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블 No. 6
소설에 나오는 인물과 사건은 허구입니다.
짤랑.
첫 손님이다. 레게머리를 한 흑인 여자 한 명과 백인 남자, 그리고 여자의 부모님으로 보이는 두 사람, 총 네 명이었다. 레게머리를 필두로 한 호탕하고 유쾌하며 다소 시끌벅적한 손님들이었다. 마침 구석자리 한 테이블 밖에 손님이 없어 그쪽 구석과 가장 떨어져 있는 카운터 앞 쪽에 자리를 앉혔다. 레게머리 손님은 문을 열고 들어와 유림이 인사를 하고 자리를 안내하고 메뉴판과 재스민 차, 수저를 내어가는 동안 단 1초도 쉬지 않고 말을 했다. 가끔 손뼉을 치며 다른 이들의 말에 반응도 하고 호탕한 목소리로 껄껄 껄껄 웃기도 했다. 그 네 사람이 들어오자 식당이 꽉 차는 것 같았다. 양쪽으로 코팅된 한 장 짜리 메뉴판을 이리저리 돌려보며 스페셜 롤 이름을 가리키며 신나 보였다. 아마 주문까지 아마 좀 시간이 걸릴 모양이다. '이 식당은 처음이군.'
미스터 팍은 카운터에 서서 그 테이블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스시, 사시미까진 아닐 것 같고 스페셜 롤 두 어 개에 메인 요리 한 두 개 정도는 나오겠지. 조금 설렌 듯 상기된 미스터 팍의 눈빛을 보고 유림은 사장이 예상하는 숫자를 가늠해 보았다. 캐나다에 와 시작한 가장 첫 번째 식당의 사장은 입구 쪽을 항상 바라보고 있었는데 누군가 들어오기도 전에 김에 밥을 깔며 얘기했다. 젓가락 준비해, '30프로 단골' 오신다. '노팁 학생' 또 왔네. '5불짜리'는 웬만하면 큰 테이블 주지 마......
30퍼센트 단골은 일주일에 한 번 이상 오는 대머리 백인 아저씨였다. 항상 혼자였고 창가 테이블을 선호하던 그 사람은 매너가 좋은 것은 물론이며, 매번 팁을 30퍼센트나 줬다. 물가 상승률을 반영한 지금은 15 혹은 18퍼센트가 가장 낮은 팁의 옵션이지만 10년도 지난 그 당시에는 카드 단말기에 설정해 두는 일반적인 팁 옵션이 12퍼센트, 15퍼센트 그리고 20퍼센트였다. 그때를 생각하면 당시의 30퍼센트는 어마어마하게 관대한 셈이었다. 덩치가 컸던 '노팁 학생'은 학생이라는 신분에 기대어 카드 결제 기계의 '팁(Tip) 0%' 옵션을 당당히 눌렀지만 비싼 메뉴를 두 개 이상 꼭 시킨다는 이유로 사장 내외에게 나쁘지 않은 인상을 주었다. '5불짜리' 손님은 매번 5.95달러짜리 캘리포니아 롤 하나만 시키는 두꺼운 안경을 쓴 손님이었다. 사실 굳이 따지자면 5불짜리'보다는 '6불짜리'라고 불러야 맞는 게 아닌가 생각한 유림이지만 딱히 이의를 제기하지 않은 이유는 유림도 그 손님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항상 현금으로 계산 한 유림에게서 잔돈으로 받은 35센트를 식탁 위에 흩뿌리듯 남기고 떠나는 걸로 팁을 주었다고 여기는 모양이었다.
처음 식당일을 시작했을 때 유림은 사장들이 손님들을 전부 숫자로 얘기하는 게 속물처럼 느껴졌으나 이제는 사장들의 마음을 이해할 뿐 아니라 자신도 그들과 다름없다는 것을 느끼기도 했다. 입 밖으로 얘기를 하지 않을 뿐, 주문을 받아 **POS 단말기** (Point of Sale Terminal)에 입력할 때 이미 머릿속으로 계산은 끝마친 상태가 된다. 테이블 17, 메인 두 개에 음료 두 개, 음식 값은 대략 52불에 택스까지 60불 정도라고 치고 평균 팁 15퍼센트를 적용하면 9불 정도 나오겠군. 대학교에서 공학 수학을 공부하던 때보다 산수 능력이 늘었다. 암산 능력은 더 늘었다. 식사를 하는 손님의 테이블 위에는 보이지 않는 숫자가 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레게머리 테이블이 결정을 마친 듯 나를 찾아 머리를 두리번거리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유림은 앞치마에서 수첩과 펜을 꺼내 들며 테이블로 다가갔다.
"주문할 준비되셨나요?"
