대에 찬 써버의 표정을 뒤통수로 느끼며 생각했다.


밖에서 볼 때는 몰랐는데 안에 들어오니 내부가 전체적으로 낡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1970년대쯤에 지어진 후 한 번도 리모델링은 하지 않은 것 같았다. 엉덩이를 받치고 있는 의자는 삐걱대고 있었고, 흠이 여기저기 난 식탁은 소보로 빵처럼 요철이 심했다. 유림의 근처에는 야광 조끼를 입은 남자 네 명이 다른 종류의 스페셜 롤을 먹고 있었고, 그 옆에는 엄마와 초등학생 딸처럼 보이는 모녀가 마끼 세트와 미소국을 나눠 먹고 있었다. 그 외에도 점심식사를 하러 온 듯 직장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두 테이블이 더 있었다. 테이블은 총 여덟 개. 4인 테이블 4개에 6인 테이블 4개. 하루 평균 테이블 점유율이 60%라고 가정했을 때 바쁘지 않은 시간대에는 써버 2명, 바쁜 시간에는 써버 3명 정도 쓰기 적당한 규모다. 평일 직장인들의 점심시간임에도 써버는 한 명 밖에 보이지 않고 사장으로 보이는 중년 남자가 스시 바에서 어슬렁 거리고 있다. 나에게 처음 인사를 건네고 자리를 안내했던 애쉬 카키로 염색한 써버는 동양인으로 보이나 한국인은 아닌 것 같았다. 유림의 눈길이 홀에서 스시바로 넘어가려는 순간,


"아유 레디 투 오다? (주문하시겠습니까?)"


언제 다가왔는지 사장으로 보이던 남자가 유림의 식탁 앞에 와서 구부정하게 서있었다.


메뉴판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유림이 주문했다.


"아윌 해브 원 피쓰 오브 새먼 스시 앤 원 피쓰 오브 튜나 스시. 올쏘 에이 스몰 사이즈 오브 프라운 템뿌라 애즈 웰, 플리즈 (연어 스시와 참치 스시 한 조각 씩 주세요. 아, 새우튀김도 작은 걸로 부탁드립니다.)"


피쓰 당 3.95불 스시 두 개과 3조각이 나오는 5.95불짜리 새우튀김 세금까지 해서 16불, 팁까지 하면 거의 20불쯤 되겠다. 통장에 일만 불쯤 있으면 모르겠지만 곧 360불 66센트가 남을 통장에서 20불쯤 더 없어진다고 해서 큰 변화라고 느껴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20불이 더 있다고 다음 달 월세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었다.


"원 새먼 스시, 원 튜나 스시 앤...... 스몰 프라운 템푸라, 롸잇? (연어 한 개, 튜나 한 개 그리고 작은 새우튀김, 맞죠?)"


누가 들어도 알 수 있는 한국사람의 영어 억양. 인상에서 99퍼센트 확신했으나 영어 발음을 듣자 사장은 확실히 한국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스시바에서 롤을 말고 생선을 뜨는 셰프들도 모두 한국 사람인 것 같았다. 바쁜 점심시간에 한국인이 아닌 써버 한 명과 앞치마를 두르지 않은 채 홀을 왔다 갔다 하는 가게 사장…… 가까이서 보니 최고의 관상은 아니었다. 관상을 배운 적도 딱히 공부한 적도 없지만 유림 안에 쌓인 데이터베이스가 신호를 보냈다. 쎄한 느낌. 아니다 싶으면 신발도 신지 말고 달아나라고 했는데. 그러나 그것도 조미김 두 봉지와 계란 세 알 그리고, 백팩 속에서 이리저리 치이며 물러가고 있을 양배추 한 통과 토마토 일 곱 알이 일주일 간 일용할 수 있는 유일한 양식인 백수에게는 해당되지 않았다.


다른 종류의 초밥을 겨우 한 조각 씩 시킨 게 사장은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고, 스시바의 셰프들은 흥미로운 눈치였다. 생선의 신선도는 전혀 문제가 없는 것 같았고, 밥도 적당했다. 새우튀김은 튀김 상태는 나쁘지 않았으나 가격대비 사이즈가 작아 비싸게 느껴졌다. 음식의 맛보다 플레이팅 문제인 것 같았다. 인테리어에 비용을 전혀 들이고 싶어 하지 않아 보이는 사장은 손님에게 나가는 접시도 큰 신경을 쓰지 않는 듯 보였다. 이 근방의 안 가본 스시가게가 없는 유림이 낸 체감 통계에 비춰봤을 때 전체적으로 메뉴의 가격이 꽤 높게 책정된 느낌이었다. 직장인 유동인구가 꽤 되는 곳에 마땅한 음식 가게가 없다는 걸 감안하면 전혀 이해가 안 되는 가격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음식 단가가 높다는 건 나쁜 소식은 아니었다.


"두 유 니드 애니띵 엘스? (뭐, 더 필요한 거 있으세요?)"


마지막 새우튀김을 꼬리까지 입에 집어넣자마자 다 씹어 삼키기도 전에 사장이 내 앞에 와서 물었다. 당연하지. 지금 시켜 먹은 메뉴 5번은 더 먹을 수 있는데. 하루 반나절을 빈속으로 돌아다녀 시장했던 차에 캥거루 새끼 눈곱만큼 먹었더니 식욕에 불이 붙었는지 식당에 들어오기 전보다 배가 더 고파졌다.


"노땡큐. 아엠 올 굿 (아뇨. 다 먹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근데 사장님은 지금 써버 필요하시죠?"


다소 실망한 표정으로 돌아서던 사장은 유림을 향해 돌아보았다. 뱀 눈 같던 그의 눈이 두 배쯤 커져 있었다.



수, 목, 금,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