"예. 우리는 마침내 뭘 먹을지 결정했어요. 하나의 치킨 야끼 우동, 또 하나의 비프 데리야끼 식사, 그리고 이 남자를 위한 다이나마이트롤과 교자. 그리고 저를 위해 혹시 아보카도 오이 롤에 크림치즈를 추가해 줄 수 있나요?"
"아, 제가 사실 오늘 첫 출근이어서 메뉴 커스텀에 대해서 사장님께 한 번 여쭤보겠습니다. 잠시만요."
빠르게 메뉴를 받아 적은 유림은 뱀 사장이 서 있는 카운터로 다가가 물었고, 그는 유림의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단호하게 말했다. 우리 가게는 알레르기 때문에 빼달라는 요청 제외하고는 메뉴 커스텀 안돼. 얼마를 추가해야 되는지도 모르겠고 너무 복잡해져. 앞치마를 건넬 때까지만 해도 경어를 쓰던 뱀 사장은 어느새 유림에게 반말을 하고 있었다. 너무 단호한 말투와 갑작스러운 반말에 기분이 상했지만 지금의 우선순위는 기분이나 감정 따위가 아니었다. 첫 손님을 만족시키고 이 가게에 취직한 다음 열심히 일하고 돈 벌어 늦지 않게 이번 달 월세와 공과금을 내는 것이 더 중요했다.
"제가 이전에 일 했던 식당에서 크림치즈 추가 1.5달러 더 받았거든요. 제가 그렇게 주문 넣고 손님에게 잘 말씀드려 볼게요."
말을 하는 동시에 유림은 포스 기계에 1.5불 추가 청구와 함께 'cream cheese'라는 노트를 써넣었다. 물론 사장의 눈치를 살피는 것도 잊지 않고, '주문' 버튼을 누르기 전에 예의상 사장을 올려다보았다. 그는 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손을 휘휘 저었다. 알고 있었다. 매출을 1.5달러라도 늘려주겠다는데 마다할 이유는 없을 거라고 확신한 한 수였다.
찌익찌익 찍- 소리를 내며 출력된 주문지를 뽑아 스시바 유리에 꽂아주며 셰프들에게 외쳤다. 아보-큐컴버 롤에 크림치즈도 넣어서 부탁드립니다. 'add: cream cheese'라고 유림이 친절히 적은 노트가 주문지에 나와있었으나 커스텀 롤은 항상 셰프들에게 구두로도 전하는 게 업계 룰이었다. 아무리 노트를 하고 주문을 넣어놔도 바쁠 때는 손님에게 잘 못 나가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손님을 통해 나중에서야 음식이 잘 못 나간 것을 확인하고는 음식을 되가져 오면 음식을 만드는 셰프들은 왜 미리 일러주지 않았냐고 역정을 냈다. 처음 그런 일을 겪을 때에는 나도 바빠 죽겠는데 하나하나 언제 다 일러주라는 건지, 주문지 제대로 안 본 당신들 잘못이면서 왜 나한테 난리냐며 유림은 억울해했었다. 언젠가 한 번은 너무 뭐라고 하길래 '전 주문 제대로 넣었는데요'하고 대들었다가 더 욕을 먹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 유림은 그런 언쟁을 벌이지 않는다. 주문지에 적힌 대로 음식을 만들지 않은 것은 분명 셰프들의 잘못이 맞지만 접시에 담긴 음식이 틀린 지 맞는지 확인하지 않고 그대로 손님 앞까지 가게 한 것은 써버의 잘못이므로 엄밀히 따지면 궁극적 책임이 써버에게 있는 것이 맞았다. 사실 숨 쉬는 것도 까먹을 정도로 정신없이 바쁜 순간을 겪으면서 어느 순간,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는 것보다 어떻게든 총체적인 실수의 양을 줄이는 것이 모두에게 최선이라는 깨달음을 얻게 된 것이다. 최소의 스트레스와 노동력을 들여 놓치는 매출 없이 보다 많은 주문을 뽑아내는 것, 매출이 곧 팁 수익으로 이어지는 외식업 종사자들에게 공생, 화합, 그리고 협동은, 그 누구도 아닌 스스로를 위한 것이라는 것을 이 바닥 꽤나 굴렀다는 사람들은 다들 잘 알고 있었다.
크림치즈가 들어간 아보카도 큐컴버 롤을 레게 머리 손님 앞에 내려놓았더니 '어-메이징, 언-빌리버블, 유 아 더 베스트'가 연거푸 터진다. 물론 유림은, 원래 우리 가게에는 그런 메뉴가 없지만 너만을 위해 특별히 부탁했다며 생색 가득한 한 마디를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마치 블루핀 참치 요리를 서비스받은 것 같은 표정이 된 레게 머리 손님에게 사람 좋은 미소까지 지어 보이며 유림은 카운터로 돌아왔다. 속으로 외쳤다. 됐다.